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디

정의를 원하는 반짝이는 눈

7월 23 업데이트됨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만난 로힝야 사람들


전은경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활동가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2018년 8월 24일, 로힝야 학살 1주기를 맞아 한국의 시민사회는 추모행사를 열었다. 우리가 머리를 맞대 정한 이날 행사의 제목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날 같은 제목의 노래가 흐르고 나는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네가 울음을 터트리게 될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 마. 그 자리가 바로 네 보물이 있는 곳이니까.”란 글처럼 그렇게 로힝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만난 로힝야 기록활동가들


지난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캠프에 다녀올 수 있었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의 활동가로, 로힝야와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모임의 일원으로, 그리고 아디의 회원으로 말이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해 처음으로 만난 이들은 로힝야 집단학살을 기록하고 있는 6명의 기록활동가들이다. 이들은 다름아닌 로힝야 사람들이다. 이들은 캠프 곳곳을 다니며 2017년 8월에 있었던 집단학살을 비롯해 그 이전에 벌어졌던 미얀마 군부에 의한 탄압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뷰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학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사진이나 영상, 진단서 등을 수집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부상 부위를 사진찍기도 한다. 위임장도 받아두고, 학살이 일어났던 곳의 맵핑 작업도 하고 있다.

일 년에 4번 정도는 다함께 워크숍도 하는데 운이 좋게도 나는 사흘간의 워크숍에 함께하여 아디의 집단학살 기록사업 전반을 볼 수 있었다. 워크숍에서는 인터뷰 진행시 필요한 세부 절차별 원칙과 주의사항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인터뷰 시뮬레이션도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인권교육과 국제형사법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워크숍에서는 인터뷰 과정 중에 발생한 어려움도, 고민이 되는 부분도 함께 공유되었다.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게 하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들은 집단학살의 목격자이고 피해생존자이기도 하기에 자신이 겪은 끔찍한 경험들을 다른 이들에게서 또 한번 들어야하는 괴로움도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이들에게 이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워크숍을 진행하는 김기남 변호사 역시 이 작업은 ‘아디의 일’이 아닌 ‘당신들의 일’이란 것을 여러번 강조했다. 아디의 사업이 끝나도 기록활동가들이 꾸준히 기록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이들의 역량강화에도 신경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좋은 ‘보스’였다. (기록활동가들은 김기남 변호사를 ‘보스’라고 부르며 따랐다. 인터뷰 중 빠뜨린 내용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무서운 보스였지만 장난을 치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세심하게 챙기는 보스였다.)


사흘동안 진행된 워크숍을 함께하면서 아디가 하고 있는 로힝야 집단학살 기록사업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디는 학살이 일어났던 40여개의 마을 주민 1,000명을 인터뷰해 마을별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미 9개의 보고서가 나왔고, 올해말까지 16개 마을별 보고서가 완성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15개 마을의 보고서와 종합보고서도 발간된다. 이는 전세계 어떤 NGO도 하고 있지 않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로힝야 기록활동가들도, 이 과정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도 아디의 회원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난민캠프에서 만난 사람들


이후 사흘간의 일정은 캠프 방문이었다. 흙먼지 가득 맞으며 울퉁불퉁한 도로를 2시간 정도 달리면 로힝야 약 100만명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캠프에 도착한다. 비닐천막과 나무로 엮어 만든 집들이 지평선에 닿을만큼 끝없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서 나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많은 로힝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코를 찌를 듯 악취가 가득한 공기, 파리 떼가 들끓는 집안,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깜박이는 불빛 아래에서 미얀마군에 의한 잔혹한 학살을 증언하는 그들의 눈은 내가 본 그 어떤 것들보다 반짝였다. 그 덕분에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의 진술은 어느 마을이나 비슷했다. 갑자기 미얀마 군경이 마을을 들이닥쳐 사람들을 구타하고, 약탈하고, 총으로 쏴죽인다.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아무런 이유없이 남성들을 체포해 구금한다. 그리고 마을에 불을 지른다. 잔혹한 학살의 패턴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전반적인 상황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몇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주민들의 말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이유없이 체포되어 3~4년을 감옥에서 지낸 후 풀려난 25명의 로힝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로힝야 반군인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 이 아니냐는 추궁을 받으며 구금시설에서 심각하게 구타를 당해 치아가 뽑혀 있었고,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억울한 감옥살이 후 가족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이곳 방글라데시까지 오는 여정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었다.


우리는 5개 마을의 약 100여명의 주민들을 만나 기록사업의 필요성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만남은 뚤라똘리 마을 주민들과의 자리였다. 뚤라똘리 마을은 최악의 군사작전이 벌어진 곳이다. 아디는 이미 뚤라똘리 마을보고서를 발간했지만 김기남 변호사는 이번 방문을 통해 그곳 주민들을 다시 보고싶어했다. 그건 그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물어주고, 잊지 않고 다시 찾아준 김변호사를 정말로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한 일들을 어디서라도 증언하고 싶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이 흘러 사라질지도 모르는 증거와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흘간의 캠프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나는 캠프의 전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들의 고통을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였는데 캠프를 벗어나며 나는 땅만 바라보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을 뜨기 힘들었다. 캠프에서 만난 로힝야들은 단 한번도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이렇게 살게될거라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를 향해 ‘바이바이’ ‘헬로’를 연신 외쳐대는 맨발의 아이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았는가. 언제까지 이들은 이곳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지내야되는 것일까.


7박 9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택시 안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가슴이 쿵 하고 여러번 내려앉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다. 정의를 원하는 반짝이는 눈들을 마음에 담고와서 일까. 문득문득 그곳의 냄새가, 소리가, 남겨진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을 기억해달라고, 로힝야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탄압, 혐오와 편견,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제노사이드에 대해 더 많이 알려달라고 당부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가사처럼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아 초조해지는 요즘이다. 이 자리를 빌어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해준 김기남 변호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받았다.

조회 95회
사단법인 아디
Asian Dignity Initiative
  • 블로거 - 회색 원
  • 페이스 북 - 회색 원
  • 유튜브 - 회색 원
  • 인스 타 그램 - 회색 원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189 중소기업 DMC 타워 13층
Tel : 82-2-568-7723
Email : asiandignity2016@gmail.com

고유번호: 859-82-00276     ​대표자: 김병주

COPYRIGHTⓒ2016 AD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