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난민 어린이, 청소년의 불안한 교육 실태>
아디(Adi)에서 2022년에 발간한 로힝야 난민 어린이 교육 실태 보고서 <우리의 위기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후로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보고서는 로힝야 난민캠프 인구에서 어린이 비중이 과반을 차지하지만 (2024년 1월 현재 로힝야 난민 975,350명 중 어린이 비율 52%),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난민 어린이들의 상황을 여실히 담고 있습니다. 로힝야 난민의 대규모 유입이 시작된 2017년에는 교육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고, 2019년이 되어서야 캠프 내에서 교육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준에서만 미얀마 교과 과정을 제공하고, 학력 인증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경험 많은 교사들이 더 나은 급여를 받는 NGO로 떠나 교사 확보가 어려운 문제 등, 여전히 교육 제도의 한계가 있습니다. 고등교육을 원할 경우 사교육센터에 다녀야 한다는 점도 큰 걸림돌입니다.

▲ 마웅 소에돌라 ©United States Embassy Dhaka
<뉴욕대학교에 합격한 로힝야 난민 청년 ‘마웅 소에돌라’>
그러나 최근에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로힝야 난민 신분으로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 합격한 첫 청년, 마웅 소에돌라(Maung Sawyeddollah)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합격은 로힝야 청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가진 것도, 법적 신분도 불안한 이 난민 청년이 어떻게 미국 뉴욕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그의 합격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대학교에 합격했다가 로힝야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거절된 경험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합격 수기에서 "실패를 극복할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결심(determin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행운아가 아닌 철저한 노력형 행운아>
그는 2019년에 로힝야학생네트워크(Rohingya Student Network)라는 NGO를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내에 설립하고, 로힝야 학생들의 교육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미얀마 군사 정부가 로힝야인의 고등교육을 제한하고 방글라데시 정부 또한 로힝야 난민 학생의 고등교육권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그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NGO를 설립하고 방글라데시 정부 기관, 인권 단체, 교육 기관에 로힝야 학생들의 고등교육권 보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또 2019년부터 자발적으로 기사를 작성해 꾸준히 발행했습니다.
이러한 끈질긴 노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2023년 코피 아난 차세대 민주주의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고, 2023년 청년활동가 정상회담 수상자로도 뽑혔으며,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기록할 권리(Write for Right)’ 캠페인 주요 사례로도 소개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대학교 입학이 거절된 경험을 통해 그는 해외 대학교에 진학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전 세계 147개 대학교에 온라인으로 입학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중 몇몇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그중 하나가 뉴욕대학교였습니다. 합격뿐 아니라 장학금 확보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다행히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 장학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권조차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학생 비자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으나, 신원 승인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에 방글라데시 외교부에 신원 승인서를 요청했고, 외교부 직원이 난민캠프까지 와서 조사한 끝에 신원 승인서가 발급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미국 대사관에 학생 비자를 무사히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 마웅 소에돌라 ©Rohingya Student Organization
<각 나라에 '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롤모델이 필요하다>
수년간의 긴 도전 끝에 그는 미국에 학생 비자와 난민 카드를 들고 입국해 로힝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욕대학교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며, 과거 태국의 프로 골퍼 모리야 주타누가른(Moriya Jutanugarn)의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태국인 최초로 국제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며 “Personally, I think every country needs a role model - someone to win a tournament or reach the world number one ranking for the first time; someone the players can look up to and show them that it can be done(개인적으로 저는 각 나라마다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거나,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1위를 거둔 선수같은 롤모델이요. 각 나라마다 다른 선수들이 우러러 볼 수 있고, 또 다른 선수들로 하게끔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롤모델이 필요해요.)” 라고 했습니다.
뉴욕대학교에 합격한 첫 로힝야 난민 학생은 해외 유학을 꿈꾸는 로힝야 학생들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뉴욕, 런던, 베를린, 서울, 베이징, 도쿄 등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로힝야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로힝야 난민 어린이, 청소년의 불안한 교육 실태>
아디(Adi)에서 2022년에 발간한 로힝야 난민 어린이 교육 실태 보고서 <우리의 위기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후로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보고서는 로힝야 난민캠프 인구에서 어린이 비중이 과반을 차지하지만 (2024년 1월 현재 로힝야 난민 975,350명 중 어린이 비율 52%),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난민 어린이들의 상황을 여실히 담고 있습니다. 로힝야 난민의 대규모 유입이 시작된 2017년에는 교육이 전혀 제공되지 않았고, 2019년이 되어서야 캠프 내에서 교육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준에서만 미얀마 교과 과정을 제공하고, 학력 인증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경험 많은 교사들이 더 나은 급여를 받는 NGO로 떠나 교사 확보가 어려운 문제 등, 여전히 교육 제도의 한계가 있습니다. 고등교육을 원할 경우 사교육센터에 다녀야 한다는 점도 큰 걸림돌입니다.
▲ 마웅 소에돌라 ©United States Embassy Dhaka
<뉴욕대학교에 합격한 로힝야 난민 청년 ‘마웅 소에돌라’>
그러나 최근에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로힝야 난민 신분으로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 합격한 첫 청년, 마웅 소에돌라(Maung Sawyeddollah)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합격은 로힝야 청년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가진 것도, 법적 신분도 불안한 이 난민 청년이 어떻게 미국 뉴욕으로 갈 수 있었을까요?
그의 합격은 단순한 행운이 아닌,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대학교에 합격했다가 로힝야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거절된 경험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합격 수기에서 "실패를 극복할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결심(determin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행운아가 아닌 철저한 노력형 행운아>
그는 2019년에 로힝야학생네트워크(Rohingya Student Network)라는 NGO를 방글라데시 난민캠프 내에 설립하고, 로힝야 학생들의 교육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미얀마 군사 정부가 로힝야인의 고등교육을 제한하고 방글라데시 정부 또한 로힝야 난민 학생의 고등교육권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그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NGO를 설립하고 방글라데시 정부 기관, 인권 단체, 교육 기관에 로힝야 학생들의 고등교육권 보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또 2019년부터 자발적으로 기사를 작성해 꾸준히 발행했습니다.
이러한 끈질긴 노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2023년 코피 아난 차세대 민주주의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고, 2023년 청년활동가 정상회담 수상자로도 뽑혔으며,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기록할 권리(Write for Right)’ 캠페인 주요 사례로도 소개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대학교 입학이 거절된 경험을 통해 그는 해외 대학교에 진학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전 세계 147개 대학교에 온라인으로 입학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중 몇몇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그중 하나가 뉴욕대학교였습니다. 합격뿐 아니라 장학금 확보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다행히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 장학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여권조차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학생 비자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으나, 신원 승인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에 방글라데시 외교부에 신원 승인서를 요청했고, 외교부 직원이 난민캠프까지 와서 조사한 끝에 신원 승인서가 발급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미국 대사관에 학생 비자를 무사히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 마웅 소에돌라 ©Rohingya Student Organization
<각 나라에 '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롤모델이 필요하다>
수년간의 긴 도전 끝에 그는 미국에 학생 비자와 난민 카드를 들고 입국해 로힝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욕대학교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며, 과거 태국의 프로 골퍼 모리야 주타누가른(Moriya Jutanugarn)의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태국인 최초로 국제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며 “Personally, I think every country needs a role model - someone to win a tournament or reach the world number one ranking for the first time; someone the players can look up to and show them that it can be done(개인적으로 저는 각 나라마다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거나,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1위를 거둔 선수같은 롤모델이요. 각 나라마다 다른 선수들이 우러러 볼 수 있고, 또 다른 선수들로 하게끔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롤모델이 필요해요.)” 라고 했습니다.
뉴욕대학교에 합격한 첫 로힝야 난민 학생은 해외 유학을 꿈꾸는 로힝야 학생들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뉴욕, 런던, 베를린, 서울, 베이징, 도쿄 등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로힝야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