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로 가는 길 ⓒ사단법인 아디
1년 만에 찾은 방글라데시 로힝야 캠프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Genocide)을 피해 시작한 캠프 생활은 로힝야 난민들에게 또 다른 지옥이다. 국제사회의 지원 부족과 식량 배급 축소 결정, 바산 차르로의 이주 압력,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송환 시범 사업은 계속해서 로힝야 난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총부리 앞에서 고국을 떠나거나 죽던가 선택을 해야 했다면, 방글라데시 캠프에서는 국제사회의 속수무책 속에서 희망 없이 굶어 죽거나 보트에 몸을 싣어야 하는 또 다른 벼랑 끝에 서 있다.
식량 배급 축소로 이제 “연명하는 것도 힘겨워”
“식량 가격이 오르고 현지 화폐 가치까지 하락하면서 이제는 하루에 두 끼 식사를 하는 것도 버거워요.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27 센트(29 타카)인데 계란 한 알의 가격은 14센트(15 타카)예요. 일용직 노무 수입마저 없다면 렌틸콩, 쌀과 같은 기본 식재료 외에는 살 엄두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식량 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올해 연이은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배급 축소 결정으로 난민들은 이제 미화 8달러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야말로 간신히 연명할 정도다. 아동과 임산부들도 영양식을 챙겨 먹을 수 없다. 유니세프 영양 섹터 보고서에서도 이미 식량 배급 감축의 영향으로 60개월 미만 아동의 체중 감소율 증가, 신장 대비 저체중, 영양 부족 치료 기간 증가 문제 등이 보고 되고 있다.
인신매매·납치와 몸값 요구 범죄 증가…장기매매도
“방글라데시 경찰과 로힝야 무장단체는 한 통속이에요. 무장단체는 뇌물을 주고, 방글라데시 경찰은 그 대가로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눈을 감아 주는 거죠. 무장단체가 없는 바산 차르에 가서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로힝야 무장단체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치안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무고한 난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범죄 행위는 캠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캠프 치안 관리가 군에서 경찰 주도로 넘어가면서 뇌물을 매개로 하는 방글라데시 당국과 로힝야 무장단체 간의 유착 관계는 심화됐다. 뇌물을 받은 방글라데시 경찰이 무장단체의 범죄 행위를 눈 감아 주면서 난민 대상 납치와 인신매매, 살해, 약탈 등 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난민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몸값은 보통 200,000~300,000 타카 (한화 약 250만 원~370만 원) 정도로 부담하기 어려운 액수다. 해외에서 가족을 둔 난민 대상으로는 2배 가량 고액의 몸값을 요구하기도 한다. 납치 후에는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과 구타 등이 이어진다. 몸값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신체 일부를 절단해 돌려보내거나 장기를 매매하기도 한다.
▲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 전경사진 ⓒ사단법인 아디
미래에 대한 희망 없어 현재도 의미 잃어
“78년과 92년 이미 두 차례의 강제 귀환을 경험했어요. 돌아가서 다시는 박해를 받지 않으리라 믿을 만한 무언가 없이는 돌아갈 수 없어요. 시민권 회복이 되지 않는 조건이면 고국으로 돌아가도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근데 이번에도 강제로 돌아가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면서 로힝야 난민들의 현재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왔다 이미 두 차례 강제 귀환을 경험한 고령의 난민들은 이번에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될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아리프(62)와 압둘라(60)는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며 막막함에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다.
국제사회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로힝야 난민 입장에서 현재로서는 확실한 해결방안(Durable Solution)이 없다. 미얀마 군부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중국 정부의 중재 하에 올해 1,140명 난민 대상으로 송환 시범 사업을 시작했지만, 시민권이 회복 없는 귀환(Repatriation) 조건에 난민들은 고개를 젓는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바산 차르 이주 외 다른 방도는 없다는 입장이기에 현지 정착(Local Settlement) 역시 답이 아니다. 제3국으로의 재정착(Resettlement)은 92년 피난 온 난민들도 아직 기회를 기다릴 정도로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난민들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여유 자금이 있는 난민들은 자구책으로 밀항을 준비한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인근 국가로 가서 식구들을 건사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다. 밀항선을 타기 위해 전재산을 건다. 거기에는 목숨값도 포함되어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에만 약 3,500명이 벵골만과 안다만해를 건너려고 시도했고, 이중 최소 10%인 348명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 내 식물 사진 ⓒ사단법인 아디
그래서 해야만 하는 일, 의미 있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로힝야 위기가 잊혀진 비극이 된 건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가장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작금의 로힝야 상황은 시험대에 오른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덕적 책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인 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생존을 위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단법인 아디는 로힝야 기록활동가들과 함께 집단학살 진상조사와 로힝야 인권 실태를 5년 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잊혀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0개 마을의 1,101명에 대한 집단학살 진상조사 기록물을 유엔 기구에 제출했고, 올해도 계속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캠프 인권 상황도 유엔 인권 전문가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자칫 무모한 시도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기록들이 언젠가는 진실을 전하기를 바란다.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을 테니까.”
○ 본 글은 2023년 9월 인권기록팀 김인영 활동가의 출장기로 작성된 글입니다.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로 가는 길 ⓒ사단법인 아디
1년 만에 찾은 방글라데시 로힝야 캠프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Genocide)을 피해 시작한 캠프 생활은 로힝야 난민들에게 또 다른 지옥이다. 국제사회의 지원 부족과 식량 배급 축소 결정, 바산 차르로의 이주 압력,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송환 시범 사업은 계속해서 로힝야 난민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총부리 앞에서 고국을 떠나거나 죽던가 선택을 해야 했다면, 방글라데시 캠프에서는 국제사회의 속수무책 속에서 희망 없이 굶어 죽거나 보트에 몸을 싣어야 하는 또 다른 벼랑 끝에 서 있다.
식량 배급 축소로 이제 “연명하는 것도 힘겨워”
“식량 가격이 오르고 현지 화폐 가치까지 하락하면서 이제는 하루에 두 끼 식사를 하는 것도 버거워요.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27 센트(29 타카)인데 계란 한 알의 가격은 14센트(15 타카)예요. 일용직 노무 수입마저 없다면 렌틸콩, 쌀과 같은 기본 식재료 외에는 살 엄두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식량 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올해 연이은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 배급 축소 결정으로 난민들은 이제 미화 8달러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야말로 간신히 연명할 정도다. 아동과 임산부들도 영양식을 챙겨 먹을 수 없다. 유니세프 영양 섹터 보고서에서도 이미 식량 배급 감축의 영향으로 60개월 미만 아동의 체중 감소율 증가, 신장 대비 저체중, 영양 부족 치료 기간 증가 문제 등이 보고 되고 있다.
인신매매·납치와 몸값 요구 범죄 증가…장기매매도
“방글라데시 경찰과 로힝야 무장단체는 한 통속이에요. 무장단체는 뇌물을 주고, 방글라데시 경찰은 그 대가로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눈을 감아 주는 거죠. 무장단체가 없는 바산 차르에 가서 사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로힝야 무장단체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치안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무고한 난민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범죄 행위는 캠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캠프 치안 관리가 군에서 경찰 주도로 넘어가면서 뇌물을 매개로 하는 방글라데시 당국과 로힝야 무장단체 간의 유착 관계는 심화됐다. 뇌물을 받은 방글라데시 경찰이 무장단체의 범죄 행위를 눈 감아 주면서 난민 대상 납치와 인신매매, 살해, 약탈 등 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난민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몸값은 보통 200,000~300,000 타카 (한화 약 250만 원~370만 원) 정도로 부담하기 어려운 액수다. 해외에서 가족을 둔 난민 대상으로는 2배 가량 고액의 몸값을 요구하기도 한다. 납치 후에는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과 구타 등이 이어진다. 몸값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신체 일부를 절단해 돌려보내거나 장기를 매매하기도 한다.
▲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 전경사진 ⓒ사단법인 아디
미래에 대한 희망 없어 현재도 의미 잃어
“78년과 92년 이미 두 차례의 강제 귀환을 경험했어요. 돌아가서 다시는 박해를 받지 않으리라 믿을 만한 무언가 없이는 돌아갈 수 없어요. 시민권 회복이 되지 않는 조건이면 고국으로 돌아가도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근데 이번에도 강제로 돌아가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지면서 로힝야 난민들의 현재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왔다 이미 두 차례 강제 귀환을 경험한 고령의 난민들은 이번에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될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아리프(62)와 압둘라(60)는 이 악몽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며 막막함에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자녀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다.
국제사회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로힝야 난민 입장에서 현재로서는 확실한 해결방안(Durable Solution)이 없다. 미얀마 군부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중국 정부의 중재 하에 올해 1,140명 난민 대상으로 송환 시범 사업을 시작했지만, 시민권이 회복 없는 귀환(Repatriation) 조건에 난민들은 고개를 젓는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바산 차르 이주 외 다른 방도는 없다는 입장이기에 현지 정착(Local Settlement) 역시 답이 아니다. 제3국으로의 재정착(Resettlement)은 92년 피난 온 난민들도 아직 기회를 기다릴 정도로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난민들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여유 자금이 있는 난민들은 자구책으로 밀항을 준비한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인근 국가로 가서 식구들을 건사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다. 밀항선을 타기 위해 전재산을 건다. 거기에는 목숨값도 포함되어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에만 약 3,500명이 벵골만과 안다만해를 건너려고 시도했고, 이중 최소 10%인 348명이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 내 식물 사진 ⓒ사단법인 아디
그래서 해야만 하는 일, 의미 있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로힝야 위기가 잊혀진 비극이 된 건 국제사회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서 가장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작금의 로힝야 상황은 시험대에 오른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덕적 책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인 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생존을 위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단법인 아디는 로힝야 기록활동가들과 함께 집단학살 진상조사와 로힝야 인권 실태를 5년 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잊혀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40개 마을의 1,101명에 대한 집단학살 진상조사 기록물을 유엔 기구에 제출했고, 올해도 계속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캠프 인권 상황도 유엔 인권 전문가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자칫 무모한 시도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기록들이 언젠가는 진실을 전하기를 바란다.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을 테니까.”
○ 본 글은 2023년 9월 인권기록팀 김인영 활동가의 출장기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