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이인서 활동가)의 출장기는 총 두편으로 구성되며 본편은 하(下)편입니다.
- 본 편은 열흘 간 출장 중 5월 17일부터 5월 19일까지 따웅지 출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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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출장 7일차
소린(Soe Lwin), 윈와(Wint Wah Wah Moe), 제이 야(Zay Yar Lint Thet)와 작별을 하고 다음 날인 17일 오전 따웅지로 향했다.
메이크틸라에서 동쪽으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해발 1,400미터의 도시.
따웅지는 버마어로 '큰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따웅지는 산 정상에 자리잡은 타운십(Township)이였다.
우리는 군부독재로 인한 내전으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
따웅지에서 첫날이었던 17일에는 CSO 기관 한 곳과 실향민 세 분을 만났다.

▲ 순서대로 Noah(39세)와 침례교의 오브제, 따웅지 전경 ⓒ사단법인 아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침례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따웅지에 거주하는 실향민을 돕는 CSO 중 한 곳이었다.
이 곳의 대표인 Noah 씨는 현재 지진 피해에 초점을 맞춰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따웅지는 군부와 민족무장세력이 평화 협정을 맺은 곳이라 샨주의 실향민들이 안전한 공간을 찾아 따웅지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어쩐지 이 곳 따웅지는, 우리가 지나온 다른 지역들과는 다르게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 이유가 평화 협정 때문이였을까.

▲ 라쇼 출신 실향민 A씨(51세)와 B씨(53세) ⓒ사단법인 아디
다음으론 라쇼(내전 격전지)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을 만났다.
이들이 말하길, 피난 길에 오른 후 모든 상황이 위험했다고 한다. 기존에 살던 마을을 벗어나는 동안 끊임없는 공습 상황을 견디며 풀숲과 정글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착한 평화롭다는 이곳 따웅지. 하지만 평화 협정이 실향민들의 삶에 안정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선 주민과의 갈등과 구직의 어려움 속에서 이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겉보기 만의 평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 라이코 출신 실향민 C씨(53세)와 그녀가 거주하는 집의 외관과 내관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으로 라이코 출신의 실향민을 만났다.
C씨는 내전의 격전지에서 성장한 자신의 아이들이 큰 소리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서 집세와 생활비가 많이 부담 된다고 했다.
복지의 부재 속에서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정착할 수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가 만난 세 명의 실향민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람은 딱 한가지였다.
신체적, 정신적 안전이 보장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
5월 18일 출장 8일차
이튿날에는 CSO 기관 두 곳을 방문했다.


▲ 활동가 D씨와 E씨, 그들이 제작한 장애인 인권 책자 ⓒ사단법인 아디
첫번째로 장애 복지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기관에 방문했다.
휠체어 같은 보조기구 지원과 비장애인들 대상 교육 활동을 하고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 통합이 목표라고 했다.
활동가 E씨는 해당 CSO가 USAID(미국 국제개발처)에서 자금을 조달받는데, 최근 USAID(미국 국제개발처)가 예산을 삭감하며 그에 대한 피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말하길, 구조적으로 더욱 사각지대에 위치해있는 장애인들은 구직과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IDP 캠프 내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의 대표 아브라함(Abraham) 씨(54세) ⓒ사단법인 아디
다음은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를 방문했다.
이 곳은 고향을 벗어난 후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었다.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의 대표 아브라함(Abraham) 씨는 집을 잃은 학생들, 그외 다양한 사유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학생들, 부모가 가난해서 교육 지원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 등을 대상으로 이 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5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 환경이 많이 열악해보였다.

▲ 버마어로 작성된 라이프 스트로우 (Life Straw)사용법과 방치된 물 정수 탱크 ⓒ사단법인 아디

▲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 아이들의 샤워용품 ⓒ사단법인 아디
필터가 수명을 다해 방치된 라이프 스트로우 (Life Straw)의 물 정수 탱크와 각자의 샤워 용품이 담긴 양동이들이 이들의 일상을 설명히고 있었다.
대표 아브라함(Abraham) 씨의 자녀에게 언제, 어디서 라이프 스트로우 (Life Straw)를 받았냐고 물어보니 2023년 경에 유니세프(UNICEF)에서 방문하여 각종 생필품과 옷 몇 벌과 함께 물 탱크를 주고 갔다고 말했다. 이후 필터가 수명을 다해 이를 교체해야 하지만, 라이프 스트로우와 컨택을 할 방법도 필터를 구할 곳도 없어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적정 기술의 실태를 직접 눈으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몇 년 쓰고 버려질 이 물 탱크였을까.



▲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 아이들의 생활공간 전경 ⓒ사단법인 아디
아이들은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하여 나무 껍질 같이 얇은 소재를 엮어 만든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짐 박스를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옷가지가 주렁주렁 방을 관통하도록 걸어둔 채 짐 박스를 발 밑에 두고 앉아있던 아이들.
방 안에는 전등이 없어 천장 틈, 벽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5월 19일 출장 9일차

▲ 따웅지 전경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 날에는 따웅지 근처에 위치한 사원을 둘러보며 출장을 마무리 했다.
산 꼭대기에 만들어진 타운십(Township)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 그 위치가 실감났다.
실시간으로 바뀌던 날씨의 변덕 속에서 어느 순간, 구름 사이 햇빛이 따웅지를 내리쬤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5월 17일 출장 7일차
소린(Soe Lwin), 윈와(Wint Wah Wah Moe), 제이 야(Zay Yar Lint Thet)와 작별을 하고 다음 날인 17일 오전 따웅지로 향했다.
메이크틸라에서 동쪽으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해발 1,400미터의 도시.
따웅지는 버마어로 '큰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따웅지는 산 정상에 자리잡은 타운십(Township)이였다.
우리는 군부독재로 인한 내전으로 실향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
따웅지에서 첫날이었던 17일에는 CSO 기관 한 곳과 실향민 세 분을 만났다.
▲ 순서대로 Noah(39세)와 침례교의 오브제, 따웅지 전경 ⓒ사단법인 아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침례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따웅지에 거주하는 실향민을 돕는 CSO 중 한 곳이었다.
이 곳의 대표인 Noah 씨는 현재 지진 피해에 초점을 맞춰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따웅지는 군부와 민족무장세력이 평화 협정을 맺은 곳이라 샨주의 실향민들이 안전한 공간을 찾아 따웅지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어쩐지 이 곳 따웅지는, 우리가 지나온 다른 지역들과는 다르게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 이유가 평화 협정 때문이였을까.
▲ 라쇼 출신 실향민 A씨(51세)와 B씨(53세) ⓒ사단법인 아디
다음으론 라쇼(내전 격전지)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을 만났다.
이들이 말하길, 피난 길에 오른 후 모든 상황이 위험했다고 한다. 기존에 살던 마을을 벗어나는 동안 끊임없는 공습 상황을 견디며 풀숲과 정글에서 노숙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착한 평화롭다는 이곳 따웅지. 하지만 평화 협정이 실향민들의 삶에 안정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었다.
선 주민과의 갈등과 구직의 어려움 속에서 이들은 여전히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겉보기 만의 평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 라이코 출신 실향민 C씨(53세)와 그녀가 거주하는 집의 외관과 내관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으로 라이코 출신의 실향민을 만났다.
C씨는 내전의 격전지에서 성장한 자신의 아이들이 큰 소리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서 집세와 생활비가 많이 부담 된다고 했다.
복지의 부재 속에서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정착할 수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가 만난 세 명의 실향민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람은 딱 한가지였다.
신체적, 정신적 안전이 보장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
5월 18일 출장 8일차
이튿날에는 CSO 기관 두 곳을 방문했다.
▲ 활동가 D씨와 E씨, 그들이 제작한 장애인 인권 책자 ⓒ사단법인 아디
첫번째로 장애 복지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기관에 방문했다.
휠체어 같은 보조기구 지원과 비장애인들 대상 교육 활동을 하고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 통합이 목표라고 했다.
활동가 E씨는 해당 CSO가 USAID(미국 국제개발처)에서 자금을 조달받는데, 최근 USAID(미국 국제개발처)가 예산을 삭감하며 그에 대한 피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말하길, 구조적으로 더욱 사각지대에 위치해있는 장애인들은 구직과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IDP 캠프 내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의 대표 아브라함(Abraham) 씨(54세) ⓒ사단법인 아디
다음은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를 방문했다.
이 곳은 고향을 벗어난 후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었다.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의 대표 아브라함(Abraham) 씨는 집을 잃은 학생들, 그외 다양한 사유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학생들, 부모가 가난해서 교육 지원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 등을 대상으로 이 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5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 환경이 많이 열악해보였다.
▲ 버마어로 작성된 라이프 스트로우 (Life Straw)사용법과 방치된 물 정수 탱크 ⓒ사단법인 아디
▲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 아이들의 샤워용품 ⓒ사단법인 아디
필터가 수명을 다해 방치된 라이프 스트로우 (Life Straw)의 물 정수 탱크와 각자의 샤워 용품이 담긴 양동이들이 이들의 일상을 설명히고 있었다.
대표 아브라함(Abraham) 씨의 자녀에게 언제, 어디서 라이프 스트로우 (Life Straw)를 받았냐고 물어보니 2023년 경에 유니세프(UNICEF)에서 방문하여 각종 생필품과 옷 몇 벌과 함께 물 탱크를 주고 갔다고 말했다. 이후 필터가 수명을 다해 이를 교체해야 하지만, 라이프 스트로우와 컨택을 할 방법도 필터를 구할 곳도 없어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적정 기술의 실태를 직접 눈으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몇 년 쓰고 버려질 이 물 탱크였을까.
▲ 위즈덤 빌라 (Wisdom Villa) 아이들의 생활공간 전경 ⓒ사단법인 아디
아이들은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하여 나무 껍질 같이 얇은 소재를 엮어 만든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짐 박스를 책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옷가지가 주렁주렁 방을 관통하도록 걸어둔 채 짐 박스를 발 밑에 두고 앉아있던 아이들.
방 안에는 전등이 없어 천장 틈, 벽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5월 19일 출장 9일차
▲ 따웅지 전경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 날에는 따웅지 근처에 위치한 사원을 둘러보며 출장을 마무리 했다.
산 꼭대기에 만들어진 타운십(Township)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 그 위치가 실감났다.
실시간으로 바뀌던 날씨의 변덕 속에서 어느 순간, 구름 사이 햇빛이 따웅지를 내리쬤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서 해야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