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지(권지윤 활동가)의 미얀마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 출장기는 총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편은 상(上)편입니다.
○ 본편에서는 출장 4일차까지를 다룹니다.
▲ 아디 출장팀, 도서관 교사, 자원 활동가 단체 사진 ⓒ사단법인 아디
12월 3일,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에, 아디 미얀마 연대 사업 팀은 미얀마에 도착했습니다. 8년간의 평화도서관 사업의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서였죠.
그날 한국에선 비상계엄이 있었지만, 절묘한 타국행이 무색하게 미얀마는 군부의 쿠데타가 현재 진행 중인 곳입니다. 심지어 출장을 떠나기 한 달 전 즈음인 11월 11일에는 평화도서관이 위치한 메이크틸라 내 공군 기지에 공습이 있었습니다. 삼엄해진 군부의 경비 태세 속에 떨리는 마음, 그럼에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도착했습니다. 평화도서관과 그 안의 사람들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요.
12월 4일: 평화 만나기
도서관에 도착한 첫날, 우진 페인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현재 도서관 상황에 대해서 애정과 근심을 담고 천천히 본인의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안에는 자립 운영의 어려움에 대한 솔직한 고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무실에서 화상 회의 화면으로만 보던 평화도서관 교사들은 아디 출장팀의 차량이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서관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실제로 만난 그들은 그전의 인상보다 훨씬 활기차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청년들이었어요. 도서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어떻게 이러한 자긍심을 주는지 더 궁금해진 순간이었습니다.

▲ 먼지의 선물 증정식 ⓒ사단법인 아디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한국에서 가져 간 선물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후 아디 출장팀과 교사들은 사원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양한 각도로 평화도서관을 담았습니다. 8년간의 성과 보고 영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오후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평화도서관의 안팎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도서관의 지붕 뒤편으로 저무는 노을과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많은 책들이 이루던 장관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2월 5일: 자비와 평화
▲ 메타 아예우 몬 도서관 외관 ⓒ사단법인 아디
이날은 아침부터 메이크틸라 내 다른 지역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 뵌 날이었어요. 메타 아예우 몬 도서관. 한국말로 번역하면 ‘자비 도서관’에 가까운 이름이었습니다. 도서관 앞에 걸린 칠판에는 그 이름에 걸맞은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몇 날 몇 시에 누구의 집에서 모힝가(미얀마 전통 국수)를 나누니, 올 사람은 와서 먹어도 좋다는 내용이에요. 이런 행사가 자주 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셨어요. 이 도서관은 피따야와 평화도서관의 관계처럼 마을의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중요한 장소이자 통로라고 느꼈습니다.
평화도서관보다 훨씬 작은 공간이었지만, 관장님은 전국 각지의 작가들이 도서를 기부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이 도서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고 또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도서관을 통해 더 많은 곳에 평화도서관의 커리큘럼을 전달할 수 있을지, 이곳이 아니라면 또 어떤 다른 곳에 평화도서관의 교육 가치가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메타 아예우 몬 도서관 미팅 ⓒ사단법인 아디
저녁에는 도서관 교사들, 띠하와 회의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그건 이날만이 아니라, 메이크틸라에 머문 모든 날들이 그랬어요. 따로 또 같이, 인터뷰, 미팅, 수업 등의 바쁜 일과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여서 출장 일정을 점검하고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공동의 사업을 함께 일궈나가야 하는 동료이기에, 서로의 비전을 더 명확히 알아야 했죠. 앞으로의 과정을 위해서 더 많이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저녁들이었습니다.
12월 6일: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법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던 날이 밝았습니다. 새벽같이 숙소를 나서, 2013년의 아픔의 잔해가 남아있는 곳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이슬람 모스크들과 보석상. 그리고 밍글라제이온 마을까지요. 2013년 메이크틸라에서 있었던 무슬림에 대한 학살은 아디가 처음 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평화도서관에서 그토록 다양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새벽 일정이 끝난 후 아침 식사 ⓒ사단법인 아디
도서관에 돌아와서는 평화 캠프 2를 졸업한 학생 두 명과 함께 비디오그래피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출장 중 제가 직접 이끌어 나가야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요. 한국에서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들고 온 자료와 카메라를 펼쳐 놓고, 간단한 유의 사항과 촬영에 임할 때 가지면 좋을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도 전달했지만, 그보다는 카메라를 너무 어렵게 대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일상에 녹였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기에 그 점을 강조하면서 설명했습니다.



▲ 비디오그래피 워크숍 자료 일부 ⓒ사단법인 아디


▲ 워크숍 현장 사진 ⓒ사단법인 아디
비디오그래피 워크숍이 끝나면, 두 학생은 저의 캠코더를 대여해 아디가 메이크틸라에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자신들, 그리고 도서관의 일상을 담아오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8년간의 사업 보고 영상을 만들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제 안에 떠오른 욕심은 메이크틸라의 사람들, 우리의 동료 활동가들과 학생들, 이용자들, 많은 사람들과 이 공간 자체가 타자화되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셀프캠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학생들이 담아올 일상의 조각을 기대하며 헤어졌습니다.
▲ 촬영 실습 중인 학생들 ⓒ사단법인 아디
오후에는 학부모 분들이 이번 출장의 첫 인터뷰를 열어주셨어요. 평화도서관의 교육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그를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씀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감사함이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어요.


▲ 학부모 인터뷰 ⓒ사단법인 아디
출장의 매일 밤이 그랬듯, 내일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으로 잠드는 4일 차 밤이었습니다.
○ 먼지(권지윤 활동가)의 미얀마 메이크틸라 평화도서관 출장기는 총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편은 상(上)편입니다.
○ 본편에서는 출장 4일차까지를 다룹니다.
12월 3일,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에, 아디 미얀마 연대 사업 팀은 미얀마에 도착했습니다. 8년간의 평화도서관 사업의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서였죠.
그날 한국에선 비상계엄이 있었지만, 절묘한 타국행이 무색하게 미얀마는 군부의 쿠데타가 현재 진행 중인 곳입니다. 심지어 출장을 떠나기 한 달 전 즈음인 11월 11일에는 평화도서관이 위치한 메이크틸라 내 공군 기지에 공습이 있었습니다. 삼엄해진 군부의 경비 태세 속에 떨리는 마음, 그럼에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도착했습니다. 평화도서관과 그 안의 사람들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요.
12월 4일: 평화 만나기
도서관에 도착한 첫날, 우진 페인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현재 도서관 상황에 대해서 애정과 근심을 담고 천천히 본인의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안에는 자립 운영의 어려움에 대한 솔직한 고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무실에서 화상 회의 화면으로만 보던 평화도서관 교사들은 아디 출장팀의 차량이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서관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실제로 만난 그들은 그전의 인상보다 훨씬 활기차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청년들이었어요. 도서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어떻게 이러한 자긍심을 주는지 더 궁금해진 순간이었습니다.
▲ 먼지의 선물 증정식 ⓒ사단법인 아디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한국에서 가져 간 선물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후 아디 출장팀과 교사들은 사원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양한 각도로 평화도서관을 담았습니다. 8년간의 성과 보고 영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오후의 햇살을 잔뜩 머금은 평화도서관의 안팎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도서관의 지붕 뒤편으로 저무는 노을과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많은 책들이 이루던 장관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12월 5일: 자비와 평화
이날은 아침부터 메이크틸라 내 다른 지역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 뵌 날이었어요. 메타 아예우 몬 도서관. 한국말로 번역하면 ‘자비 도서관’에 가까운 이름이었습니다. 도서관 앞에 걸린 칠판에는 그 이름에 걸맞은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몇 날 몇 시에 누구의 집에서 모힝가(미얀마 전통 국수)를 나누니, 올 사람은 와서 먹어도 좋다는 내용이에요. 이런 행사가 자주 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셨어요. 이 도서관은 피따야와 평화도서관의 관계처럼 마을의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중요한 장소이자 통로라고 느꼈습니다.
평화도서관보다 훨씬 작은 공간이었지만, 관장님은 전국 각지의 작가들이 도서를 기부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이 도서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고 또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도서관을 통해 더 많은 곳에 평화도서관의 커리큘럼을 전달할 수 있을지, 이곳이 아니라면 또 어떤 다른 곳에 평화도서관의 교육 가치가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메타 아예우 몬 도서관 미팅 ⓒ사단법인 아디
저녁에는 도서관 교사들, 띠하와 회의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그건 이날만이 아니라, 메이크틸라에 머문 모든 날들이 그랬어요. 따로 또 같이, 인터뷰, 미팅, 수업 등의 바쁜 일과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여서 출장 일정을 점검하고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공동의 사업을 함께 일궈나가야 하는 동료이기에, 서로의 비전을 더 명확히 알아야 했죠. 앞으로의 과정을 위해서 더 많이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저녁들이었습니다.
12월 6일: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법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던 날이 밝았습니다. 새벽같이 숙소를 나서, 2013년의 아픔의 잔해가 남아있는 곳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이슬람 모스크들과 보석상. 그리고 밍글라제이온 마을까지요. 2013년 메이크틸라에서 있었던 무슬림에 대한 학살은 아디가 처음 이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평화도서관에서 그토록 다양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도서관에 돌아와서는 평화 캠프 2를 졸업한 학생 두 명과 함께 비디오그래피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출장 중 제가 직접 이끌어 나가야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요. 한국에서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들고 온 자료와 카메라를 펼쳐 놓고, 간단한 유의 사항과 촬영에 임할 때 가지면 좋을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도 전달했지만, 그보다는 카메라를 너무 어렵게 대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일상에 녹였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기에 그 점을 강조하면서 설명했습니다.
▲ 비디오그래피 워크숍 자료 일부 ⓒ사단법인 아디
▲ 워크숍 현장 사진 ⓒ사단법인 아디
비디오그래피 워크숍이 끝나면, 두 학생은 저의 캠코더를 대여해 아디가 메이크틸라에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자신들, 그리고 도서관의 일상을 담아오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8년간의 사업 보고 영상을 만들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제 안에 떠오른 욕심은 메이크틸라의 사람들, 우리의 동료 활동가들과 학생들, 이용자들, 많은 사람들과 이 공간 자체가 타자화되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셀프캠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학생들이 담아올 일상의 조각을 기대하며 헤어졌습니다.
오후에는 학부모 분들이 이번 출장의 첫 인터뷰를 열어주셨어요. 평화도서관의 교육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그를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말씀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감사함이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어요.
▲ 학부모 인터뷰 ⓒ사단법인 아디
출장의 매일 밤이 그랬듯, 내일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으로 잠드는 4일 차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