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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신임이사 박상훈 신부님

2019년 9월, 하반기이사회를 통하여 새로운 신임이사 4분이 아디에 합류해 주셨어요. 국내이슈가 아닌 아시아분쟁지역의 이슈를 다루는 아디에서 이사라는 중책을 맡아주신 새로운 이사님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밥 사달라는 핑계로 만났고 겸사겸사 술도 한잔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번째 주인공은 예수회인권연대 연구센터 소장이신 박상훈 신부님입니다.


박상훈신부님, 사진출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가톨릭 예수회 박상훈 신부입니다. 예수회는 가톨릭 내 여러 수도회 중 하나로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기 후반에 이나시오 료올라 성인이 동료를 모아 만든 수도회로 역사는 약 500년쯤 되었어요. 예수회는 초기에 아시아 선교활동을 하였고 교육사업으로 많이 유명해요. 유럽이나 미국에 료올라 이름이 들어가는 대학교는 예수회 소속이고 한국의 서강대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리고 현재 교황도 예수회 출신이지요.


2. 신부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대학과 대학원때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졸업후 강사도 했었지요. 그러던 중 1991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2001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지요. 80년도 대학을 다닐때 청계천에서 야학활동을 하였는데 그 건물 1층에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있어 당시 노동자들과 가톨릭신부님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곤 했지요. 대학원졸업 후 강사생활하면서 독일 유학을 준비했었는데, 워낙 놀기를 좋아해서 끈기있게 공부를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인생에 대해 이거저거 회의적인 것도 있고 해서, 머리가 좀 복잡했어요. 그때 친구가 예수회에서 사제과정에 있었는데 성소모임에 나와보라고 권유를 했어요. 그래서 모임에 다니기 시작했고 여러 예수님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런데 희안하게 독일유학에 필요한 장학금 시험날짜와 예수회 인터뷰가 겹쳤어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예수회 인터뷰를 선택하면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됐네요.



서강대인근 불고기집에서 박상훈신부님, 출처: 아디

3. 신부가 되기 위해서 약 10년의 시간이 걸리신거네요?


예수회 신부가 되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일단 6년을 공부해야 해요. 예수회에서 수련(기도+노동+공부)을 2년, 철학공부 2년, 현장실습 2년을 보내야 해요.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있는 예수회신학대학과 호주에서 4년을 더 공부한 후에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어요.

4. 사제서품을 받고 난 후에도 외국유학을 더 하셨던데요.


처음 사제서품을 받은 후 가회동 성당에서 1년간 보좌신부 생활을 하였고 이후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10년간 정치철학과 교육철학을 공부했어요. 그때 담당 교수가 마이클 애플교수였는데 이분이 꽤나 유명한 맑스주의자였어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최근 로힝야 국제컨퍼런스에 참여한 마웅자니 활동가도 알고 보니 애플선생님이지도교수였다고해요. 어쨌든 여기서 공부다운 공부를 한거 같아요. 교수님들이 인격으로나 연구에서나 탁월했어요. 그리고 2012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서강대에서 학교일도 하고 교양과정 강의도 약 3년간 하였어요. 그리고 2017년부터 예수회인권연대 연구센터에서 소장을 맡고 있어요.


5. 예수회인권연대 연구센터는 어떤 곳이에요?


예수회인권연대 연구센터는 정의와 평화의 증진, 생태환경을 위한 책임과 실천을 다하기 위해 2010년 창립한 센터입니다. 카톨릭 영성을 통해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카톨릭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알리고 확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최근 이주민, 난민, 생태환경 이슈를 다루고 있고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노동, 인권단체들을 후원하기도 하고 데모도 같이 하고 그래요. 사드문제가 불거진 소성리에서 지속적으로 미사를 올리고 GM차 농성장에서도 매주 미사를 올리고 있지요. 최근 추석에는 삼성해고자 김용희님 고공농성장에,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 단식농성장에도 다녀왔어요.


6. 빈민, 인권단체, 노동단체와 많은 연대활동을 하시는데요?


종교적으로 예수가 했던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요. 그것은 끊임없이 낮은 자세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희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노동, 인권단체들과 접촉면을 계속 넓혀야 하고 국가폭력에 피해 받은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사 집전중이신 박상훈 신부님, 사진출저: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홈페이지

7. 아디와는 어떻게 연이 닿으셨나요?


제가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고 김종화 신부님이 총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김종화 신부님이 로힝야 국제컨퍼런스 참여를 제안했고 행사에 함께 하면서 아디를 알게 되었어요.

또한 예수회인권연대도 난민과 이주민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김포에 이주노동자 센터인 ‘이웃살이’에서 구술사 작업을 하고 있고 기쁨나눔재단 이라는 곳도 이주민과 난민관련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한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조선학교에 서강대학생들과 함께 방문하여 남북문제,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어요. 그리고 작년 제주도 예멘사태를 지켜보며 무슬림 이슈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최근 천주교의정부교구에서 추진했던 난민센터가 지역주민의 반대로 개소를 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해요. 제가 사제서품을 받기 1년전쯤 피정을 통해 만났던 호주 예수회 성서학자로부터 신부가 되는 건 어디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는 것, 어떤 경우라도 가난한 사람 편에 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렇지 못한다면 신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이 길이 나에게 소명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8. 아디 이사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물론 기뻤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 버거의 “제 7의 인간‘이라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저는 난민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하고 삶의 모험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한 난민과 함께 하는 아디활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알고 싶었어요.


회원인터뷰중인 박상훈신부님과 셀림(이동화)활동가, 출처: 아디

9. 혹시 아디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사제서품 받은 후 10년이 지나면 ‘교황에 대한 순명’서약을 해야 해요. 서약 마지막 한달 피정을 하던 중 저는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당신은 충분히 약해졌어요? 누구에게나 머리숙이고 이야기 들을 수 있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약해졌어요?” 이 분의 말은 예수님의 일생을 표현한거라 생각해요. 항상 약자를 위해 약해지는 것, 저는 아디의 역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업의 성과보다는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는 것,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누구도 아닌 것처럼 로힝야 사람들도 여기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누구도 아닐 거에요. 이들과 함께하는 선한 일을 하는 만큼 아디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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