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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인턴 소개] 록사나(박다은)를 소개합니다.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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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록사나를 만났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맑고 하얀 피부에 부드러운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를 지녔던 록사나는 개발협력 분야에서의 첫 시작으로 ‘아디’여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유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그녀는 그녀 자신을 무척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의 풍요만이 아닌 비물질적인 것의 풍요까지 요구하는 세상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들, 그러니까 자기개발도, 연애도, 개인적인 경험들조차 ‘얼마나 잘’이라는 질문보다 ‘얼마나 많이’라는 질문이 화두가 되곤 하니까요.

이런 세상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동료로 함께한다는 건 큰 행운입니다. 아디의 록사나를 소개합니다.

 

# 홈트레이닝, 루틴, 아동전문가 그리고 사람

 세 가지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첫 번째는 ‘홈트레이닝’인데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다니던 운동을 그만 두게 되었거든요. 이후로는 집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유산소 운동도 하고, 근력 운동도 하고 그래요. 지금도 주 3회 이상은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운동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공부처럼 잘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부담도 없고, 그런데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느낄 수 있고. 실제로 홈트레이닝이 일상이 되면서 제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루틴’이에요. 제가 파워 J거든요.(성격유형검사 중 하나인 MBTI에서 J는 계획형을 뜻한다.) 저랑 하루만 같이 있어보면 저의 내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실 거예요. 그만큼 루틴이 있는 사람인 거죠. 또 그만큼 예측가능한 사람이기도 한 거고요. 사실 저는 루틴 덕분에 일상의 안정감을 느껴요. 무엇이든 도전을 하려면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혹여 실패하더라도 루틴 안으로 돌아오면 금세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겠더라고요.

마지막 키워드로 생각했던 건 ‘아동 전문가’예요. 학부에서는 아동 복지, 대학원에서는 아동·청소년 복지를 전공했는데요. 아동, 청소년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저 또한 그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게 된다는 데 있었어요. 그들이 가진 잠재력에서 오는 무궁무진함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성장하는 걸 직접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학령기(초등학교 입학 후)에 접어들면 주체성을 갖게 되잖아요. 주체로서 함께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니까, 그런 데서 오는 희열도 컸던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원래는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개발협력’, ‘인도적 지원’ 등의 활동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 언어를 전공했는데, 자연스럽게 한국 너머의 세상에 시선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렇지만 정치나 외교 쪽을 전공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고, ‘그것 외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은 꾸준히 해왔던 것 같거든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거예요. 개발협력은 특히 제3세계의 현장 실무가 중요한 곳이잖아요. 더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하루라도 어릴 때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록사나를 견인하고 있는 록사나만의 믿음이 있나요? 

‘사람’을 많이 생각해요. 제가 주로 하는 고민도 ‘누구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이거든요. 제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이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동시에 저는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아요. 누군가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조차도 배울 게 많거든요. 그게 그렇게 짜릿해요. 모두와 (성향상) 맞을 순 없지만, 배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서로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이 상쇄돼요. 여기 아디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Connect Talks’ 행사(아디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내 연대 기획 강의 시리즈이다.)들도 그런 점에서 너무 즐거워요. ‘사람’과 함께하는 게 참 좋더라고요.

 

▲ 록사나가 촬영한 서울숲의 모습


# 한 발짝 앞으로

도전에의 시작에 아디가 함께하게 되어 참 기쁜데요. 아디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디의 활동은 크게 ‘지원’하고, ‘기록’하고, ‘연결’하는 일인데, 저는 특히 ‘옹호’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복지에서 이야기하는 옹호는 소극적 개념에 가까워요. 그러니까 대상이 직접 목소리를 낸다기보다, 누군가 그들을 대변해주거나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경우가 많죠. 아동· 청소년 분야만 보더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건 그들을 옹호하는 전문가, 사회복지사, 교사가 주(主)일 거거든요. 그에 반해 아디에서 말하는 옹호는 현장 안에 날 것의 소리가 나온다는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아디가 담아왔던 목소리가 분쟁지역의 당사자들의 목소리잖아요. 그래서 더 현장감이 많이 느껴졌던 것 같고, 공감도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덕분에 ‘옹호’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넓어진 느낌이에요.

 

아디 활동의 가치를 당사자성과 현장성에서 많이 찾으셨다는 이야기처럼 들려요. 

맞아요. 또 제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어서 그런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아디 사업이 분쟁 지역의 여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는 것도 관심이 많이 갔어요. 아디와 함께하는 현장 활동가 중 여성 분들이 많은 것도 긍정적으로 다가왔고요. 팔레스타인만 보더라도 사회적, 문화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이 큰 나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파워풀한 여성활동가들이 있다는 게 되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아디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기대하던 것들을 충족하고 계시려나요? (커뮤니케이션팀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인터뷰어 토리는 눈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그간 해본 적 없던 일들이에요. 큰 규모의 행사를 하는 것도, SNS를 활용해 온라인 홍보를 하는 것도, 글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도, 후원자를 모집하고 모금을 기획하는 것도 다 처음이에요. 메뉴얼대로 돈을 쓰기만 했던 사람에서 돈을 만들어 쓰는 사람이 된 기분인 거죠.(웃음) 사람의 관심을 모으는 일이라는 게 안정적일 수 없고 부담이 많은 일이구나라는 것도 알게 됐는데, 그만큼 담당자의 역량과 목적에 맞는 방법론과 툴을 갖추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아디에서의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살아냄’이라는 느낌이에요.

 

아디에서 활동하며 특별히 더 관심이 생긴 이슈도 있으실까요? 

로힝야 이슈요. 로힝야 문제로 한창 난리였던 2017년에도 사실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거든요. 한국사회가 난민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한 발짝 뒤에 서있는 느낌으로 문제를 바라봤던 것 같은데 아디에 오면서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 관심으로 스터디도 하게 되고, 그렇게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나의 시선이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인 거죠.

한편으로는 ‘로힝야 이슈를 두고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들어요. 아무래도 국제사회가 경직되어있다 보니 그분들(로힝야 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속도로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거든요. 이런 점도 아디 덕분에 생긴 변화에요. 안타까움정도로 그치는 게 아닌 분쟁 상황에 대해 좀 더 질문하고, 그 질문을 이어가는 힘이 아디에 있으면서 생긴 것 같아요.

 

# 작은 평화

‘한 발짝’을 이야기하시니, 록사나의 다음 한 발짝이 기대돼요. 다음 스텝을 이야기해주셔도 좋고, 록사나가 그리는 10년 뒤의 삶을 이야기 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 개발협력을 계속 하겠다는 확신은 없어요. 그 전에도 개발협력 관련 사업을 해본 적이 없고, 아무래도 지금 하는 업무가 (사업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업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음 스텝은 사업을 해보자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아디는 ‘국제개발협력’의 첫사랑 같은 곳이죠. (웃음)

10년 뒤에는 동생과 남양주에 2층짜리 주택에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1층은 동생이, 2층은 제가 사는 거죠. 그때 쯤이면 운전도 좀 하고 있을 거고, 이왕이면 전기차나 수소차를 몰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남양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삶인 거죠.(웃음) 여전히 비영리적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1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중간관리자급의 전문가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록사나의 평화는 무엇인가요? 

본가에 마당이 있어요. 거기에 파라솔이 하나 있는데, 햇살이 들어서는 아침에 가족들과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장면이 저에겐 평화에요. 그 때에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도, 아빠가 우리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닦고 계신 장면도 그 자체로 따뜻하고 안온한 시간이에요.

분쟁지역을 두고 생각한 평화도 ‘내면의 평화’인데요. 물론 분쟁이 종결되고 일상을 다시 회복하면 베스트겠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잖아요. 분쟁이 교착 상태라면, 적어도 그 안에 계신 분들이 하루하루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그렇다면 ‘작은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인 거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실까요? 

제가 아디에서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마음을 나누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에요. 셀림과 별빛, 지나와 네나, 제니퍼와 에밀리, 푸딩과 사나, 토리까지, 모두 정서적 지지가 되어요. '가족같은' 분위기의 회사라고 하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아디덕분에 가족적이라고 해도 부정적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남은 3개월도 그런 분위기에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토리여서 참 좋다.’ 이 얘기를 꼭 적어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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