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티베트 인권기록 사업을 마무리하며 :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것 (모아나/김인영 활동가)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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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종료되지만 한국 사회에 티베트 상황을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것,

그것이 아디에 남겨진 몫이 아닐까 싶어요."  

인권기록팀 모아나(김인영) 활동가


처음 티베트 이슈가 눈에 들어왔던 건, 2012년 어느 티베트 청년이 독립을 요구하며 분신한 사건을 다룬 기사를 보고나서부터였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몸, 고통 속에 포효하는 얼굴로 도로를 뛰는 그의 모습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한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실 처음 아디가 눈에 들어왔던 것도 '티베트'를 다루는 몇 안 되는 국내 단체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아디는 2021년부터 티베트 풀뿌리 단체 TCHRD*와 함께 티베트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간 두 권의 보고서*를 발간하였고, 또 TCHRD가 당사자 그룹으로, 풀뿌리 단체로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함께해 왔습니다.  

2024년 3월을 끝으로 TCHRD와 함께하던 티베트 인권기록 사업은 마무리가 됩니다. 관계의 전환일 뿐, 아디는 아디에 남겨진 몫을 두고 티베트 독립과 인권을 위해 계속해서 연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TCHRD와 기록 활동으로 함께한 지난 3년을 뒤로하고, 이번 매듭지음이 어떤 연대의 시작을 내포하고 있는지 듣기 위해 담당자 모아나(김인영) 활동가를 찾았습니다. 


* TCHRD : 티베트민주주의센터(Tibetan Center for Human Rights and Democracy, TCHRD) (바로가기)

** 티베트 인권 실태 보고서

(1) 티베트 교육과 언어에 관한 실태 보고서(2022) (바로가기)

(2) 네팔 내 티베트 난민 인권실태 보고서: 림보에 갇힌 삶(2023)  (바로가기)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아디 인권기록팀에서 로힝야와 티베트 인권기록을 하고 있는 모아나 활동가입니다. 오랜만에 아디 홈페이지에 들어가 소개란을 봤는데 마야 안젤루의 말을 인용한 것과 함께 피해 당사자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의와 인권 실현의 첫걸음이니 그들과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하겠다는 각오가 적혀 있더라고요. 부끄럽지만 그 첫 마음을 기억하며 현지 단체의 활동가들,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과 분쟁 지역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국제사회에 직접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티베트 인권기록 사업이 어떤 계기로 시작됐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티베트 인권기록 사업은 2021년부터 시작됐는데요. 여느 인권 단체들이 그렇듯, 협력 단체인 티베트인권민주주의센터(이하 TCHRD) 역시 대응해야 할 인권 이슈들은 산적해 있는데, 활동가가 부족했거든요. 당시에는 재정과 기술적인 면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필요했고요.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 지역에서 티베트의 인권 상황이 굉장히 엄중한데,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이슈이다 보니 ‘잘 알려보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아디에서 ‘티베트 인권기록’ 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현지 풀뿌리 단체 TCHRD에 대한 소개도 간략하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TCHRD는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 난민들이 1996년 다람살라에 설립한 인권 단체예요. 티베트 난민 당사자가 주도하는 풀뿌리 단체로 티베트 인권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슈를 두고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세워진 지 근 30년이 된 만큼 활동 경험도 많고 또 그만큼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단체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장기간 지치지 않고 집중력 있게 활동하는 티베트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치열함을 배우기도 했어요.


‘티베트 인권기록’, 어떤 활동인가요?

인권기록팀의 다른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티베트 인권기록 사업 역시 현장 실태조사를 통해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시선으로 인권 실태 보고서를 펴내는 활동에 주력했어요. 2022년과 2023년 연달아 티베트 언어와 교육에 관한 권리, 네팔에 체류 중인 티베트 난민들의 인권 실태를 주제로 두 권의 실증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실태조사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유엔 인권이사회 참석이나 캠페인과 같은 국제 옹호 활동도 벌였고요. 티베트 언어와 교육 문제는 유엔인권이사회 특별 절차 진정 제기를 통해 유엔 전문가들이 중국 정부의 티베트에 대한 강압적인 동화 정책을 두고 우려를 표명하는 서신을 전달하는 성과도 있었어요. 네팔 내 티베트 난민 인권 문제의 경우, 청원 캠페인을 진행하였는데요. 캠페인에 동참해 주신 분들의 지지 서명 기반으로 네팔과 중국 정부에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어요. 

또 (현지 단체) 신규 활동가의 손이 모자랐던 것도 큰 이슈여서 활동가들의 성장을 돕고, 활동의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주요 활동 중 하나였어요. 재정적인 지원, 기술적인 지원도 필요했고요. 가령 TCHRD가 오랜 기간 축적한 양심수 데이터를 활용해 활동할 수 있도록 태국의 양심수지원연합(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AAPP)으로부터 자문을 받기도 하고, 함께 고민하는 워크숍을 열기도 했어요. 또 단체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홍보, 모금도 중요하니까,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고 조직 차원의 로드맵을 수립해보기도 했습니다. 


현지 단체가 당사자로서 본인들의 활동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조력하며 함께했다는 느낌이에요.

‘티베트 인권기록’이니 만큼 ‘기록 활동’이 주요한 활동이었을 텐데요. 아까도 잠깐 소개해 주셨지만, TCHRD와 협력하여 총 2개의 보고서를 발간하셨잖아요. 보고서별로 주제가 다른데, 해당 주제를 선정한 기준도 있었을까요?

아디는 현장 중심 단체이다 보니 실태조사 주제도 TCHRD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어요. 티베트에서는 중국의 소수 민족을 대상으로 동화 정책과 중화 정책이 몇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고, 최근엔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거든요. 언어, 교육, 종교에 대한 탄압도 심해졌고, 유아 교육 과정부터 (본인들의 언어가 아닌) 중국어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에요. 사실 첫 보고서를 준비하던 시기에 함께했던 건 아니라 확실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한 집단의 정체성에 해당하는 ‘언어와 교육’이 흔들리는 문제이다 보니 대응이 중요하고 또 시급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이번 네팔 내 티베트 난민 인권실태 보고서의 경우, 10여 년 전쯤 한 인권 단체에서 네팔 내 티베트 난민 인권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는 인권 상황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었고 국제사회에서도 계속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아디와 현지 단체 양쪽 모두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요. 또 티베트와 달리 네팔은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실태조사가 가능하다는 측면도 고려가 됐던 것 같아요. 

 

티베트 현지 활동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활동한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상황 등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이번 보고서 작업은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 동안은 제노사이드를 단순히 폭력에 의한 ‘즉각적인’ 대규모 살해 행위로서 협의적 차원으로만 이해했는데, 티베트 상황을 보면서 ‘서서히’ 한 집단의 존재를 와해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제노사이드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한 집단이 사회적으로 사라져야 할 존재로 낙인찍혀서 어디에도 발 붙이지 못한 채 절멸 당할 위기에 있는 거니까요.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합병한 게 1950년대 초니까 그때부터 티베트는 70년 넘게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셈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티베트 인권기록 활동을 하면서는 그런 지점들을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인권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중요한 이유는 간명하다고 생각해요.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사라지잖아요. 인권 활동은 긴 싸움인데, 증언과 증거가 없다면 지속해 나가기 어려울 거예요. 가령 우리나라 위안부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여러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면,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에는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인권 활동은 기록 없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기록은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무력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가 닿으면 고유의 이야기가 되고 또 서로를 공명하게 하는 가치와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대상이 아디 회원분들일 수도 있고, 국내 대중일 수도 있고 또 국제사회 일수도 있겠죠. 이번 네팔 내 티베트 난민 인권 개선 청원 캠페인에는 704명이 지지 서명에 동참해 주셨는데요. 지지 서명을 바탕으로, 얼마 전 네팔과 중국 정부에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인권 기록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과정이 불가능했겠죠. 그런 의미에서 인권 기록 작업은 인권 활동의 중요한 시작점이자 기반이 아닐까 싶어요.

 

3월을 끝으로, ‘티베트 인권기록 사업’이 마무리된다고 알고 있어요. ‘마무리’라고 하면 ‘종결’, ‘끝’인 느낌이 강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연결과 연대의 '끝'은 아니니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이 됐어요. 어떠신가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TCHRD와 협력 관계를 맺게 된다고 알고 있거든요.

맞아요. 어쨌든 아디의 지향은 현장 중심이 맞고, 함께 했던 TCHRD가 독립적으로 활동할 만한 역량을 갖추게 되었으니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으며 협력할 필요가 있겠다는 내부적 판단이 있었어요. 지금과는 다른 관계겠지만, 아디 또한 계속해서 티베트 이슈를 눈여겨 볼 예정이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긴밀하게 연대하려고 해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티베트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어요. UN 인권이사회에 참석하여 발언한다던가, 성명서, 청원서 등을 제출하는 여러 활동으로 단번에 상황이 나아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죠. 정말 긴 싸움이거든요. 

지금도 티베트 상황은 보고서와 다르지 않아요. 동화 정책과 중화 정책에 따라 티베트의 언어와 종교는 말살될 위기에 있어요. 유아 교육 과정부터 중국어 교육 시행을 강요하고, 민간 주도의 티베트 언어와 문화 교육도 금지하고 있고요. 중국 정부는 소수 민족 언어, 종교 말살을 목적으로 수많은 티베트 지식인들과 교육자들, 문화 지도자들을 박해하고 있고, 체포, 자의적 구금도 지속되고 있어요. 실종 사례도 많고요. 일반인 사이에서도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들이 많거든요.

네팔에 계신 티베트 난민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90년대부터 하나의 중국 기조가 인근 국가로도 확대되면서 인권 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됐어요. 티베트 난민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달라진 건 없고 답보상태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악화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뉴스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실정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알고자 한다면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동감해요. 그렇기 때문에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어떤 각오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노력을 요구하는 일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너무 필요한 자세이지만, 매번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부끄럽지만 저도 어떤 날은 ‘살펴봐야 한다’는 부채감으로 찾아보기도 하는데요. 한국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슈이니 만큼 구글로 ‘Tibet’를 검색해서 국외 미디어를 살펴보고는 하는데, 언어 장벽도 느껴지고 그마저도 보도량이 많지 않더라고요.

인권기록 사업은 종료됐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앞으로도 연대는 계속될 거예요. 이슈 대응도 이어질 거고요. 그때마다 아디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령 티베트 상황을 한국 사회에 공유한다던가, 청원 캠페인이나 후원을 요청드리기도 해야할 거예요. 사업은 종료되지만, 한국 사회에 티베트 상황을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것이 아디에 남겨진 몫이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공통 질문과도 같은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웃음) 모아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요?

단박에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요. (웃음) 평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상태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가는 일종의 투쟁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평화는 전쟁과 분쟁이 없는 상태같이 거창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상과 상황에 따라서 무슬림 여성들에게는 부르카를 벗는 일일 수도 있고, 동아프리카 가뭄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물을 안정적으로 얻는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 로힝야나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폭력에 굴하지 않고 사라지는 민족이 되지 않기 위한 투쟁 과정 그 자체일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 저희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상태로 살고 있잖아요. 분쟁의 상황에 놓인 건 아니지만, 설사 나의 일상이 평화롭다고 하더라고 내 주변에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하는 것도 평화의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아디가 평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그런 측면으로까지 확장된 개념이 아닐까 싶고요.


평화를 상태가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일, 너무 멋진 것 같아요. 활동가분들을 인터뷰 하다 보면 꼭 이 질문이 묻고 싶더라고요. 정말 마지막 질문인데요. 앞으로도 계속 이 일(분쟁지역 피해자 옹호 활동)을 하실 건가요? (웃음)

네, 계속해 나가게 될 것 같아요. 아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제가 이 업을 지속해 나가는 데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멈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정의감도 있지만, 그 상황을 아는 사람으로서 외면하기 어려운 마음도 크거든요. 현장에서 활동가들과 생존 피해 당사자들을 만났고, 또 그들의 사정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된 만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설사 직업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탄원 캠페인에 참여할 수도 있고, 또 거리에 나가 함께 목소리를 보탤 수도 있겠죠.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분쟁지역 생존 피해자들을 옹호하는 활동을 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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