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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예술워크숍 후기 by 발칙 님

11월 아카데미느티나무와 공동주최로 진행한 예술워크숍 참가자인 발칙 님이 작성한 후기입니다.


"낯선 시선은 일상의 관성으로부터 우리를 끌어올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해준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참가자 후기링크> http://academy.peoplepower21.org/Opinions/24641

by 발칙 님

첫째날 _ 시선 

참여연대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예술워크숍_난민과 나 보이지 않는 길 찾기>라는 긴 제목의 워크숍이다. 예술과 교육을 접목하여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디자인된 워크숍인데, 난민, 예술, 교육, 이 세 가지 키워드가 모두 내 관심사를 적중하고 있기에 두 번의 황금같은 토요일을 바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결정했다.


<소설 워크샵>


둥글게 앉아 오전 세션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옮겨 가며 모든 참가자들과 한번씩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여는 시간 뒤에는 바로 소설 워크샵이 이어졌다.


떠오르는 책 제목을 말하면 참가자들이 그 제목에서 떠오르는 스토리를 무엇이든 이야기한다. 나는 '처음에는 사소했던 일'을 말했는데, 그 제목으로 사람들이 상상해 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실은 어떤 이야기였는지 따로 밝히는 절차는 없다. 20세기 초 평양에서 태어나 인천으로 이주하고, 하와이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한 여성의 자서전의 대강의 줄거리를 진행자가 소개하고 그 책의 제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제목과 이야기를 서로 오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는 자기 인생의 어떤 부분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가정하고 제목을 붙여보라고 한다. 제목을 썼으면 딱 한 문장만 써 보라는 주문.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설정한 책의 제목과 첫문장에 이어서 자기의 상상을 덧붙여 나간다. 나는 이 작업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나는 누군가 화두처럼 던진 제목과 첫문장에서 점화된 이야기의 불꽃이 내 머리와 가슴에 단박에 들어차는 것을 느낀다.


<망명의 패턴>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그 사이 진행자들이 벽에 사진작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사진은 모두 얼음을 근접촬영한 것이다. 겨울이면 우리가 흔히 보는 바로 그 얼음. 강이나 계곡에 생겨났다가 봄이면 사라지는 얼음. 익숙한 풍경인데도 대상과 눈 사이의 거리가 일상적인 수준을 뛰어 넘어 아주 가까워지자 낯선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사진 속을 거닐면서 나는 시린 추위를 느낀다.


진행자는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에 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으로 부터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라고 요구한다. 나는 한 사진 앞에 붙들려 '그해 여름'이라는 제목을 짓는다. 초여름이고, 계곡 물은 아직 얼음처럼 차가운데, 태양은 꼭대기에 걸려 있다. 한 소녀가 물 속으로 들어간다. 조용히 계곡 바닥으로 잠수하며 소녀는 자기 몸 어딘가에 얼음이 박혀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 소녀는 왜 아직도 차가운 계곡에서 잠수를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마침내 그 사진을 찍은 이와 만나는 시간이 왔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베레켓은 한국의 겨울과 충격적으로 조우한다. 그에게 한국의 겨울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경이롭다. 그는 눈과 얼음을 찍는다. 서울은 콘크리트 정글이라 한강에 나가야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아서 한강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한다. 멀리서 온 이의 눈에 비친 나의 고향은 이제 다른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온다. 그는 이 작품들의 제목을 "망명의 패턴"이라고 지었다. 계절이 순환하고 물이 얼어 얼음이 되고 다시 녹아 물로 돌아가듯, 우리는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온 그는 말한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삶이 지속되지 않았듯이 서울에서의 삶도 그럴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는 않다. 정주의 기간과 안정성에서 개인차는 있겠지만 우리가 무에서 존재를 얻고 다시 무로 돌아가는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멀고 먼 길을 왔건만 그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 그는 유쾌하다. 곧 겨울이 닥칠 것이지만 그래도 견뎌 보겠다고 유쾌하게 말한다.


난민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조건 퍼주어야만 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누굴 도와주냐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중요한 것을 모른다. 이방인에게 관대한 사회는 언제나 번성했다. 낯선 시선은 일상의 관성으로부터 우리를 끌어올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나에게 내 조국의 겨울이 가진 색다른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고, 그의 유쾌한 삶의 자세는 일상의 무게에 지지 말라고 나에게 용기를 준다. 이미 그는 차고 넘치도록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근대에 연애 소설이 탄생하고, 소설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인권 의식'이 생겨났다는 이론이 떠올랐다.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느끼는 일, 그것이 내 가족이나 이웃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타인, 나아가 이야기 속 가공의 인물까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를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정주자가 난민을 대할 때만이 아니라, 모든 만남에 적용될 수 있는 진실이다.



둘째 날 _ 경계


난민 워크샵 두번째 시간이었다. 첫번째 날의 주제가 '시선'이었다면 둘째 날의 주제는 '경계'이다.

워크샵 장소에 도착해서 잠시 놀랐다.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틀간 진행되는 워크숍을 두 번 다 참가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 일이구나.


<마음 풀기>


간단히 지금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이 나오면 손뼉을 한 번 치면 된다.

"오늘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긴장이 된다."

"추워지는 날씨가 반갑다."

"아직 겨울옷을 꺼내지 않았는데 벌써 추워졌다."

"시간 참 빨리 간다."

"워크샵에 두 번 다 참가했다."

"아침을 먹고 왔다."

"오늘의 '맨발' 프로그램을 위해 발톱을 다듬고 왔다."

손뼉을 치며 반응하는 서로를 보며 재미있어 한다.


<거울 놀이>


둘이 짝을 짓는다. 한 사람은 거울, 한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하면 거울이 따라한다. 연극워크샵에서도 해본 활동인데 아주 재미있다.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면서 야릇한 동작을 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역할을 바꿔서 한 번 더 한다.


지난 시간에 언급되었던 주인공 '메리'가 되어 본다. 평양에서 인천을 거쳐 하와이,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메리가 16세가 되어 가정부로 입주하는 날이다. 다락방에서 난생 처음 전신 거울과 만난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떠오르는 대로 메리가 되어 글을 써본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줄줄이 적는데 이걸 '내리적기'라고 한단다.


각자가 쓴 글을 가운데에 모아놓고 둘이 짝을 지어 한 사람은 메리, 한 사람은 거울이 된다. 내 짝꿍은 배우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는 상황을 표정과 미세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따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할을 바꾸어 내가 메리가 되었을 때도 과한 몸동작을 자제하고 메리가 된 듯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백인 가정에 가정부로 간 열여섯살 소녀 메리도 조심스러웠을 테니까. 단순히 거울을 보는 장면일 뿐이지만, 이 순간 메리가 어떻게 했을지를 곰곰 생각해 보는 일이 재미있었다. 메리의 두려움을 생각하며 살짝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온다. 그래도 메리는 열여섯살. 처음으로 전신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며 만족스러운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 메리가 되어 본 경험을 통해 무슨 생각을 했는가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곳에 내던져진 어떤 존재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메리들에 대한 상상으로 생각을 확장해본다.


<출입국관리소>


걷는다. 직선으로도 걷고 곡선으로도 걷는다. 그러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크고 딱딱 끊어지는 소리. 나를 밀어내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소리. 그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오자 걸음이 뚝뚝 끊긴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유려하게 걷던 나는 사라지고 자꾸 동선이 끊기고 엉킨다. 어떤 참가자는 바닥만 바라보고 걷느라 주변의 것들이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소감을 나눈다. 경계를 넘었던 경험, 경계 밖에 있던 경험을 나눈다. 한 참가자는 방을 구할 때 그런 경험을 한다고 했다. 작아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마음. 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없어지고 자궁만 남는 느낌. 아무도 나의 존엄에는 관심이 없고, 나의 자궁에만 초점을 맞추는 느낌. 임신을 했던 안했건 나는 그대로 나인데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수히 상처를 받았다. 어린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다. 단지 아이를 안고 있을 뿐인데 온 세상 '육아 전문가'들이 나에게 간섭을 한다. 그들에게는 내가 아기 엄마라는 사실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난민으로만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를 구성하는 어떤 한 가지를 나의 전체인 양 부분을 전체로 환원해 버리는 순간 소외가 발생한다.


<십시일반 몸풀기>


둥글게 서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몸풀기 동작을 보여주면 나머지 참가자들이 따라한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해진 몸과 마음을 깨우는데는 그만이다.


<찬반토론>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토론을 했다.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나누고, 자료를 찾아보고, 각자 그 입장을 말하기에 적합한 어떤 인물을 상상한다. 오전에 메리가 되었던 것 처럼 오후에는 또 다른 사람으로 '빙의'를 해본다. 나는 반대 의견을 가진 인물을 선택했다. 제주도에서 딸을 키우는 가정 주부.

높은 의자를 두 개 놓고 한 의자에는 진행자가 앉고, 다른 의자에게는 발언자가 앉는다. 그 자리에 앉으면 발언권을 갖는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인물을 상상하며 그 자리에 앉아 그 사람이 가질 법한 입장으로 이야기를 한다. 생각보다 집중적으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소감을 나눈다. 반대 의견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논리를 펼치기에 유리하다. '상식'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편견인 어떤 생각들이 우리 마음 밑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기 때문에 그냥 그것에 기반해서 살짝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주면 된다. 찬성 의견을 펼치는 것은 보다 많은 논리와 자료를 필요로 한다. 왜 우리의 이야기는 항상 장황해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 명료해지는지 피부에 와 닿는다. 찬반토론이 왜 비생산적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찬성과 반대로 나뉠 수 없는 문제를 찬성과 반대의 대립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구도가 되기 때문에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경계 넘기>


방울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선들이 복잡하게 설치된다. 참가자들은 맨발이 되어 눈을 가리고 그 선들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줄을 건드려 방울 소리가 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가리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전혀 위험하지 않은 환경인데 무섭다. 다리와 발에 느껴지는 줄, 그냥 느낌만으로 알 것 같은 옆사람의 존재를 예민하게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반대편으로 간다. 우리는 오각형으로 서 있었기 때문에 건너편은 사람마다 다르고 진행방향도 다 달라서 동선은 자꾸 얽히게 되어 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내 귓가에 작은 소리로 "다 왔어요."라고 속삭여주는데 너무 반갑다.


빨리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상황을 충분히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유독 빠르게 장애물을 통과해 반대편에 도달한다. 왜지? 왜 나만 자꾸 빠르게 움직이지? 의아했다.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미션을 부여받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미션을 해석하고 자기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 반대편으로 간다. 가장 천천히 이동한 참가자는 앉아서 손으로 줄을 만져보며 움직였다고 한다. 나는 손으로 줄을 만져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미션이 부과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졌었다는 참가자도 있다. 나는, 나는 어차피 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약간의 종소리'는 그냥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쪽이었다. 건드리면 안된다고 하지만 건드린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도 모르게 목표 중심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리>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요"라는 뜻의 문장을 로힝야 말로 노래로 만들었단다. 그 노래를 배워 함께 부른다. 파트를 나눠 부르기도 하고 다 함께 부르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고향을 떠나고, 어떤 사람은 떠난 곳으로 되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환영받고 어떤 사람은 거절을 경험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떠나는 존재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우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도,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마음 깊이 공감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믿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번의 토요일,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으로 깨우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 모든 프로그램을 공들여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섬세하게 디자인된 프로그램에 참여하자 내가 조금은 품위있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품위 있고 우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베풀어주신 진행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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