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여름(상)
스리랑카 갈레(Galle)에서
정혜진(토리)
프롤로그
▲ 스리랑카 반다라나아이크 국제공항 ⓒ혜진
이륙하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공기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나는 스리랑카의 냄새를 맡기 위해 의식적으로 숨을 쉬었다. 덥고 습한 공기, 후각이 아닌 촉각이 먼저 반응하긴 했지만. 반다라나아이크 국제공항에서 콜롬보(Colombo) 시내로, 콜롬보에서 다시 임지인 갈레(Galle)로 이동하면서 천둥을 동반한 폭우를 만났다. ‘비가 많이 온다더니, 정말 많이 오네.’ 스리랑카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30살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KOICA 청년중기봉사단을 다녀온 건 순전히 더 늦지 않기 위함이었다. 언제라도 나만의 속도를 고집할 수 있을 거라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늘 시간 앞에 무력해진다. 어딘가 조급한 마음이 올라왔다. 딱 그맘때쯤 ‘스리랑카’, ‘갈레’, ‘여성 청소년 보호 기관’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장, 모두가 현장이라고 부르는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디를 떠났다.
한 겨울의 여름 : 스리랑카 갈레(Galle)에서

▲ 갈레 앞바다와 행인들 ⓒ혜진
내가 파견된 곳은 스리랑카 남부에 위치한 갈레(Galle)의 사회복지국으로 여성 청소년 보호 기관이었다. 그곳은 보호자가 없거나 학대받아 분리가 필요한 여성 청소년들을 임시적으로 보호해 주는 공간이었다. 가기 전부터 우리는 그곳이 폐쇄된 공간이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신상을 보호해야 하며, 심리적으로도 안전거리를 유지해달라는 기관 측의 반복적인 요청도 있었다.
첫 날이 생각난다.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소담한 내부가 보였다. 작은 정원을 둘러싼 ㄱ자 배치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물쇠로 닫힌 철창살 형태의 문 사이로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잔뜩 호기심 어린 시선도 있었고, 경계의 눈초리도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이들과 면대면으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아유보완(안녕하세요!) 하무 웨무 사뚜딱!(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 싱할라어를 비롯해 그 어떤 공통 언어도 갖지 못한 우리는 구글 번역기와 각양각색의 비언어적 수단(이를테면 손짓, 표정)으로 소통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실험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어를 넘어선 마음의 전이와 연결은 가능할까.


▲ 기관 전경 일부 ⓒ혜진
어느 날은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교실 밖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 여성과 두 남자 아이가 교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침묵 속에 눈빛으로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한 친구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친구의 엄마가 왔다고 했다. 누군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그를 달랬다. 순식간에 공기는 달라졌고, 우리는 잠시 수업을 멈췄다.
엄마와 두 동생을 바라보는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기쁨일까, 슬픔일까, 그리움일까, 반가움일까. 그 때의 그 공간은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 같았다. 우리가 개입할 자리는 없어보였다. 그곳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돌보는 아이들만 있었다.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현장은 이런 곳이구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닌 몰랐던 존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곳, 나의 세계가 깨이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는 곳. 그 이후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헤아리기보다 최대한 ‘잘 듣기’로 결심했다.


▲ 수업에 참여 중인 기관 아이들 ⓒ혜진
그곳에 머문 시간은 4개월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총 30회가 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행했다. 주로 감정 이해와 수용을 돕는 프로그램이었고, 간간히 스스로에게 부여된 권리를 인식하도록 인권 교육도 가미했다. 회의(懷疑)가 특기인 나는 ‘우리의 활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라는 말을 곧잘 내뱉곤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종에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눈물이 날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 각자의 메시지를 들고 서있는 아이들의 피켓 인형 ⓒ혜진
‘자유롭게 욕망하고 욕심냈으면 좋겠어. 포기없이 말이야.' 마지막 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 말을 씩씩하게 전달했다. 최대한 힘이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한 친구가 지긋이 눈을 보며 ‘돌아가서도 행복해야 해.'라고 말했다. 뒤를 돌아 한참 눈물을 훔쳤다. ‘왜 눈물이 나지’ 늘 터진 눈물보다 생각이 뒤늦게 쫓아온다. 진짜 눈물은 종종 그렇다.
날 것의 애정에 대한 갈구를 보았다. 나를 사랑해달라는 눈빛을 보았다. 어차피 극소의 사랑만으로 흔들리고 웃고 우는 나인데, 우리인데 저 친구들과 다를 게 뭘까, 오히려 저건 용기의 일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리타분한 소감같지만 진심으로) 강팍하고 가난한 마음을 품어준 건 그들이었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 이들을 보았다. 그제서야 알았던 것 같다. 눈을 맞추고 했어야 할 마지막 인사는 당부가 아니라 고백이어야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해주어서 다시 고맙다고 생각했다.

▲ 마당에 모여있는 기관 아이들 ⓒ혜진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다른 세계를 뛰어 넘는 마음의 전이와 연결은 가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린 우리만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갔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데, 친구에게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진 하나를 받았다. 한국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며 가을이 깊어간다고 했다. ‘차디찬 계절에 나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라고 답장했다.
에필로그

▲ 고대도시 폴로나루와(Polonnaruwa) 어느 사찰에서 찍은 불상 ⓒ혜진
스리랑카는 오랜 정치적 혼란과 코로나19의 여파로 2022년 국가부도를 선언하며, IMF에 금융 구제를 신청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빈곤율이 2021년을 기점으로 13%에서 25%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보고했고, ‘특히 식량 불안정은 인구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다시 건강권에 영향을 미쳐 아동·청소년들의 학교 중퇴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2023) 또 UNICEF에서는 ‘영양실조가 특히 여성과 어린이 사이에 높은 수준’(2023)이며, World Bank에서는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2022)고 밝혔다. 그나마 작년 가을, 대선과 총선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교체되면서 스리랑카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시대 자체가 저성장의 시대라 가파른 회복세를 띄기는 애초에 어려운 구조다. 그런 세계에서 더 참혹한 현실을 맞이해야 하는 건 늘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다. 경제 위기로 깨어진 가정이 증가하고, 깨어진 가정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 해질녘 갈레 포트 앞바다 ⓒ혜진
스리랑카는 이른 아침이 고요한 한국과 참 많이 닮아있다. 조용히 마당을 빗질하고, 제단에 올릴 꽃을 딴다.(스리랑카는 인구의 70%가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로 고대 불교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다른 게 있다면 다양한 동물들(원숭이, 새, 개구리 등)의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
현장은 어떤 곳일까. 저개발국가를 낭만화할 생각도 없고, 구태여 연민이나 동정 따위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나는 (전쟁과 같은 절대 악의 상황들을 제외하고) 쉽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세상이 전부라는 생각이 (역시나)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그러니까 넓고 넓은 이 세상 속에 수많은 다름을 뛰어 넘어 한 인간으로, 한 생명으로 공명할 수 있는 가치란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 믿음이 실제로 유효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와 어떠한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어느 나라의 이슈와 누군가의 불행이 정말로 나와도 연결되고 가닿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일종의 희망이었다.
한 겨울의 여름(상)
스리랑카 갈레(Galle)에서
정혜진(토리)
프롤로그
▲ 스리랑카 반다라나아이크 국제공항 ⓒ혜진
이륙하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공기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나는 스리랑카의 냄새를 맡기 위해 의식적으로 숨을 쉬었다. 덥고 습한 공기, 후각이 아닌 촉각이 먼저 반응하긴 했지만. 반다라나아이크 국제공항에서 콜롬보(Colombo) 시내로, 콜롬보에서 다시 임지인 갈레(Galle)로 이동하면서 천둥을 동반한 폭우를 만났다. ‘비가 많이 온다더니, 정말 많이 오네.’ 스리랑카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30살이 훌쩍 넘은 늦은 나이에 KOICA 청년중기봉사단을 다녀온 건 순전히 더 늦지 않기 위함이었다. 언제라도 나만의 속도를 고집할 수 있을 거라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늘 시간 앞에 무력해진다. 어딘가 조급한 마음이 올라왔다. 딱 그맘때쯤 ‘스리랑카’, ‘갈레’, ‘여성 청소년 보호 기관’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장, 모두가 현장이라고 부르는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디를 떠났다.
한 겨울의 여름 : 스리랑카 갈레(Galle)에서
▲ 갈레 앞바다와 행인들 ⓒ혜진
내가 파견된 곳은 스리랑카 남부에 위치한 갈레(Galle)의 사회복지국으로 여성 청소년 보호 기관이었다. 그곳은 보호자가 없거나 학대받아 분리가 필요한 여성 청소년들을 임시적으로 보호해 주는 공간이었다. 가기 전부터 우리는 그곳이 폐쇄된 공간이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신상을 보호해야 하며, 심리적으로도 안전거리를 유지해달라는 기관 측의 반복적인 요청도 있었다.
첫 날이 생각난다.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리고 소담한 내부가 보였다. 작은 정원을 둘러싼 ㄱ자 배치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물쇠로 닫힌 철창살 형태의 문 사이로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잔뜩 호기심 어린 시선도 있었고, 경계의 눈초리도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아이들과 면대면으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아유보완(안녕하세요!) 하무 웨무 사뚜딱!(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 싱할라어를 비롯해 그 어떤 공통 언어도 갖지 못한 우리는 구글 번역기와 각양각색의 비언어적 수단(이를테면 손짓, 표정)으로 소통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실험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어를 넘어선 마음의 전이와 연결은 가능할까.
▲ 기관 전경 일부 ⓒ혜진
어느 날은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교실 밖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어느 여성과 두 남자 아이가 교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침묵 속에 눈빛으로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한 친구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친구의 엄마가 왔다고 했다. 누군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 그를 달랬다. 순식간에 공기는 달라졌고, 우리는 잠시 수업을 멈췄다.
엄마와 두 동생을 바라보는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기쁨일까, 슬픔일까, 그리움일까, 반가움일까. 그 때의 그 공간은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 같았다. 우리가 개입할 자리는 없어보였다. 그곳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돌보는 아이들만 있었다.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현장은 이런 곳이구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닌 몰랐던 존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곳, 나의 세계가 깨이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는 곳. 그 이후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헤아리기보다 최대한 ‘잘 듣기’로 결심했다.
▲ 수업에 참여 중인 기관 아이들 ⓒ혜진
그곳에 머문 시간은 4개월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총 30회가 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행했다. 주로 감정 이해와 수용을 돕는 프로그램이었고, 간간히 스스로에게 부여된 권리를 인식하도록 인권 교육도 가미했다. 회의(懷疑)가 특기인 나는 ‘우리의 활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라는 말을 곧잘 내뱉곤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종에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눈물이 날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 각자의 메시지를 들고 서있는 아이들의 피켓 인형 ⓒ혜진
‘자유롭게 욕망하고 욕심냈으면 좋겠어. 포기없이 말이야.' 마지막 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 말을 씩씩하게 전달했다. 최대한 힘이 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한 친구가 지긋이 눈을 보며 ‘돌아가서도 행복해야 해.'라고 말했다. 뒤를 돌아 한참 눈물을 훔쳤다. ‘왜 눈물이 나지’ 늘 터진 눈물보다 생각이 뒤늦게 쫓아온다. 진짜 눈물은 종종 그렇다.
날 것의 애정에 대한 갈구를 보았다. 나를 사랑해달라는 눈빛을 보았다. 어차피 극소의 사랑만으로 흔들리고 웃고 우는 나인데, 우리인데 저 친구들과 다를 게 뭘까, 오히려 저건 용기의 일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리타분한 소감같지만 진심으로) 강팍하고 가난한 마음을 품어준 건 그들이었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 이들을 보았다. 그제서야 알았던 것 같다. 눈을 맞추고 했어야 할 마지막 인사는 당부가 아니라 고백이어야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해주어서 다시 고맙다고 생각했다.
▲ 마당에 모여있는 기관 아이들 ⓒ혜진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다른 세계를 뛰어 넘는 마음의 전이와 연결은 가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린 우리만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갔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데, 친구에게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진 하나를 받았다. 한국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며 가을이 깊어간다고 했다. ‘차디찬 계절에 나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라고 답장했다.
에필로그
▲ 고대도시 폴로나루와(Polonnaruwa) 어느 사찰에서 찍은 불상 ⓒ혜진
스리랑카는 오랜 정치적 혼란과 코로나19의 여파로 2022년 국가부도를 선언하며, IMF에 금융 구제를 신청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빈곤율이 2021년을 기점으로 13%에서 25%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보고했고, ‘특히 식량 불안정은 인구의 상당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다시 건강권에 영향을 미쳐 아동·청소년들의 학교 중퇴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2023) 또 UNICEF에서는 ‘영양실조가 특히 여성과 어린이 사이에 높은 수준’(2023)이며, World Bank에서는 ‘인구의 4분의 1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2022)고 밝혔다. 그나마 작년 가을, 대선과 총선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교체되면서 스리랑카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시대 자체가 저성장의 시대라 가파른 회복세를 띄기는 애초에 어려운 구조다. 그런 세계에서 더 참혹한 현실을 맞이해야 하는 건 늘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이다. 경제 위기로 깨어진 가정이 증가하고, 깨어진 가정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 해질녘 갈레 포트 앞바다 ⓒ혜진
스리랑카는 이른 아침이 고요한 한국과 참 많이 닮아있다. 조용히 마당을 빗질하고, 제단에 올릴 꽃을 딴다.(스리랑카는 인구의 70%가 불교를 믿는 불교 국가로 고대 불교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다른 게 있다면 다양한 동물들(원숭이, 새, 개구리 등)의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
현장은 어떤 곳일까. 저개발국가를 낭만화할 생각도 없고, 구태여 연민이나 동정 따위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나는 (전쟁과 같은 절대 악의 상황들을 제외하고) 쉽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세상이 전부라는 생각이 (역시나)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그러니까 넓고 넓은 이 세상 속에 수많은 다름을 뛰어 넘어 한 인간으로, 한 생명으로 공명할 수 있는 가치란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 믿음이 실제로 유효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와 어떠한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어느 나라의 이슈와 누군가의 불행이 정말로 나와도 연결되고 가닿을 수 있다는 것, 그건 일종의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