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숌시다와의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몰라서 화가 났다’는 표현이었다. ‘앎’의 기회를 갖는다는 건 존엄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앎’은 권리이다.
숌시다는 6년 만에 치른 샨티카나 단장 선거에서 초대 단장으로 선출된 로힝야 난민 여성이다. PSS 단원들은 생애 최초로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단장을 선출했다. 그 순간을 함께한 비바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흥분된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30여명의 PSS가 모여 슈퍼비전을 받는 중에도 단연 숌시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그녀는 PSS 단원들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반응을 이끌어냈다. 누군가 내게 그녀는 부당한 상황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라고 그랬다.
그런데 6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숌시다는 숫기 없고 조용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마따나 6년간 여섯 개의 트레이닝 단계를 거치며, 그녀는 다른 누군가로 바뀌었다기보다 그녀 자신이 되어갔던 것 같다.
숌시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부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그녀는 숌시다 자신이면서 동시에 샨티카나의 단원이자 단장이며,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면서 동시에 로힝야 난민 여성이자 그들의 든든한 동료이다. 그렇게 숌시다는 분쟁지역 당사자이면서 평화를 수호하는 활동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당당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이렇게 멋진 숌시다인데!
※ 본 인터뷰 시리즈는 <샨티카나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총 4회에 걸쳐 '샨티카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소개]
○ 숌시다(Shomshida)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캠프14에 위치한 다목적 힐링센터 '샨티카나'에서 심리지원단(PSS)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난 9월 샨티카나 1대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숌시다는 로힝야 난민 여성으로 6년 전 처음 샨티카나와 인연을 맺은 이래 참여자서부터 PSS 단원, 그리고 단장에 이르기까지 샨티카나의 정예 멤버로 함께하고 있다.

▲ 샨티카나 정원에서 숌시다 ⓒ사단법인 아디
얼마 전, 샨티카나에서 단장을 선출하는 첫 번째 선거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거기서 숌시다가 첫 번째 단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전해들었거든요. 단장으로 선출되셨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매우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PSS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처음 왔던 건 2018년도일 건데요. 처음엔 SHG(Self-Help Group, 로힝야 여성 자조모임) 멤버였거든요. 어느 날 한 동료가 저에게 힐링센터에서 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함께 받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쑥스러웠는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괜찮아 지더라고요. 그렇게 6년간 6개의 트레이닝 단계를 거쳐 이제는 단장이 된 거잖아요. 너무 기쁘고 감사하죠.

▲ 샨티카나 1대 단장 선출을 위해 생애 최초로 투표 중인 PSS 단원들 ⓒ사단법인 아디

▲ 샨티카나 1대 단장 선출을 위해 개표 중인 PSS 단원들 ⓒ사단법인 아디
6개의 단계가 있어요?
네, 처음엔 SHG 참여자로 시작해서, Outreach PSS로, 그 다음엔 Assistant PSS, 그리고 Master PSS를 거쳐 Trainer PSS까지 한 후, 지금의 President PSS가 된 거죠.
매 단계들이 평가로서 의미를 갖는 건 아니겠지만, 그 과정을 6년간 성실히 밟아 왔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동료 PSS 단원 분들이 왜 숌시다를 단장으로 선출했을까요?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책임감과 관리 능력을 좋게 평가해 준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다들 제가 적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준 것 같아요. 6년간 저를 봐 왔고, 그만큼 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마 신뢰했을 거고요.
▲ 28표를 얻은 숌시다가 단장으로, 21표를 얻은 록사나가 부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사단법인 아디
중간에서 통역을 해준 Jinia는 이 대답에 덧붙여
‘우리도 그녀를 신뢰하고, 모두가 그녀를 신뢰해요.’(We trust her and everyone trusts her.)라고 말했다.
질문이 두 개 정도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다 보니 계속 늘어나네요. (웃음)
괜찮아요. 저는 여기에 3시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한다면 3시까지 얘기해보자고요! (웃음)
6년동안 샨티카나에서 계셨잖아요. 숌시다에게는 어떤 게 가장 큰 변화처럼 느껴지시나요?
6년동안 너무 많은 것이 변했어요. 인원으로만 보더라도 너무 많이 변했죠. 초창기인 2019년만 하더라도 PSS가 20명이고 참여자가 15명정도였거든요. 처음엔 다들 너무 부끄러워했고, 특히 가족 문제가 심했어요. 그래서 잘 못 오셨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너무 잘 오세요. 저는 그만큼 힐링센터에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친절한 대화(Kind Conversation)같은 프로그램은 PSS와 참여자들 간에 신뢰감을 만드는 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또 친절한 대화법은 주변의 관계들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주거든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모든 관계에서 적용해볼 수 있죠. 그래서인지 점점 더 많은 분들이 힐링센터에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오면 얻어갈 것이 있으니까요.
숌시다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궁금해요.
어제 있었던 일들인데요. 저희 동료 중 한 명이 시장에 갔다가 최근 센터에 잘 안 오시는 참여자분을 만났나 봐요. 요즘엔 센터에 왜 안 오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길 자신이 지금 임신 중이라 가족들의 반대도 심하고 몸도 별로 안 좋다고 하셨대요. 그런데도 컨디션이 좋아지면 꼭 센터에 가겠다고 하셨다는데, 참여자분들이 그렇게 센터를 잊지 않고 계실 때 보람을 느껴요.

▲ 샨티카나 교육실 입구에 PSS 분들의 신발이 놓여있다. ⓒ사단법인 아디
또 다른 한 분은 B3(캠프 내 구역명)에 사는 참여자분이었는데요. 저를 보고는 여기 와서 얘기 좀 하다가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저보고 자신의 집으로 와서 터칭 액서사이즈(바디존에서 운영 중인 몸 이완 프로그램)를 좀 해달라고 하시는 거 있죠?(웃음) 사실 터칭 엑서사이즈를 하면 졸렵거든요. 아마도 그분이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것 같았는데, 힐링센터에서의 터칭 엑서사이즈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저희 활동이 캠프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느껴질 때, 보람을 얻어요.
지난 주 슈퍼비전 마지막 세션으로 함께 했던 워크숍 기억나시나요? 100여장의 사진 중 자신에게 가장 끌리는 사진을 뽑고, 그 사진을 뽑은 이유에 대해 동료들과 나눴잖아요. 숌시다는 어떤 사진을 뽑으셨어요?
그 사진 가져왔어요!

▲ 숌시다가 뽑은 사진 ⓒ사단법인 아디
와! 실제로 가져오셨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수많은 사진들 중 왜 이 사진을 왜 뽑으셨어요?
6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아무 것도 몰랐어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그 어떤 것도요. 그래서 너무너무 부끄럽고 때로는 화가 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가 여기 사진 속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처럼 가수같다고 느껴요. 또 (사진 속) 누워있는 사람처럼 자려고 누우면 행복하고요. 저는 이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6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여기(사진)에 있는 이 사람처럼요.
6년 뒤 샨티카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하는 바가 있으세요?
6년 뒤, 저는 힐링센터가 더 평화로운 센터가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쯤이면 트레이너들도 실습법(Exercise)이나 나눌거리(Topics)들을 더 많이 배웠을 거고, 그러다보면 참여자들에게도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게 되겠죠. 참여자들도 더 많이 올 거고요. 6년 뒤 샨티카나는 기대만큼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정원도 더 예쁘게 가꿀 계획이 있거든요.

▲ PSS단원들이 가꾸고 있는 샨티카나 내부 정원 ⓒ사단법인 아디
다음편 보러가기
숌시다와의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몰라서 화가 났다’는 표현이었다. ‘앎’의 기회를 갖는다는 건 존엄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앎’은 권리이다.
숌시다는 6년 만에 치른 샨티카나 단장 선거에서 초대 단장으로 선출된 로힝야 난민 여성이다. PSS 단원들은 생애 최초로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단장을 선출했다. 그 순간을 함께한 비바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흥분된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30여명의 PSS가 모여 슈퍼비전을 받는 중에도 단연 숌시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그녀는 PSS 단원들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반응을 이끌어냈다. 누군가 내게 그녀는 부당한 상황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라고 그랬다.
그런데 6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숌시다는 숫기 없고 조용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마따나 6년간 여섯 개의 트레이닝 단계를 거치며, 그녀는 다른 누군가로 바뀌었다기보다 그녀 자신이 되어갔던 것 같다.
숌시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부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그녀는 숌시다 자신이면서 동시에 샨티카나의 단원이자 단장이며,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면서 동시에 로힝야 난민 여성이자 그들의 든든한 동료이다. 그렇게 숌시다는 분쟁지역 당사자이면서 평화를 수호하는 활동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당당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이렇게 멋진 숌시다인데!
※ 본 인터뷰 시리즈는 <샨티카나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총 4회에 걸쳐 '샨티카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소개]
○ 숌시다(Shomshida)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캠프14에 위치한 다목적 힐링센터 '샨티카나'에서 심리지원단(PSS)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난 9월 샨티카나 1대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숌시다는 로힝야 난민 여성으로 6년 전 처음 샨티카나와 인연을 맺은 이래 참여자서부터 PSS 단원, 그리고 단장에 이르기까지 샨티카나의 정예 멤버로 함께하고 있다.
▲ 샨티카나 정원에서 숌시다 ⓒ사단법인 아디
얼마 전, 샨티카나에서 단장을 선출하는 첫 번째 선거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거기서 숌시다가 첫 번째 단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전해들었거든요. 단장으로 선출되셨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매우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PSS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처음 왔던 건 2018년도일 건데요. 처음엔 SHG(Self-Help Group, 로힝야 여성 자조모임) 멤버였거든요. 어느 날 한 동료가 저에게 힐링센터에서 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함께 받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쑥스러웠는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괜찮아 지더라고요. 그렇게 6년간 6개의 트레이닝 단계를 거쳐 이제는 단장이 된 거잖아요. 너무 기쁘고 감사하죠.
▲ 샨티카나 1대 단장 선출을 위해 생애 최초로 투표 중인 PSS 단원들 ⓒ사단법인 아디
▲ 샨티카나 1대 단장 선출을 위해 개표 중인 PSS 단원들 ⓒ사단법인 아디
6개의 단계가 있어요?
네, 처음엔 SHG 참여자로 시작해서, Outreach PSS로, 그 다음엔 Assistant PSS, 그리고 Master PSS를 거쳐 Trainer PSS까지 한 후, 지금의 President PSS가 된 거죠.
매 단계들이 평가로서 의미를 갖는 건 아니겠지만, 그 과정을 6년간 성실히 밟아 왔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동료 PSS 단원 분들이 왜 숌시다를 단장으로 선출했을까요?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책임감과 관리 능력을 좋게 평가해 준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다들 제가 적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준 것 같아요. 6년간 저를 봐 왔고, 그만큼 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마 신뢰했을 거고요.
중간에서 통역을 해준 Jinia는 이 대답에 덧붙여
‘우리도 그녀를 신뢰하고, 모두가 그녀를 신뢰해요.’(We trust her and everyone trusts her.)라고 말했다.
질문이 두 개 정도라고 말씀드렸는데, 하다 보니 계속 늘어나네요. (웃음)
괜찮아요. 저는 여기에 3시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원한다면 3시까지 얘기해보자고요! (웃음)
6년동안 샨티카나에서 계셨잖아요. 숌시다에게는 어떤 게 가장 큰 변화처럼 느껴지시나요?
6년동안 너무 많은 것이 변했어요. 인원으로만 보더라도 너무 많이 변했죠. 초창기인 2019년만 하더라도 PSS가 20명이고 참여자가 15명정도였거든요. 처음엔 다들 너무 부끄러워했고, 특히 가족 문제가 심했어요. 그래서 잘 못 오셨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너무 잘 오세요. 저는 그만큼 힐링센터에 좋은 프로그램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친절한 대화(Kind Conversation)같은 프로그램은 PSS와 참여자들 간에 신뢰감을 만드는 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또 친절한 대화법은 주변의 관계들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주거든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모든 관계에서 적용해볼 수 있죠. 그래서인지 점점 더 많은 분들이 힐링센터에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오면 얻어갈 것이 있으니까요.
숌시다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궁금해요.
어제 있었던 일들인데요. 저희 동료 중 한 명이 시장에 갔다가 최근 센터에 잘 안 오시는 참여자분을 만났나 봐요. 요즘엔 센터에 왜 안 오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길 자신이 지금 임신 중이라 가족들의 반대도 심하고 몸도 별로 안 좋다고 하셨대요. 그런데도 컨디션이 좋아지면 꼭 센터에 가겠다고 하셨다는데, 참여자분들이 그렇게 센터를 잊지 않고 계실 때 보람을 느껴요.
▲ 샨티카나 교육실 입구에 PSS 분들의 신발이 놓여있다. ⓒ사단법인 아디
또 다른 한 분은 B3(캠프 내 구역명)에 사는 참여자분이었는데요. 저를 보고는 여기 와서 얘기 좀 하다가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저보고 자신의 집으로 와서 터칭 액서사이즈(바디존에서 운영 중인 몸 이완 프로그램)를 좀 해달라고 하시는 거 있죠?(웃음) 사실 터칭 엑서사이즈를 하면 졸렵거든요. 아마도 그분이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것 같았는데, 힐링센터에서의 터칭 엑서사이즈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저희 활동이 캠프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느껴질 때, 보람을 얻어요.
지난 주 슈퍼비전 마지막 세션으로 함께 했던 워크숍 기억나시나요? 100여장의 사진 중 자신에게 가장 끌리는 사진을 뽑고, 그 사진을 뽑은 이유에 대해 동료들과 나눴잖아요. 숌시다는 어떤 사진을 뽑으셨어요?
그 사진 가져왔어요!
▲ 숌시다가 뽑은 사진 ⓒ사단법인 아디
와! 실제로 가져오셨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수많은 사진들 중 왜 이 사진을 왜 뽑으셨어요?
6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아무 것도 몰랐어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그 어떤 것도요. 그래서 너무너무 부끄럽고 때로는 화가 났어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가 여기 사진 속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처럼 가수같다고 느껴요. 또 (사진 속) 누워있는 사람처럼 자려고 누우면 행복하고요. 저는 이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6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지금이 훨씬 행복해요. 여기(사진)에 있는 이 사람처럼요.
6년 뒤 샨티카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대하는 바가 있으세요?
6년 뒤, 저는 힐링센터가 더 평화로운 센터가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쯤이면 트레이너들도 실습법(Exercise)이나 나눌거리(Topics)들을 더 많이 배웠을 거고, 그러다보면 참여자들에게도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게 되겠죠. 참여자들도 더 많이 올 거고요. 6년 뒤 샨티카나는 기대만큼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정원도 더 예쁘게 가꿀 계획이 있거든요.
▲ PSS단원들이 가꾸고 있는 샨티카나 내부 정원 ⓒ사단법인 아디
다음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