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티베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9등을 하면서 가수로 성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던 청년은 2022년 2월, 분신(self-immolation)을 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분신 시위를 통해 세상에 전하려 했던 처절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는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독립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티베트는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되는 대신 자치권을 보장 받는 선에서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1959년 3월, 약속과 다르게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를 배척하는 중화정책이 시행되고 식량사정이 악화되면서 티베트인들은 중국정부를 반대하며 봉기했습니다. 중국정부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여성, 아동 등 수만명을 학살하고 사원들을 파괴했습니다. 이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는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지금까지 비폭력운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티베트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은 중국정부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 통제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집에 두거나 법설을 듣는 것 조차 처벌됩니다. 달라이 라마의 생일을 축하는 메시지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것 조차 검열하고 처벌합니다. 티베트 사원과 유적은 파괴되고 자연자원은 수탈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숨 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티베트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아마 본인의 몸에 불사르며 목숨으로 저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래가 기대됐던 젊은 가수가 외쳤던 메시지는 바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총 16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매년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거대한 절망감이 짓누르는 느낌을 받지만 평생을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티베트인들을 보며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아디는 티베트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회를 엿보다가 지난 3년간 티베트인권민주주의센터(TCHRD)와 협력하며 보다 나은 인권기록과 효과적인 캠페인을 위해 성장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TCHRD는 1996년 인도 다람살라에 설립된 티베트 유일의 인권단체로 티베트 자치구의 인권상황을 모니터링하여 보고서를 발행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 관련 이슈 해결을 위해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 © TCHRD/Free Tibet
지난 해 5월, TCHRD와 아디는 ‘티베트 교육과 언어 실태 보고서’를 공동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 100만 명의 티베트 어린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녀야하고 중화 교육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표준 중국어 ‘의무 교육’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티베트어,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수업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티베트어로 대화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동을 비롯한 모든 티베트인들의 SNS, 사적인 통화까지 통제, 검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TCHRD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분은 ‘자녀들에게 티베트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사실이 적발되어 중국의 재교육 시설에 구금되었습니다.
▲ ©OHCHR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인권상황도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2022년에 수행한 아디와 TCHRD의 현지조사에 따르면 네팔에 살고 있는 티베트 난민들은 스스로를 제2의 티베트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One-china Policy 정책의 영향을 받은 네팔정부는 난민카드 발급을 중단하고, 경제활동이 어렵도록 하고 있으며, 집회결사의 자유는 커녕 종교행사를 가지는 것도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젊은 티베트 난민들은 미래가 없다고 느끼며 무력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보고서를 발간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캠페인도 벌이게 될 겁니다.
우리에게 3월은 봄의 시작입니다. 벚꽃이 만개한 지금, 마음에도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에게 3월은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결연함이고 저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에게 5월의 의미와 유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외칠 수 밖에 없던 한 청년의 몸부림은 그만큼의 무거움으로 다가옵니다. 감히 그 무거움을 같이 나눠 지자고, 함께 어깨걸자고 손을 내밀 용기가 저에게, 여러분에게 있나요? 흐트러지게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천도열반을 기원합니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티베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9등을 하면서 가수로 성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던 청년은 2022년 2월, 분신(self-immolation)을 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분신 시위를 통해 세상에 전하려 했던 처절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는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독립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티베트는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되는 대신 자치권을 보장 받는 선에서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1959년 3월, 약속과 다르게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를 배척하는 중화정책이 시행되고 식량사정이 악화되면서 티베트인들은 중국정부를 반대하며 봉기했습니다. 중국정부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여성, 아동 등 수만명을 학살하고 사원들을 파괴했습니다. 이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는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지금까지 비폭력운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티베트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은 중국정부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 통제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집에 두거나 법설을 듣는 것 조차 처벌됩니다. 달라이 라마의 생일을 축하는 메시지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것 조차 검열하고 처벌합니다. 티베트 사원과 유적은 파괴되고 자연자원은 수탈되고 환경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숨 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티베트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아마 본인의 몸에 불사르며 목숨으로 저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래가 기대됐던 젊은 가수가 외쳤던 메시지는 바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총 16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매년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거대한 절망감이 짓누르는 느낌을 받지만 평생을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티베트인들을 보며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아디는 티베트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회를 엿보다가 지난 3년간 티베트인권민주주의센터(TCHRD)와 협력하며 보다 나은 인권기록과 효과적인 캠페인을 위해 성장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TCHRD는 1996년 인도 다람살라에 설립된 티베트 유일의 인권단체로 티베트 자치구의 인권상황을 모니터링하여 보고서를 발행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 관련 이슈 해결을 위해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 © TCHRD/Free Tibet
지난 해 5월, TCHRD와 아디는 ‘티베트 교육과 언어 실태 보고서’를 공동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약 100만 명의 티베트 어린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녀야하고 중화 교육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표준 중국어 ‘의무 교육’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티베트어,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수업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티베트어로 대화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동을 비롯한 모든 티베트인들의 SNS, 사적인 통화까지 통제, 검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TCHRD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분은 ‘자녀들에게 티베트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사실이 적발되어 중국의 재교육 시설에 구금되었습니다.
▲ ©OHCHR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인권상황도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2022년에 수행한 아디와 TCHRD의 현지조사에 따르면 네팔에 살고 있는 티베트 난민들은 스스로를 제2의 티베트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One-china Policy 정책의 영향을 받은 네팔정부는 난민카드 발급을 중단하고, 경제활동이 어렵도록 하고 있으며, 집회결사의 자유는 커녕 종교행사를 가지는 것도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젊은 티베트 난민들은 미래가 없다고 느끼며 무력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보고서를 발간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캠페인도 벌이게 될 겁니다.
우리에게 3월은 봄의 시작입니다. 벚꽃이 만개한 지금, 마음에도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에게 3월은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결연함이고 저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에게 5월의 의미와 유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외칠 수 밖에 없던 한 청년의 몸부림은 그만큼의 무거움으로 다가옵니다. 감히 그 무거움을 같이 나눠 지자고, 함께 어깨걸자고 손을 내밀 용기가 저에게, 여러분에게 있나요? 흐트러지게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천도열반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