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기] 메이크틸라, 기록에서 시작된 10년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26-07-20

미얀마 평화도서관 출장기

메이크틸라, 기록에서 시작된 10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사단법인 아디 이동화 활동가


미얀마 중부 도시 메이크틸라는 사단법인 아디(ADI)의 첫 번째 활동 지역이다. 2013년 발생한 반무슬림 학살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016년에 창립한 아디는 첫 번째 활동지로 메이크틸라를 선택했고, 피해생존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서 모든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피해 생존자들은 고립되어 있었고, 도시는 여전히 긴장과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활동가들은 약 3개월 동안 현지에 머물며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했고, 그 결과를 인권실태보고서 『메이크틸라 학살, 그리고 일상화된 억압과 차별』(2016)을 발간하고,  [아디-미얀마 메이크틸라 학살 인권실태] 영상을 제작해 세상에 공개했다.

하지만 아디에게 기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피해 생존자의 기록과 증언이 사회의 기억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폭력의 반복을 줄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록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고, 그 기록은 다시 지역사회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현장사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현장 프로젝트가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이었다. 평화도서관은 당시 인권 기록 활동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었던 로까 야다나 사원(Loka Yadana Monastery) 안에서 시작됐다. 2017년 삼성꿈장학재단의 지원으로 평화도서관 건물을 준공했고, 2018년 개관 이후 약 8년간 운영해 왔다. 이후에는 기쁨나눔재단과 아디의 자체 재원을 더해 2026년 8월까지 약 10년의 여정을 이어왔다.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평화를 배우는 공간

2026년 4월, 나는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의 졸업식 참석과 현지 이양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메이크틸라를 찾았다. 이번 방문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출장이 아니라, 2026년 9월부터 현지 운영진이 직접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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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평화도서관 전체 졸업식 사진

현장에서 다시 만난 평화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Peace and Dream Makers Peace Camp는 단순한 캠프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갈등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참여형 평화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평화는 강의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참여하는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있었다.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장기 내전에 들어섰고, 많은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도서관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배우고 친구를 만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도서관이 지역사회 안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는 점이었다. 평화도서관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은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 다시 돌아왔고, 학부모들은 프로그램 운영을 함께 도우며 도서관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외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공간이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이 함께 책임지고 지켜 가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지난 10년을 이야기해 준 두 통의 편지

출장 마지막 날, 평화도서관에서 활동했던 학생과 학부모가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네 주었다.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보고서와 사업평가서를 작성했지만,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 두 통의 편지만큼 잘 보여주는 기록은 없었다.

평화도서관에서 6년을 보낸 학생 소 네인 따(Soe Nyein Thar)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 제가 찾은 평화, 그리고 제 힘으로는 1000년이 걸려도 찾지 못했을 소중한 보물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6년 동안 이곳은 저의 학교이자 두 번째 가족, 그리고 저의 온 우주였습니다. 피스드림메이커에서 피스캠프에 이르기까지, 모닥불 앞에서의 이야기들과 영화를 보던 순간들은 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을 핵심 기억(Core Memory)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전으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제 남동생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이곳을 깊이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힐 평화의 빛을 마음에 품고 진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이 공간을 지어 주신 선생님의 노력과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편지와 함께 받은 만달레이의 작은 우차 모형과 스카프, 인레 지역에서 만든 가방은 기념품이라기보다 지난 시간을 함께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2016년 우리는 메이크틸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메이크틸라 사람들이 우리의 시간을 기록해 우리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기록으로 시작하여 지역 아동과 함께 만드는 평화

이번 출장은 아디가 운영하는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의 마지막 공식 방문이었다. 2026년 9월부터 평화도서관은 현지 운영진과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자립적인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2016년 아디가 메이크틸라에서 시작한 첫걸음은 참혹한 학살의 아픔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디에게 기록은 과거를 남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기록은 지역사회의 현실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었고, 마침내 지역 아동들을 중심에 둔 평화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아직 미얀마의 내전은 끝나지 않았고 아이들의 일상은 위태롭다. 하지만 메이크틸라의 아이들은 평화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힘을 기르고 있다. 

10년 전 눈물의 기록으로 시작된 이 공간은, 이제 지역 주민과 아이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가꾸어 갈 공동체의 공간으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당분간 재정적 어려움도 예상되지만, 아디는 도서관이 지역 공동체의 힘으로 그 과정을 하나씩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출장에서 받은 두 통의 편지는 지난 10년 동안 메이크틸라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써 내려온 가장 소중한 성과보고서이자, 앞으로 이들이 스스로 이어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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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 네인 따(Soe Nyein Thar)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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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참여학부모 도 카잉 투왈 민(Daw Khaing Thuwal Myint)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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