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을 주고 받는 일에는 힘이 있습니다. 일례로 ‘다정함’을 들 수 있을 텐데요. 관계 안에서의 다정함은 효율과 효용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 내고, 일상 안에서 가장 기적 같은 장면을 연출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부터 함께했던 지나는 아디에서 쿠션과 같은 사람입니다. 유쾌함을 무기로 다정함이 일상인 지나 덕분에 아디에서의 오피스 라이프는 심심할 겨를이 별로 없었습니다. 또 지나는 기꺼이 함께하고, 무엇이든 성실히 해내는 동료입니다. 우리는 그런 지나를 두고 자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7개월간의 시간에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아디의 감사한 인연, 2023년 KOICA 상반기 YP 인턴 지나를 소개합니다.
# 헤이즐럿 라테, 라면, 야구
세 가지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헤이즐럿 라테, 라면, 야구’ 이 세 개는 제 일요일 오후을 설명해 주는 것들이에요. 먼저 일요일 오후 5시쯤이 되면 라면을 끓여 먹고요. 잘 익은 배추김치와 딱 먹고, 집 주변에 자주 가는 카페로 가요. 거기에 가서 헤이즐럿 라테를 한 잔 테이크아웃한 다음에, 다시 집으로 와서 야구 경기를 봐요. 여름 경기는 해가 지고 나서 하는데, 저녁 6시 30분쯤 시작하거든요. 헤이즐럿 커피를 딱 들고, 롯데 자이언츠 경기(야구 경기)를 보는 거죠. 그게 일요일마다 하는 저의 루틴이에요. 일주일간 고생한 저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랄까요?
아디 활동가로서 자신을 소개할 물건은 없을까요?
음… 노트북? 노트북으로 모든 업무를 진행하니까요. 노트북으로 소통하고 노트북으로 현지 회의도 하고 하니까. 일종의 소통창구인 거죠. (팔레스타인) 연구팀이나 미얀마, 팔레스타인 현지 회의 등도 다 이 노트북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 지나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 타이밍과 선택, 우연이 운명이 될 때
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 때 스페인어 전공이었어요. 좋은 기회로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중남미 내의 고질적인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멕시코에 있을 당시 월세를 내고 살던 집이 있었어요. 집주인께서는 피부색이 밝은 편에 속하는 분이었거든요. 반면에 가정부는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이셨는데, 같은 메스티소(Mestizo)인데도 상대적으로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걸 보게 된 거죠. 저의 짧은 경험을 가지고 '중남미가 이렇다!'라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걸 보면서 피부색에 따라 빈부격차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한번은 제가 친구와 칸쿤(멕시코의 유명 휴양지)에 가려고 예쁜 블라우스를 짝 빼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가정부를 마주친 거예요. 그때 하셨던 말씀이 ‘칸쿤에서 입기 딱 좋은 블라우스다. 나도 칸쿤 가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비행기 표가 12만원정도 거든요? 집주인은 한국에도 여행 오고, 일본도 여행 오고, 심지어 제가 있던 때도 유럽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집 좀 잘 봐달라고 하셨던 때도 있었는데. 본인 나라의 휴양지도 가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는 거죠. 그런 격차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중남미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멕시코를 다녀와서 우연히 ‘국제개발협력과 중남미’라는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방학에 교수님이 연락해 오신 거예요. ‘국제개발협력’을 복수 전공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오시더라고요. 그때는 개인적인 관심이 고맙기도 했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별빛(공선주 활동가)도 만나게 되신 거죠? 아디와의 인연을 듣기에도 좋은 흐름이네요. (웃음)
작년 이맘때, ‘세계시민과 글로벌 공동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어요. 별빛이 그 수업에서 초청 강연을 해주셨거든요. 때마침 교수님이 급한 업무가 있다며 저에게 별빛의 진행을 도와 달라고 하셨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별빛이 ‘조교님, 저 시작해도 되나요?’하던 순간이요.
사실 초청 강연 시간은 대학생들에게 본 강의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별빛 강연은 끝까지 집중해서 듣게 되더라고요.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지내는 로힝야 여성들의 삶,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려는 활동가분들의 삶, 그런 것에 감명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거든요. 그렇게 ‘아디’를 알게 되었고, ‘아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죠. YP 인턴을 지원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 응원하고 있음을 계속 보여주는 것, 연대
아디에서 맡고 계신 업무를 소개해 주세요.
아디에서는 팔레스타인 트라우마 힐링센터 사업과 미얀마 평화도서관 사업 인턴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미얀마’,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로 인한 현지와의 소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 한계에 부딪히지 않도록 소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주로 비대면 회의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상시로 현지 사업이 무탈히 진행되고 있는지를 두고 소통하는 일이에요. 또 뉴스레터도 작성해요. 팔레스타인이나 미얀마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인 이슈나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리는 거죠.
제일 좋았던 업무가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현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 팀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대면해야 하니까 불편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셀림(이동화 활동가)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일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비대면이었지만 모니터를 통해 현지 활동가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유대감이 쌓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관계가 생긴 거죠.
10월에 팔레스타인 평화 여행이 있는데요. 사실 처음에는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어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모니터로만 보았던 현지 활동가분들을 직접 만나고 싶거든요.
사실 셀림에게 감사해요. 현지 회의가 부담된다고 말씀드렸을 때, ‘인턴으로서 최선을 다해주시면 된다.’ 하셨거든요. 감사하죠.
일단 관계가 생기면 빠져나오기 힘들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일을 하면서 느꼈던 건,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려면 연결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거야말로 끊임없이 응원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디는 현지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하잖아요. 그 일을 직접 해보기도 하셨을 거고요. 어떤 부분에서 그 일이 중요한 걸까요?
분쟁은 단편적인 이유로 발생하지 않잖아요. 인종이든 종교든 복잡한 이해관계가 깔려 있고, 역사적인 문제도 얽혀있어요. 그런데 국제기구라고 하는 곳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요. 그 지점에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에서도,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디에서 활동하며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이슈가 있을까요?
분쟁지역 여성들의 역량 강화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들이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며, 제 안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지, 곡해, 편견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분쟁지역이니만큼 교육 수준도 낮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고등교육을 이수한 여성들도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조사해 보니 오히려 고등교육을 이수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그런데도 남성이 여성보다 경제적 참여의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이었죠. 함께 일하는 팔레스타인 언니들은 실제로 정말 강하고 멋있어요. 무심한 듯 다정한 매력, 츤데레죠! (웃음)
# 아디와 지나, 동료와 식구
아디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요. 아디는 지나에게 어떤 곳으로 기억될 것 같나요?
아디는 정말 현지중심적인 곳이에요. 분쟁지역에서 가장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실제로 피해생존자, 분쟁당사자, 더 나아가 지역주민들의 요구까지 경청하는 곳인데, 그래서인지 저에게 아디는 ‘앞서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밀어주는 곳’ 같아요.
그전에는 열정만 가득했고, 한편으로는 그 열정을 어떻게 쏟아야 할지 몰랐던 저였어요. 그런데 아디에서의 시간은 제가 가진 열정과 역량을 어떻게 발휘해야 할지, 그것을 적절히 분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또 저만의 역량과 장점을 끄집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했어요. 제 안에 ‘웅장함’이랄까요? 포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반대로 한 사람을 향한 섬세함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내가 큰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이 일을 계속 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요.
아디에서의 인턴 기간이 끝난 뒤 어떤 계획이 있을지 궁금해요.
아직까지 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고 내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에 서툴러요. 제 생각을 정리하고, 이것을 글로든 말로든 잘 내뱉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수많은 활동가분들과 만나면서 추천받은 책도 많은데요. 한톨님(팔레스타인 연구팀 자원활동가)이 팔레스타인에 가 계시는 동안 자취방을 쓰라고 제안해 주셨거든요. 한톨님의 방에 있는 책 4권 정도를 읽어보는 것이 목표예요.(웃음)
10년 뒤를 떠올려 보았을 때, 어떤 ‘지나’를 그리게 되나요?
멕시코 교환학생 당시 엄마가 준 돈으로 호사스러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10년 뒤쯤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면 좋겠고, 엄마와 여행을 자주 다니고 싶어요. (웃음) 또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꾸준히 기부하는 어른이고 싶어요.
저에게 평화는 ‘일상’이거든요. 반대로 비평화는 ‘일상의 깨어짐’이기도 해요. 지나의 생각하는 행복한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그것과 함께 지나가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저는 엄마가 해준 삼계탕을 먹을 때 너무 행복해요. 삼계탕을 다 먹고 나면 당근과 감자를 넣고 죽을 해주시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죽을 것 같아.’라고 하면서 먹거든요. 그럼 어머니는 말씀하시죠. ‘니 무슨 소리 하는 거고! 죽으면 안 되지!’ (웃음)
저에게 평화는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수많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식하는 게 평화로운 세상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 아디에게 하고 싶은 말 해도 되나요? (웃음)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을 출퇴근하면서 듣는데, 문득 울컥할 때가 있거든요. 이 구절 꼭 적어주세요. (해당 구절은 아래에 적어 놓았다.)
일단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도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팔레스타인과 미얀마 현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가장 중요한 건, 아디에서 셀림, 별빛, 토리, 네나, 모아나, 사나, 푸딩, 비바, 다은님을 만나게 된 게 가장 큰 감사함이지 않을까 싶어요.
▲ 지나는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늦은 오후 시간에 간식을 뿌린다.
왜 이렇게 애틋한 관계가 됐을까 싶은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요. 서울에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는 느낌이거든요. 언제든 돌아와도 환영해 주실 것 같은 느낌! 또 저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감사해요.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이 있어서 더 그런가봐요. 지금이야 출퇴근해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데, 물리적 거리가 생기면 아무래도 멀어지잖아요. 계약직 노동자의 서러움! (웃음) 꼭 적어 줘요! (웃음)
사실 함께 했던 점심과 저녁이 많이 떠오를 것 같아요. 같이 밥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얘기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제가 외동이기도 하고 엄마가 많이 바쁘시기도 해서 혼자 밥 먹을 때가 많았거든요. 외로움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람이었는데! (웃음) 밥정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요. 셀림이 싸온 도시락도 뺏어 먹고. 식구라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인터뷰어 토리와 인터뷰이 지나는 함께 눈물을 훔치다 인터뷰를 끝냈다, 흡!)
“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가사 중)
마음을 주고 받는 일에는 힘이 있습니다. 일례로 ‘다정함’을 들 수 있을 텐데요. 관계 안에서의 다정함은 효율과 효용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 내고, 일상 안에서 가장 기적 같은 장면을 연출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부터 함께했던 지나는 아디에서 쿠션과 같은 사람입니다. 유쾌함을 무기로 다정함이 일상인 지나 덕분에 아디에서의 오피스 라이프는 심심할 겨를이 별로 없었습니다. 또 지나는 기꺼이 함께하고, 무엇이든 성실히 해내는 동료입니다. 우리는 그런 지나를 두고 자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7개월간의 시간에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아디의 감사한 인연, 2023년 KOICA 상반기 YP 인턴 지나를 소개합니다.
# 헤이즐럿 라테, 라면, 야구
세 가지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헤이즐럿 라테, 라면, 야구’ 이 세 개는 제 일요일 오후을 설명해 주는 것들이에요. 먼저 일요일 오후 5시쯤이 되면 라면을 끓여 먹고요. 잘 익은 배추김치와 딱 먹고, 집 주변에 자주 가는 카페로 가요. 거기에 가서 헤이즐럿 라테를 한 잔 테이크아웃한 다음에, 다시 집으로 와서 야구 경기를 봐요. 여름 경기는 해가 지고 나서 하는데, 저녁 6시 30분쯤 시작하거든요. 헤이즐럿 커피를 딱 들고, 롯데 자이언츠 경기(야구 경기)를 보는 거죠. 그게 일요일마다 하는 저의 루틴이에요. 일주일간 고생한 저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랄까요?
아디 활동가로서 자신을 소개할 물건은 없을까요?
음… 노트북? 노트북으로 모든 업무를 진행하니까요. 노트북으로 소통하고 노트북으로 현지 회의도 하고 하니까. 일종의 소통창구인 거죠. (팔레스타인) 연구팀이나 미얀마, 팔레스타인 현지 회의 등도 다 이 노트북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 지나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 타이밍과 선택, 우연이 운명이 될 때
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 때 스페인어 전공이었어요. 좋은 기회로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중남미 내의 고질적인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경험하게 되었어요.
멕시코에 있을 당시 월세를 내고 살던 집이 있었어요. 집주인께서는 피부색이 밝은 편에 속하는 분이었거든요. 반면에 가정부는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이셨는데, 같은 메스티소(Mestizo)인데도 상대적으로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걸 보게 된 거죠. 저의 짧은 경험을 가지고 '중남미가 이렇다!'라고 말하기에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걸 보면서 피부색에 따라 빈부격차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한번은 제가 친구와 칸쿤(멕시코의 유명 휴양지)에 가려고 예쁜 블라우스를 짝 빼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가정부를 마주친 거예요. 그때 하셨던 말씀이 ‘칸쿤에서 입기 딱 좋은 블라우스다. 나도 칸쿤 가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비행기 표가 12만원정도 거든요? 집주인은 한국에도 여행 오고, 일본도 여행 오고, 심지어 제가 있던 때도 유럽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집 좀 잘 봐달라고 하셨던 때도 있었는데. 본인 나라의 휴양지도 가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는 거죠. 그런 격차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중남미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멕시코를 다녀와서 우연히 ‘국제개발협력과 중남미’라는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방학에 교수님이 연락해 오신 거예요. ‘국제개발협력’을 복수 전공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오시더라고요. 그때는 개인적인 관심이 고맙기도 했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별빛(공선주 활동가)도 만나게 되신 거죠? 아디와의 인연을 듣기에도 좋은 흐름이네요. (웃음)
작년 이맘때, ‘세계시민과 글로벌 공동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어요. 별빛이 그 수업에서 초청 강연을 해주셨거든요. 때마침 교수님이 급한 업무가 있다며 저에게 별빛의 진행을 도와 달라고 하셨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별빛이 ‘조교님, 저 시작해도 되나요?’하던 순간이요.
사실 초청 강연 시간은 대학생들에게 본 강의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별빛 강연은 끝까지 집중해서 듣게 되더라고요.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지내는 로힝야 여성들의 삶,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려는 활동가분들의 삶, 그런 것에 감명받았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거든요. 그렇게 ‘아디’를 알게 되었고, ‘아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죠. YP 인턴을 지원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 응원하고 있음을 계속 보여주는 것, 연대
아디에서 맡고 계신 업무를 소개해 주세요.
아디에서는 팔레스타인 트라우마 힐링센터 사업과 미얀마 평화도서관 사업 인턴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미얀마’,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로 인한 현지와의 소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 한계에 부딪히지 않도록 소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주로 비대면 회의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상시로 현지 사업이 무탈히 진행되고 있는지를 두고 소통하는 일이에요. 또 뉴스레터도 작성해요. 팔레스타인이나 미얀마 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인 이슈나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리는 거죠.
제일 좋았던 업무가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현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다 보니 팀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대면해야 하니까 불편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셀림(이동화 활동가)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일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비대면이었지만 모니터를 통해 현지 활동가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유대감이 쌓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관계가 생긴 거죠.
10월에 팔레스타인 평화 여행이 있는데요. 사실 처음에는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어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모니터로만 보았던 현지 활동가분들을 직접 만나고 싶거든요.
사실 셀림에게 감사해요. 현지 회의가 부담된다고 말씀드렸을 때, ‘인턴으로서 최선을 다해주시면 된다.’ 하셨거든요. 감사하죠.
일단 관계가 생기면 빠져나오기 힘들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일을 하면서 느꼈던 건,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려면 연결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거야말로 끊임없이 응원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디는 현지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하잖아요. 그 일을 직접 해보기도 하셨을 거고요. 어떤 부분에서 그 일이 중요한 걸까요?
분쟁은 단편적인 이유로 발생하지 않잖아요. 인종이든 종교든 복잡한 이해관계가 깔려 있고, 역사적인 문제도 얽혀있어요. 그런데 국제기구라고 하는 곳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요. 그 지점에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에서도,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디에서 활동하며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이슈가 있을까요?
분쟁지역 여성들의 역량 강화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들이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며, 제 안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지, 곡해, 편견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분쟁지역이니만큼 교육 수준도 낮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고등교육을 이수한 여성들도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조사해 보니 오히려 고등교육을 이수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그런데도 남성이 여성보다 경제적 참여의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이었죠. 함께 일하는 팔레스타인 언니들은 실제로 정말 강하고 멋있어요. 무심한 듯 다정한 매력, 츤데레죠! (웃음)
# 아디와 지나, 동료와 식구
아디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요. 아디는 지나에게 어떤 곳으로 기억될 것 같나요?
아디는 정말 현지중심적인 곳이에요. 분쟁지역에서 가장 최하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실제로 피해생존자, 분쟁당사자, 더 나아가 지역주민들의 요구까지 경청하는 곳인데, 그래서인지 저에게 아디는 ‘앞서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밀어주는 곳’ 같아요.
그전에는 열정만 가득했고, 한편으로는 그 열정을 어떻게 쏟아야 할지 몰랐던 저였어요. 그런데 아디에서의 시간은 제가 가진 열정과 역량을 어떻게 발휘해야 할지, 그것을 적절히 분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또 저만의 역량과 장점을 끄집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했어요. 제 안에 ‘웅장함’이랄까요? 포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반대로 한 사람을 향한 섬세함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내가 큰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이 일을 계속 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요.
아디에서의 인턴 기간이 끝난 뒤 어떤 계획이 있을지 궁금해요.
아직까지 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고 내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에 서툴러요. 제 생각을 정리하고, 이것을 글로든 말로든 잘 내뱉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수많은 활동가분들과 만나면서 추천받은 책도 많은데요. 한톨님(팔레스타인 연구팀 자원활동가)이 팔레스타인에 가 계시는 동안 자취방을 쓰라고 제안해 주셨거든요. 한톨님의 방에 있는 책 4권 정도를 읽어보는 것이 목표예요.(웃음)
10년 뒤를 떠올려 보았을 때, 어떤 ‘지나’를 그리게 되나요?
멕시코 교환학생 당시 엄마가 준 돈으로 호사스러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10년 뒤쯤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면 좋겠고, 엄마와 여행을 자주 다니고 싶어요. (웃음) 또 도움이 필요한 기관에 꾸준히 기부하는 어른이고 싶어요.
저에게 평화는 ‘일상’이거든요. 반대로 비평화는 ‘일상의 깨어짐’이기도 해요. 지나의 생각하는 행복한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그것과 함께 지나가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저는 엄마가 해준 삼계탕을 먹을 때 너무 행복해요. 삼계탕을 다 먹고 나면 당근과 감자를 넣고 죽을 해주시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죽을 것 같아.’라고 하면서 먹거든요. 그럼 어머니는 말씀하시죠. ‘니 무슨 소리 하는 거고! 죽으면 안 되지!’ (웃음)
저에게 평화는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수많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식하는 게 평화로운 세상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눠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 아디에게 하고 싶은 말 해도 되나요? (웃음)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을 출퇴근하면서 듣는데, 문득 울컥할 때가 있거든요. 이 구절 꼭 적어주세요. (해당 구절은 아래에 적어 놓았다.)
일단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도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팔레스타인과 미얀마 현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가장 중요한 건, 아디에서 셀림, 별빛, 토리, 네나, 모아나, 사나, 푸딩, 비바, 다은님을 만나게 된 게 가장 큰 감사함이지 않을까 싶어요.
왜 이렇게 애틋한 관계가 됐을까 싶은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요. 서울에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는 느낌이거든요. 언제든 돌아와도 환영해 주실 것 같은 느낌! 또 저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감사해요. 아무래도 마지막 순간이 있어서 더 그런가봐요. 지금이야 출퇴근해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데, 물리적 거리가 생기면 아무래도 멀어지잖아요. 계약직 노동자의 서러움! (웃음) 꼭 적어 줘요! (웃음)
사실 함께 했던 점심과 저녁이 많이 떠오를 것 같아요. 같이 밥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얘기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제가 외동이기도 하고 엄마가 많이 바쁘시기도 해서 혼자 밥 먹을 때가 많았거든요. 외로움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람이었는데! (웃음) 밥정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요. 셀림이 싸온 도시락도 뺏어 먹고. 식구라는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인터뷰어 토리와 인터뷰이 지나는 함께 눈물을 훔치다 인터뷰를 끝냈다, 흡!)
“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