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방글라데시 현지 활동가 한국 방문기] 2. 제주도편 (Day4~5)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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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로힝야&방글라데시 현지 활동가 한국 방문'을 기록한 글입니다.

○ 총 4편의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울 上편(클릭), 제주도편(본편), 강원도편(클릭), 서울 下편(클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본 편은 제주도에서의 일정을 소개합니다.



4일차 - 5일차│제주 4.3 평화기념관 - 산지천 갤러리 - 제주 올레스테이(서귀포) - 정방폭포


▲ 제주공항 앞 비오는 정경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장마의 영향으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제주였지만, 역시나 '제주'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설렘이 있다. 방글라데시 활동가들에게도 제주는 한국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제주는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주는 한국전쟁 발발 전,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빨갱이들의 소굴'이라는 명분으로 학살의 터가 되었던 곳이다. 사실 '학살'이라는 단어는 방글라데시 현지 활동가들과 ADI 활동가들의 공통 분모에 속한 용어이기도 하다. '로힝야 제노사이드'와 '제주 4.3사건', 두 사건은 모두 국가의 주도 아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국가 폭력의 현장이자 비극적 참상의 결과이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간 곳은 제주 4.3 평화기념관이었다.


▲ 활동가들이 박성규 님(통역 봉사)의 4.3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도 소재의 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에 다니는 박성규 님이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가이드해 주셨다. 덕분에 방글라데시 현지 활동가들은 조금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입체적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고, 방글라데시 동료들은 현장에서 자신이 보아왔고 마주했던 로힝야 이슈와 견주어 제주 4.3사건을 더욱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4.3 평화기념관을 관람하는 RWWS 활동가들


제노사이드를 규정짓는 주요한 기준은 중 하나는 '얼마나 의도적이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한 제주도민을 '빨갱이'라고 규정하며, 특정 이념에 몰두한 사람들이라고 낙인찍고, 국가 안전과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 대부분이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민간인이었을 뿐. 


▲ 이름없는 피해자들을 기리는 백비 앞에서 활동가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로힝야를 탄압하는 미얀마 군부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한다. 미얀마 안에서 불교도 버마족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공공의 적'을 상정한다. 마치 75년 전 '제주도민'을 '빨갱이'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무슬림 로힝야'는 '뱅골리'라는 이름으로 배제와 차별을 당하고 있다. 

다른 사건인데도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은 어떤 경계를 허물어뜨릴 때가 있다. 제주도를 바라보는 방글라데시 활동가들, 로힝야를 바라보는 ADI의 활동가들. 제주도와 미얀마가 겹쳐지고, '빨갱이'였던 제주도민과 '뱅골리' 로힝야가 겹쳐지며, 방글라데시 활동가들과 ADI 활동가들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 산지천 갤러리에서 진행된 토크쇼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산지천 갤러리였다. 우리가 함께한 자리는 <음소거된 물의 소리 : 진동의 걸음> 이라는 이름의 전시로, 로힝야 난민캠프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였다. 해당 전시의 기획자 전솔비 님, 작가 오로민경 님의 사회 아래 10명의 방글라데시 동료들이 둘러앉아 한국 시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 산지천 갤러리에서 진행된 토크쇼, (왼)루미(Rume)와 (오)자말(Jamal)이 말하고 있다.


토크쇼에서는 오로민경 님과 솔비 님이 작년 초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채집한 소리도 감상할 수 있었다. 캠프 안에서의 일상의 소리들.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만이 아닌, 난민캠프의 소리를 직접 듣다 보니 더 온전히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로힝야 난민 캠프 소리를 담은 해당 프로젝트는  <Camp Sound Community>라는 이름으로,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가기)


▲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이동하던 중산간 구간, 궂은 날씨로 시야가 흐리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숙소가 있는 서귀포시로 향했다. 중산간을 거쳐 이동하는 구간, 궂은 날씨에 안개가 자욱한 길이었지만 쳐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알람기르(Alamgir)와 록사나(Roksana), 지니야(Jinia)의 노래가 끊기지 않고 계속됐기 때문이다. 반주도 없이 노래가 이어졌는데, 어떤 노래는 구슬펐고, 또 어떤 노래는 명랑했다. 어떤 노래는 사랑의 노래라고 했고 또 어떤 노래는 그리움에 사무친 노래라고 했다. 방글라데시 독립을 염원하는 저항의 노래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노래 'Bhalo Achi Bhalo Theko'를 공유한다. (바로가기)


▲ 정방폭포 앞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활동가들


다음날 우리는 '정방폭포'를 찾았다. 여행이 시작된 이래로 어디를 가나 'Photo time'을 외치며 사진 찍는 시간을 가졌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오랜 시간 'Photo time'의 시간을 가졌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서로를 찍어주며 기뻐하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안도의 마음같은 것이 올라왔다. 


▲ 정방폭포 앞에서 단체사진

 


사실 제주에서의 시간이 특별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평화를 심리사회지원교육원'에서 다섯 분의 선생님이 오셨기 때문이다. 샨티카나(로힝야 여성 다목적 힐링센터)가 시작될 무렵부터 함께한 선생님들은 로힝야 여성들의 심리 회복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세팅하여 현지화시키는 데 함께해 주셨다. 프로젝트 초창기만 하더라도 1개월에 한 번씩 (샨티카나가 위치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난민캠프를 방문하셨다고 하니, 방글라데시 현지 활동가들의 한국 방문이 선생님들에게도 얼마나 특별했을까 싶다. 서울도 아닌 먼 길을 달려 제주까지 와주신 것을 보면, 듣지 않아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º '샨티카나'와 '사람들에게평화를 심리사회지원교육원'의 이야기는 여기(클릭)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평화를 심리사회지원교육원' 신미화 선생님과 윤영주 선생님이 방글라데시 현지 활동가들


기약 없는 만남인데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가 아니라 '곧 다시 보자. 건강히 지내요.'라는 인사를 들었다. 동일한 바람과 비슷한 믿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있는 힘껏 살아내는(활동하는) 서로를, 각자의 자리에서 있는 힘껏 응원하며 사는 우리. '동료감(感)'이라는 표현이 있다면 딱 그런 느낌이 아닐까. 내게, 우리에게 그런 동료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사람들에게평화를 심리사회지원교육원'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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