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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활동가 기고문] 왜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202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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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사단법인 아디 이동화 상임이사

 

아마도 이맘때쯤이었던 23년 전 6월 초, 나는 이라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며 말렸고, 또 어떤 이들은 응원을 보내 주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2003년 3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전쟁의 이유는 납득되지 않았다. 미국이 내세운 '대량살상무기 보유'라는 명분은 국제기구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제거'라는 명분 역시 전쟁으로 스러져갈 수많은 목숨에 비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핑계였다. 또한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온 국민의 유전자에 나눠 가진 한국 정부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전쟁을 막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한미 군사동맹이라는 족쇄에 묶여 침략전쟁을 반대하지 못했고, 심지어 군대까지 파견했다. 나에게는 전쟁으로 죽어갈 수많은 생명의 아우성이 곧 전쟁을 막아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였기에 주변의 우려를 뒤로하고 이라크로 향했다.

 

당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전쟁을 막겠다며 이라크로 향한 나와 동료들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비난했다. 한국의 파병 결정이 내려진 후, 나와 함께했던 한 동료는 '한국인이기를 거부한다'며 국적 포기 선언을 하자, 대중의 거센 비난은 극에 달했다.

 

미국은 약 40일 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에 남겨진 나는 파괴된 현지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시설과 보육시설을 건설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나 이후 故 김선일 씨가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되고, 종파 갈등과 무장 충돌이 격화되면서 이라크는 내전 상태와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미국은 결국 이라크에서 철군했지만, 이라크는 지금도 전쟁의 상흔과 후유증 속에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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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스라엘 평화항해 활동가 가혹행위 증언 및 규탄 기자회견, 출처: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불법 봉쇄를 뚫기 위해 한국인 활동가 해초, 승준, 동현이 평화선단 배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 군에 의해 불법 나포되어 폭행을 당한 후 강제추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론의 반응은 23년 전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왜 정부가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느냐?”, “가는 건 자유지만 이들 때문에 세금을 낭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와 경멸이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이스라엘의 불법 구금과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와도, 이들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시아 분쟁 지역에서 인권·평화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나로서는 이들의 용기 있는 실천에 깊은 감탄과 동시에 함께 탑승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국가가 만든 제도와 법률의 울타리를 벗어난 행동이라는 이유로 분노하는 이들은 많다. 반면,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국제적 제도와 법률이 막아내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불법 봉쇄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기묘할 정도로 침묵한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을 다룬 행사에서, 이라크 전쟁 당시 반전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가 씁쓸하게 말했다. “이라크 전쟁 때 그토록 뜨거웠던 반전 평화 활동이 지금은 보이지 않네.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은 이제 사라진 것 같아.”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가자지구로 향한 세 활동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다. “아니요, 가자지구로 향했던 이들을 보세요. 한국의 반전 평화 활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일본의 국제법 전문가 모가미 도시키는 저서 《처음 하는 평화공부》에서 기원전 3600년부터 시작된 인류의 5천 년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고작 300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국제연합(UN)과 국제인도법 역시 전쟁을 예방하는 데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전쟁을 막으려는 시민사회의 연대와 개입이 무력분쟁을 막을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덧붙인다.

 

평화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그 슬픔에 기꺼이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운동'은 나와 타인이 마주한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고 맞서기 위한 구체적인 몸짓이다.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취하려는 국가와 강자들의 '위로부터의 정치적 선택'이라면, 평화운동은 국경과 장벽을 넘어 그들의 일방적인 강요를 거부하는 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용기 있는 선택'이다.

 

많은 이들이 세 평화활동가의 선택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중심적 가치관'에만 갇혀 있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찬 목소리는 영원히 들리지 않고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은 끝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논의해 왔지만 가자지구 봉쇄는 지금도 계속되고 집단학살 역시 이어지고 있다.

 

반면 세 평화활동가는 국가들이 하지 못한 일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그 실천은 가자지구 봉쇄의 부당함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십 년째 겪고 있는 인권침해의 생생한 질감을 세상에 드러냈다. 비록 당장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이들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불법 봉쇄를 흔들고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작은 물꼬를 트는 시작이 될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국제사회의 연대와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키워온 한국 사회라면, 지금 이 세 청년을 향한 비난은 마땅히 그 지역의 평화를 짓밟는 이들에게 향해야 하고, 평화를 만들려는 이들의 메시지를 더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 본문은 2026년 6월 1일에 '인권연대'의 '목에가시'에 업로드된 기고문입니다.

◈ 기고문 바로가기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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