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기록][로힝야 활동가 역량강화 워크숍] ​진짜 변화가 지속되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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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인권기록 활동가 역량강화 워크숍 현장>

진짜 변화가 지속되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


김인영 활동가


인권 피해 기록만으로 충분할까? 그렇게 정의가 구현된다면 그게 전부일까? 그 다음에는 그들의 삶이 정말 달라질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로힝야 커뮤니티는 미얀마 군부로부터 장기간 박해를 받아 말 그대로 모든 게 와해됐다. 자기 민족의 위기 상황에 대응할 커뮤니티의 구심점도, 목소리를 낼 시민사회도 사실상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로힝야 커뮤니티의 변화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피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그들이 변화의 중심이 되도록 하자. 근데 그 과정은 외지인이 주도하는 형태가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생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조금 거창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것이 로힝야 인권단체와 로힝야 인권기록 활동가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일이다. 


 피해 당사자 활동가들과 함께 성장하는 변화 방정식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로힝야 난민 활동가들과 2021년 로힝야인권센터를 설립했다. 열심히 함께 달렸고 어느 새 3년이 흘렀다. 번듯하다고 할 수 없지만 조직을 구성하고 모양새를 갖췄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금지하는 인권 활동을 해야 하기에 반지하단체 성격으로 조직됐다. 그러다 보니 그럴듯한 사무 공간도 없다. 활동가 임시 난민 쉘터가 사무실이고 난민 캠프가 주요 활동 무대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기 민족이 겪은 대학살 실태조사를 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인큐베이팅 시기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성장기에 돌입했다. 로힝야 활동가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새로운 3년의 목표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올해 세운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면서 다음부터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적어도 주도성을 보다 높여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로 하자는 것, 둘째는 어려워도 이 부분을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생력 키우기, 자신을 넘어서는 도전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지만, 현실에서 그 과정은 녹록치 않고 지난한 일이다. 아니 조금 더 과장해보자면 때로는 열반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겠다 싶은 시간의 연속이다. 방글라데시 군경의 검문, 캠프 치안 상황 악화, 인권활동가에 대한 범죄 단체의 보복 위험 등 외부 요인도 큰 어려움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내부에도 있다. 

교육 기회를 박탈 당한 탓에 로힝야 활동가들 대부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오랜 시간 차별과 박해로 시키는 일에 익숙하고 스스로 상황을 이끌어 나가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권리를 가질 권리’를 상실했던 시간이 또 다시 발목을 잡는 셈이다. 그렇기에 그런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 자체가 큰 도전과제다. 피해 당사자 활동가 지원에서 역량강화 트레이닝이 빠질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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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남성과 여성의 하루 일과를 발표하며 성별에 따른 차이를 확인하는 인권기록 활동가들 © 사단법인 아디


올해 수행하는 로힝야 난민 여성 대상 인신매매 실태조사는 문제를 바라보는 활동가들의 ‘성 인식’이 중요한 요소라 여성 인권과 젠더 평등, 젠더기반폭력 트레이닝에 주안점을 뒀다. 로힝야 남성과 여성의 하루 일과 비교, 성별 등 개인 삶의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인생 그래프를 그룹워크로 직접 해보면서 개인의 삶, 더 나아가 로힝야 커뮤니티를 정밀하게 들여다봤다. 

남성들은 모여서 차 마시고 잡담을 나누는 개인 시간이 많은 반면, 여성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남편을 위해 할애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로힝야 사회는 여성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뼈 아픈 농담까지 주고 받았다. 그럼에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되는 현실. 그리고 남자 형제와 달리 일정 나이가 되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여아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육아를 도와야 하는 상황, 그로 인해 자립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 지위와 권리 향상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악순환까지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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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과 젠더 평등 세션에 대한 남성 활동가의 감상문. 여성의 헌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 사단법인 아디


사실 생각과 태도, 인식의 변화가 쉬운 것이 아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인신매매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대표적인 인신매매 유형인 강제 조혼 문제도 처음에는 결혼 조건으로 지참금을 요구하지 않는 남편, 안정적인 삶의 조건을 바라고 자발적으로 떠난 것인데 문제가 될 수 있냐며 되묻던 남성 활동가들도 생각을 바꿨다. 로힝야가 장기간 박해 속에서 교육과 양질의 일자리 등 많은 삶의 기회를 박탈 당했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로힝야 여성들이 놓인 취약한 상황, 가족 구성원 등 사회적 압박에 의한 의사 결정 과정과 맥락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성평등과 여아 교육 기회의 근거를 코란 구절과 같은 활동가들의 종교와 신념에서 찾는 노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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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조사 설문지와 인터뷰 질문지를 직접 검증하고 시뮬레이션해보는 활동가들 © 사단법인 아디


6-7월 본격적인 조사를 앞두고 설문지와 인터뷰 질문지 검증과 시뮬레이션도 활동가들이 직접 했다. 조사 도구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높이는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의 물음이 좋을 지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보다 정확하고 현실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조사 대상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응답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사실상 잊혀진 로힝야 인권 상황을 대외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세션도 가졌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이해하고 옹호 메시지를 만들고, 콘텐츠 제작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준비했다.


계속되는 폭력, 우리가 멈출 수 없는 이유

역량강화 워크숍 기간에도 로힝야에 대한 폭력은 계속 이어졌다. 미얀마 군부 정권은 아라칸군 간의 내전을 위해 강제 징집령을 내려 로힝야족을 인간 방패와 군인으로 강제 동원해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캠프에서도 강제 징집을 위한 무장 단체의 로힝야 난민 납치 사건도 대거 벌어졌다. 라카인주에서는 아라칸군에 의해 부티다웅 타운십 대부분이 전소됐고, 도망치던 로힝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총을 겨눠 살해하는 사실상 대학살이 벌어졌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트레이닝에 피곤하고 지쳤지만, 우리가 왜 이 고달픈 과정에 열을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자명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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