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샨티카나(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에 위치한 다목적 여성힐링센터) 모니터링 출장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지막', '마지막'은 역시 남다른 감상을 갖게 한다. 그 감상에 힘입어 시작부터 함께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생님들께 '샨티카나와 함께한 지난날'에 대해 여쭤볼 수 있었다.
샨티카나는 2017년 논의를 시작으로, 2018년 <로힝야 난민 및 수용 공동체 여성 심리사회적 회복역량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에서 본격 운영되었다. 샨티카나를 거쳐 온 이들은 샨티카나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를 무수히 많은 이들의 마음과 손길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샨티카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에게 평화를'(이하 사평)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곳 중 하나이다.
아디와 사평은 내년 말을 기점으로 샨티카나를 떠나보낸다.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샨티카나를 떠나보낸다고요?'라는 질문에 '아쉽긴 하지만, 애초에 떠나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돕는다'는 말이 주는 위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누군가는 분명 나보다 절망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보는 건 절망을 함께 걷는 자세를 쉽게 간과하게 만든다.
우리는 서로를 구하고 있고 서로를 구해야 한다. 시혜와 수혜가 아닌 쌍방의 역동 안에서만 서로를 살릴 수 있다. 그 마음이야말로 지치지 않고 분쟁지역과 함께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선생님들과의 마지막 출장을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 본 인터뷰 시리즈는 <샨티카나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총 4회에 걸쳐 '샨티카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º <사람들에게 평화를> 단체 소개
공평, 실천, 순환을 가치로 자신과 사회를 치유하여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심리사회 지원 교육원을 설립하여, 평화로움을 촉진할 심리 치유 전문가 양성 및 심리지원 프로그램 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2015년 네팔 대지진, 2017년 미얀마 메이크틸라 학살 사건에 대한 심리지원을 하는 등 재난, 재해, 분쟁 등으로 트라우마적 경험을 가진 이들을 찾아가 마음의 회복을 돕고 있다. 2018년부터 샨티카나의 시작부터 아디와 함께하고 있으며, 샨티카나 내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현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º ‘샨티카나’ 운영 방식 소개
▣ 순서 : 웨이팅존(접수가 이루어진다.) → 커넥션존(몸무게와 키를 잰다.) → 바디존(가벼운 마사지를 통해 몸을 이완을 한다.) → 마인드존(〈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며, 회복탄력성의 원리를 이해한다.) → 소울존(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호흡법, 명상법을 배우고 익힌다.) → 인터그랄존(체험 중 떠오른 마음, 감정 등을 두고 자신, 주변 환경,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 구성 : 샨티카나 방문 횟수에 따라 레벨1에서 레벨3로 나뉜다. 레벨에 따라 개별 존(zone)에서의 프로그램이 조금씩 달라진다.
º ‘샨티카나’ 내부 구조

[인터뷰이 소개]
○ 윤영주(잠자리)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교육이사
○ 신미화(들꽃)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총무이사
○ 장동현(키아누)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대외협력이사
※ 인터뷰는 별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샨티카나 앞에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생님들
(왼쪽부터 신차선 선생님, 신미화 선생님, 윤영주 선생님, 장동현 선생님) ⓒ사단법인 아디
로힝야 난민 여성 심리사회적 사업이 올해로 6년 차라고 들었어요. 사업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꽤 오래 함께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 사업을 함께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키아누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태동 자체가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에 있었어요. 저도 처음부터 함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작이 쓰촨성 대지진(2008년) 때인 걸로 알고 있고, 이후 네팔 대지진(2015년) 때나 미얀마 메이크틸라 무슬림 학살 사건(2017년)에서 트라우마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디랑 연을 맺게 된 것도 2017년 미얀마 메이크틸라 분쟁 때였던 거고요. 그렇게 현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에 대한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아디 측에서도 개발협력 분야에서 심리사회적 지원이 굉장히 생소한 영역인데, 분명 필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트라우마 관리 기법도 다양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중 현지화하기에 적절한 것을 찾는 데도 고민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또 지금의 체계를 갖추기까지도 다양한 시도와 실험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그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들꽃 쏘울존에서 하는 호흡법이나 마인드존에서 활용하는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그림책)은 초창기부터 시작했던 건데요. 해를 거듭하면서 이분들에게 맞게 조금씩 변경되고 구성되면서 지금은 완전히 정착하게 된 거예요.
잠자리 사실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그림책도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다 보니 만들어진 그림책이었다고요.

▲ 쏘울존에서 PSS가 참여자를 대상으로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을 읽고 있다. ⓒ사단법인 아디
들꽃 네, 맞아요. 처음에는 신차선 박사님(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교육원장)이 손 움직임으로 설명했어요. 해를 거듭하면서 어떻게 하면 난민 여성분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책이 된 거거든요. 글을 아시는 분들이 많이 없다 보니 그림책을 만들자고 해서 만들어진 게 현재의 이 책이에요.
키아누 ‘메뉴얼화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데요. 샨티카나에는 웨이팅 존을 포함해 총 6개의 존이 있잖아요. 정해진 1시간 안에 각 존을 이동하며 끝내야 하는 구조예요.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그런 것까지도 고려해야 했죠. 또 보시다시피 PSS 분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조인데, 그분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매뉴얼화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그런 고민 끝에 점차 지금의 모습을 갖춰갔던 것 같은데요. 레벨1, 2, 3 별로 각자가 다 그런 과정이 있었다고 보시면 돼요. 초창기에 시작된 것,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을 통해 개발된 것, 또 그 이후에 적용된 것,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넣고 빼면서 현지에 맞게 매뉴얼화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전히 매뉴얼화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채워야 할 부분들도 있긴 해요. 그런데 이제는 일정 부분은 그렇게 남겨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부분은 PSS분들이 필요에 맞게 채우시면 되니까요. 사실 저희도 모르는, PSS분들만 아시는 필요가 있을 거거든요. 아무래도 샨티카나를 직접 운영하는 분들이니까요. 그런 건 그분들만 아는 부분일 테니, 그런 공백의 공간들은 그분들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며 채우시는 게 맞다고 봐요. 하나하나 제안드리는 것보다는 일정 부분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거죠.
실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PSS를 보면서, 그분들이 너무 능숙하게 해내신다고 생각했어요. 결과만 본 저로써는 그 과정이 이렇게 치열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듣다보니 이렇게 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거든요.
키아누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마인드존에서 활용하는 그림책)도 처음엔 전혀 이해를 못하셨어요. 3년 정도를 갈 때마다 꾸준하게 설명해 드렸거든요. 실제로 시간이 흐르고 어느 지점까지 차오르니 이해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에게 가위바위보 놀이는 무척 쉽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에게 가위바위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활동인 거예요. 더욱이 저희가 하고 있는 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거잖아요. 그 개념을 이해시키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또 그런 것들을 저희 트레이너들도 이해해 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초창기였던 2018년도에는 준비해 온 프로그램의 10%도 채 사용하지 못한 채 슈퍼비전을 끝냈던 적도 있거든요.

▲ 그림책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중 한 페이지 ⓒ사단법인 아디
책 한 권으로 2-3년간! 서로 애쓰고 노력한 마음이 느껴져요.
들꽃 바디존에서 터치 액서사이즈가 6단계로 나뉘어있는데, 그걸 1년 동안 가르쳤어요. 캠프에 방문할 때마다 하루 2개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어요. 하루는 어깨와 목을 터치하는 방법을, 다음 날은 귀와 눈을 터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여섯 개의 동작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걸 쭉 해보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어요.
키아누 쏘울존에 보면 손가락을 터치하는 동작이 나오는 데, 그걸 가르치는 데도 몇 날 며칠이 소요됐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알려드리기 전에 미얀마의 문화, 로힝야 여성의 문화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18년도, 19년도에는 정말 치열했던 것 같아요.
재촉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으셨던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사실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계획대로 될 수 없고, 어떤 면에선 기다림의 작업이기도 하잖아요. 실제로 맞춰가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잠자리 맞아요. 처음에는 PSS 분들이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그림책을 이해하지 못 하니까 그냥 외우셨대요. 그러니까 지금의 샨티카나에 이만큼의 프로그램으로 갖춰질 수 있었던 건 저희만의 노력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서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고요.
관계의 역동이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또 서로를 향한 신뢰와 노력의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사업적 ‘성과’가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도 생각되는 데요. 사실 성과를 생각하다보면 ‘효율’, 그러니까 ‘속도’를 염두에 두게 되잖아요.
혹시 샨티카나에서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까요?
잠자리 작년에 왔을 때 샨티카나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어느 PSS분이 자기 잘하지 않았냐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PSS분들의 얼굴을 전면적으로 찍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많이 들었거든요. 이분들이 노출되면 위험하기도 하지만, 사진 찍는 걸 꺼려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한 분이 ‘저 이거 되게 잘했죠?’ 하시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니까. 그런 스스럼없는 모습이 이상하게 감동적이었어요. 그분들이 처음에 어땠는지를 몰랐다면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갔을 텐데, 저는 알잖아요. 그간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있었을지, 그 변화의 과정에서 각자 얼마나 애쓰셨을지를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 캠프14 샨티카나로 향하는 길 ⓒ사단법인 아디
PSS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셨던 데에는 분명 본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느낀 변화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물론 각자 이유가 조금씩 다르긴 했겠지만요.
사실 인터뷰 내내 샨티카나의 여성들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얘기해 주고 계신 것 같아요. 처음과 비교했을 때, 선생님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도 있었을까요?
들꽃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샨티카나에서 PSS 분들이 박수를 칠 때, 손바닥을 맞닥뜨려 소리를 내지 않고 엇갈려서 치시잖아요. 저는 그게 여기 문화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그게 샨티카나에서 고안한 박수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잠자리 저도 문화인 줄 알았어요.(웃음)
들꽃 맞아요. 여자의 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샨티카나에서 만들어 낸 박수법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손바닥을 부딪치며 박수 소리를 내시잖아요. 2018년 처음에 왔을 때도 둥그렇게 둘러앉으면 요 만큼씩 떨어져 앉았어요. 심리적 거리감, 경계심 같은 거겠죠? 또 손이 보일까 봐 손도 감추고요. 지금처럼 악수하고 얼싸안고, 이건 엄청난 변화인 거죠.
키아누 2019년까지만 해도 신차선 박사님이 남성이기 때문에 샨티카나에 못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해인가, 히잡을 쓰신 여성분이 남성이 한 공간에 있는데도 히잡을 벗으시더라고요. 히잡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그때 그걸 벗으시면서 실핀이 한가득 나왔는데, 그게 저한테는 그분들이 경계를 내려놓는 장면처럼 보였어요.
잠자리 작년에 처음 캠프를 갔을 때도 저희를 두고 반가워는 하셨지만, 이번처럼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다가오진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일 년 만에 캠프에 와보니, 작년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게 느껴지더라고요.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어려워하셨는데, 그런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진 게 느껴지고요.
심리사회적 지원이 인도적 지원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잠자리 개발협력, 인도적 지원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저희가 하는 이 일은 살아갈 힘, 그러니까 자력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야말로 일차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키아누 11월 17일에 아디와 함께 심리사회적 지원에 대한 포럼을 하잖아요. 우리들(사평 선생님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게 무얼까 고민이 많아요. 그런데. 어젯밤에 문득 그냥 ‘샨티카나’ 그 자체일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잠자리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2018년에 처음 왔을 때는 참여자분들이 ‘아이컨택트(눈맞춤)’를 굉장히 어려워하셨어요. 대개 트라우마에 압도되면 그렇게 되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눈앞에서 남편, 가족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고,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봤는데, 오히려 괜찮다는 게 이상한 일이잖아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악을 다해 버텨내는 것, 죽음의 공포 앞에 무력하게 있는 것, 선택지가 별로 없는 삶이었을 거예요.
<봄, 돌봄, 돌아봄>(보러가기)에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이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세요. 힘들 때가 있고, 우울할 때가 있고 화날 때가 있지만, 이 활동을 계기로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거든요. 웨이팅존에서 몸무게를 재거나 바디 존에서 직접 터치해 보는 작업은 외부의 여러 상황에 맞춰 있던 감각을 나의 몸으로 돌리는 작업이에요. 또 마인드 존에서 하는 작업은 자신의 현재 상태가 어두운 상태인지 밝은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죠. 마음을 표현해 보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이 과정 전체가 쇼크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셀프 레귤레이션을 해낼 수 있는 건강한 상태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요. 저는 그래서 이 과정 자체를 그냥 '샨티카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 저희가 하는 일이 심리지원이 아니라 심리사회적 지원이잖아요.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돌보고,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일상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으로 옮겨지거든요. 시선이 확장되는 거죠. 이번에 샨티카나 PSS 단원 분 중 마을 이장이 두 명이나 됐다고 들었어요. 그게 단적인 심리사회적 지원의 지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 샨티카나에서 사평 선생님들과 슈퍼비전을 진행 중인 PSS ⓒ사단법인 아디
아디와 사평이 샨티카나를 떠나고도 샨티카나는 계속될 거예요. 샨티카나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그 바람을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꽃 샨티카나에 앉아서 가만히 보니까 참 많은 인원이 오가더라고요. 지금의 샨티카나는 사랑방도 되고, 위로가 되거나 친목을 다지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이분들에게 샨티카나가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평화적인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잠자리 사실 간식을 먹으려고 프로그램 참여할 수도 있거든요. 많은 곳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런데 알게 모르게 참여하면서 느낀 감각과 경험들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 거라고 생각해요. 이분들에게 환대라는 개념을 꽤 오랜 시간 가르치셨다고 들었어요. 한 번도 제대로 된 환대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셨을 텐데, 이분들에게도 얼마나 낯선 문화였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환대가 이분들의 일상이 되었잖아요. 환대하는 태도가 자신의 삶에 녹아들면,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가 주변 여성들에게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기대해요. 그러니까 PSS 분들 주변으로, 참여자분들의 일상으로, 캠프 14의 더 많은 여성들에게로 연결될 거라고 믿어요. 또 샨티카나가 자조, 자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잖아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상호 성장,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쭉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키아누 저는 ‘샨티(평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성들 스스로가 샨티(평화)를 만나는 방법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그 방법을 앎으로써 이후 자신을 압도하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덜 압도되며 살아갔으면 좋겠고요. 샨티카나가 계속 그런 평화를 만나고 배우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인터그랄존에서 일상을 나누고 있는 참여자들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으로 나눠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키아누 사실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세 명만 인터뷰할 건 아니라고 봤거든요. 그 말은 6년간의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애쓰고 함께 했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 세 명의 이름 뒤에 그분 모두의 이름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잠자리 처음 왔을 때 캠프에 계신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게 저한테 가장 큰 울림이었어요. 기여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참여하긴 했지만 역시나 제가 더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처해있는 환경, 문화는 다르지만 이분과 내가 다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제가 배운 시간이었죠.
들꽃 사실 처음 이곳에 오던 시기가 항암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그 즈음,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거든요. 정말 모두가 가지 말라고 만류했어요. 그런데 스스로 마음먹었던 게 있었어요. 신앙인이기도 하지만, 1년 중에 며칠은 누군가와 나누는 삶을 삶겠다고 다짐한 게 있었거든요. 그걸 지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모두의 만류에도 여기에 왔어요. 그런데 오히려 여기서의 시간이 삶의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항암을 하다 보면 치료가 고되기도 하고 삶 자체가 무기력해지는데, 여기서 이 분들을 만나며 삶의 의지가 생겼던 거죠.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처음엔 ‘이곳’(난민캠프)을 위해서 왔지만 이젠 저 자신을 위해서 와요. 그래서인지 사업적으로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연결되어 함께하고 싶어요. 5년을 되돌아보니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던 곳이 여기였다는 생각이 크니까. 그만큼 특별한 곳이었으니까요.

▲ 샨티카나에서 사평 선생님들과 현지 스태프 ⓒ사단법인 아디
다음편 보러가기
샨티카나(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에 위치한 다목적 여성힐링센터) 모니터링 출장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마지막', '마지막'은 역시 남다른 감상을 갖게 한다. 그 감상에 힘입어 시작부터 함께한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생님들께 '샨티카나와 함께한 지난날'에 대해 여쭤볼 수 있었다.
샨티카나는 2017년 논의를 시작으로, 2018년 <로힝야 난민 및 수용 공동체 여성 심리사회적 회복역량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에서 본격 운영되었다. 샨티카나를 거쳐 온 이들은 샨티카나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를 무수히 많은 이들의 마음과 손길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샨티카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에게 평화를'(이하 사평)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곳 중 하나이다.
아디와 사평은 내년 말을 기점으로 샨티카나를 떠나보낸다.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샨티카나를 떠나보낸다고요?'라는 질문에 '아쉽긴 하지만, 애초에 떠나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돕는다'는 말이 주는 위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 누군가는 분명 나보다 절망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보는 건 절망을 함께 걷는 자세를 쉽게 간과하게 만든다.
우리는 서로를 구하고 있고 서로를 구해야 한다. 시혜와 수혜가 아닌 쌍방의 역동 안에서만 서로를 살릴 수 있다. 그 마음이야말로 지치지 않고 분쟁지역과 함께하는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선생님들과의 마지막 출장을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 본 인터뷰 시리즈는 <샨티카나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총 4회에 걸쳐 '샨티카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º <사람들에게 평화를> 단체 소개
공평, 실천, 순환을 가치로 자신과 사회를 치유하여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심리사회 지원 교육원을 설립하여, 평화로움을 촉진할 심리 치유 전문가 양성 및 심리지원 프로그램 교육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2015년 네팔 대지진, 2017년 미얀마 메이크틸라 학살 사건에 대한 심리지원을 하는 등 재난, 재해, 분쟁 등으로 트라우마적 경험을 가진 이들을 찾아가 마음의 회복을 돕고 있다. 2018년부터 샨티카나의 시작부터 아디와 함께하고 있으며, 샨티카나 내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현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º ‘샨티카나’ 운영 방식 소개
▣ 순서 : 웨이팅존(접수가 이루어진다.) → 커넥션존(몸무게와 키를 잰다.) → 바디존(가벼운 마사지를 통해 몸을 이완을 한다.) → 마인드존(〈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인지하며, 회복탄력성의 원리를 이해한다.) → 소울존(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호흡법, 명상법을 배우고 익힌다.) → 인터그랄존(체험 중 떠오른 마음, 감정 등을 두고 자신, 주변 환경,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 구성 : 샨티카나 방문 횟수에 따라 레벨1에서 레벨3로 나뉜다. 레벨에 따라 개별 존(zone)에서의 프로그램이 조금씩 달라진다.
º ‘샨티카나’ 내부 구조
[인터뷰이 소개]
○ 윤영주(잠자리)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교육이사
○ 신미화(들꽃)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총무이사
○ 장동현(키아누)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대외협력이사
※ 인터뷰는 별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샨티카나 앞에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생님들
(왼쪽부터 신차선 선생님, 신미화 선생님, 윤영주 선생님, 장동현 선생님) ⓒ사단법인 아디
로힝야 난민 여성 심리사회적 사업이 올해로 6년 차라고 들었어요. 사업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꽤 오래 함께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 사업을 함께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키아누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태동 자체가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에 있었어요. 저도 처음부터 함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작이 쓰촨성 대지진(2008년) 때인 걸로 알고 있고, 이후 네팔 대지진(2015년) 때나 미얀마 메이크틸라 무슬림 학살 사건(2017년)에서 트라우마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디랑 연을 맺게 된 것도 2017년 미얀마 메이크틸라 분쟁 때였던 거고요. 그렇게 현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에 대한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을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아디 측에서도 개발협력 분야에서 심리사회적 지원이 굉장히 생소한 영역인데, 분명 필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트라우마 관리 기법도 다양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중 현지화하기에 적절한 것을 찾는 데도 고민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또 지금의 체계를 갖추기까지도 다양한 시도와 실험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그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들꽃 쏘울존에서 하는 호흡법이나 마인드존에서 활용하는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그림책)은 초창기부터 시작했던 건데요. 해를 거듭하면서 이분들에게 맞게 조금씩 변경되고 구성되면서 지금은 완전히 정착하게 된 거예요.
잠자리 사실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그림책도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다 보니 만들어진 그림책이었다고요.
▲ 쏘울존에서 PSS가 참여자를 대상으로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을 읽고 있다. ⓒ사단법인 아디
들꽃 네, 맞아요. 처음에는 신차선 박사님(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 교육원장)이 손 움직임으로 설명했어요. 해를 거듭하면서 어떻게 하면 난민 여성분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책이 된 거거든요. 글을 아시는 분들이 많이 없다 보니 그림책을 만들자고 해서 만들어진 게 현재의 이 책이에요.
키아누 ‘메뉴얼화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데요. 샨티카나에는 웨이팅 존을 포함해 총 6개의 존이 있잖아요. 정해진 1시간 안에 각 존을 이동하며 끝내야 하는 구조예요.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그런 것까지도 고려해야 했죠. 또 보시다시피 PSS 분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조인데, 그분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매뉴얼화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어요. 그런 고민 끝에 점차 지금의 모습을 갖춰갔던 것 같은데요. 레벨1, 2, 3 별로 각자가 다 그런 과정이 있었다고 보시면 돼요. 초창기에 시작된 것,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을 통해 개발된 것, 또 그 이후에 적용된 것,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넣고 빼면서 현지에 맞게 매뉴얼화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전히 매뉴얼화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채워야 할 부분들도 있긴 해요. 그런데 이제는 일정 부분은 그렇게 남겨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부분은 PSS분들이 필요에 맞게 채우시면 되니까요. 사실 저희도 모르는, PSS분들만 아시는 필요가 있을 거거든요. 아무래도 샨티카나를 직접 운영하는 분들이니까요. 그런 건 그분들만 아는 부분일 테니, 그런 공백의 공간들은 그분들이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며 채우시는 게 맞다고 봐요. 하나하나 제안드리는 것보다는 일정 부분 가능성으로 남겨두는 거죠.
실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PSS를 보면서, 그분들이 너무 능숙하게 해내신다고 생각했어요. 결과만 본 저로써는 그 과정이 이렇게 치열했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듣다보니 이렇게 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거든요.
키아누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마인드존에서 활용하는 그림책)도 처음엔 전혀 이해를 못하셨어요. 3년 정도를 갈 때마다 꾸준하게 설명해 드렸거든요. 실제로 시간이 흐르고 어느 지점까지 차오르니 이해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에게 가위바위보 놀이는 무척 쉽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에게 가위바위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활동인 거예요. 더욱이 저희가 하고 있는 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거잖아요. 그 개념을 이해시키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또 그런 것들을 저희 트레이너들도 이해해 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초창기였던 2018년도에는 준비해 온 프로그램의 10%도 채 사용하지 못한 채 슈퍼비전을 끝냈던 적도 있거든요.
▲ 그림책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중 한 페이지 ⓒ사단법인 아디
책 한 권으로 2-3년간! 서로 애쓰고 노력한 마음이 느껴져요.
들꽃 바디존에서 터치 액서사이즈가 6단계로 나뉘어있는데, 그걸 1년 동안 가르쳤어요. 캠프에 방문할 때마다 하루 2개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어요. 하루는 어깨와 목을 터치하는 방법을, 다음 날은 귀와 눈을 터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여섯 개의 동작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걸 쭉 해보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어요.
키아누 쏘울존에 보면 손가락을 터치하는 동작이 나오는 데, 그걸 가르치는 데도 몇 날 며칠이 소요됐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알려드리기 전에 미얀마의 문화, 로힝야 여성의 문화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18년도, 19년도에는 정말 치열했던 것 같아요.
재촉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으셨던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사실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계획대로 될 수 없고, 어떤 면에선 기다림의 작업이기도 하잖아요. 실제로 맞춰가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잠자리 맞아요. 처음에는 PSS 분들이 <밝은 마음, 어두운 마음> 그림책을 이해하지 못 하니까 그냥 외우셨대요. 그러니까 지금의 샨티카나에 이만큼의 프로그램으로 갖춰질 수 있었던 건 저희만의 노력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서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고요.
관계의 역동이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또 서로를 향한 신뢰와 노력의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사업적 ‘성과’가 아니라 ‘사람’을 보면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도 생각되는 데요. 사실 성과를 생각하다보면 ‘효율’, 그러니까 ‘속도’를 염두에 두게 되잖아요.
혹시 샨티카나에서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까요?
잠자리 작년에 왔을 때 샨티카나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어느 PSS분이 자기 잘하지 않았냐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PSS분들의 얼굴을 전면적으로 찍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많이 들었거든요. 이분들이 노출되면 위험하기도 하지만, 사진 찍는 걸 꺼려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한 분이 ‘저 이거 되게 잘했죠?’ 하시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니까. 그런 스스럼없는 모습이 이상하게 감동적이었어요. 그분들이 처음에 어땠는지를 몰랐다면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갔을 텐데, 저는 알잖아요. 그간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있었을지, 그 변화의 과정에서 각자 얼마나 애쓰셨을지를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 캠프14 샨티카나로 향하는 길 ⓒ사단법인 아디
PSS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셨던 데에는 분명 본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느낀 변화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물론 각자 이유가 조금씩 다르긴 했겠지만요.
사실 인터뷰 내내 샨티카나의 여성들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얘기해 주고 계신 것 같아요. 처음과 비교했을 때, 선생님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도 있었을까요?
들꽃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샨티카나에서 PSS 분들이 박수를 칠 때, 손바닥을 맞닥뜨려 소리를 내지 않고 엇갈려서 치시잖아요. 저는 그게 여기 문화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그게 샨티카나에서 고안한 박수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잠자리 저도 문화인 줄 알았어요.(웃음)
들꽃 맞아요. 여자의 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샨티카나에서 만들어 낸 박수법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손바닥을 부딪치며 박수 소리를 내시잖아요. 2018년 처음에 왔을 때도 둥그렇게 둘러앉으면 요 만큼씩 떨어져 앉았어요. 심리적 거리감, 경계심 같은 거겠죠? 또 손이 보일까 봐 손도 감추고요. 지금처럼 악수하고 얼싸안고, 이건 엄청난 변화인 거죠.
키아누 2019년까지만 해도 신차선 박사님이 남성이기 때문에 샨티카나에 못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해인가, 히잡을 쓰신 여성분이 남성이 한 공간에 있는데도 히잡을 벗으시더라고요. 히잡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그때 그걸 벗으시면서 실핀이 한가득 나왔는데, 그게 저한테는 그분들이 경계를 내려놓는 장면처럼 보였어요.
잠자리 작년에 처음 캠프를 갔을 때도 저희를 두고 반가워는 하셨지만, 이번처럼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다가오진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일 년 만에 캠프에 와보니, 작년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게 느껴지더라고요.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어려워하셨는데, 그런 것도 훨씬 자연스러워진 게 느껴지고요.
심리사회적 지원이 인도적 지원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잠자리 개발협력, 인도적 지원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저희가 하는 이 일은 살아갈 힘, 그러니까 자력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야말로 일차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키아누 11월 17일에 아디와 함께 심리사회적 지원에 대한 포럼을 하잖아요. 우리들(사평 선생님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게 무얼까 고민이 많아요. 그런데. 어젯밤에 문득 그냥 ‘샨티카나’ 그 자체일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잠자리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2018년에 처음 왔을 때는 참여자분들이 ‘아이컨택트(눈맞춤)’를 굉장히 어려워하셨어요. 대개 트라우마에 압도되면 그렇게 되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눈앞에서 남편, 가족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봐야 했고,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봤는데, 오히려 괜찮다는 게 이상한 일이잖아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악을 다해 버텨내는 것, 죽음의 공포 앞에 무력하게 있는 것, 선택지가 별로 없는 삶이었을 거예요.
<봄, 돌봄, 돌아봄>(보러가기)에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이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세요. 힘들 때가 있고, 우울할 때가 있고 화날 때가 있지만, 이 활동을 계기로 나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거든요. 웨이팅존에서 몸무게를 재거나 바디 존에서 직접 터치해 보는 작업은 외부의 여러 상황에 맞춰 있던 감각을 나의 몸으로 돌리는 작업이에요. 또 마인드 존에서 하는 작업은 자신의 현재 상태가 어두운 상태인지 밝은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죠. 마음을 표현해 보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이 과정 전체가 쇼크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셀프 레귤레이션을 해낼 수 있는 건강한 상태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요. 저는 그래서 이 과정 자체를 그냥 '샨티카나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 저희가 하는 일이 심리지원이 아니라 심리사회적 지원이잖아요.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돌보고,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일상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으로 옮겨지거든요. 시선이 확장되는 거죠. 이번에 샨티카나 PSS 단원 분 중 마을 이장이 두 명이나 됐다고 들었어요. 그게 단적인 심리사회적 지원의 지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 샨티카나에서 사평 선생님들과 슈퍼비전을 진행 중인 PSS ⓒ사단법인 아디
아디와 사평이 샨티카나를 떠나고도 샨티카나는 계속될 거예요. 샨티카나가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그 바람을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들꽃 샨티카나에 앉아서 가만히 보니까 참 많은 인원이 오가더라고요. 지금의 샨티카나는 사랑방도 되고, 위로가 되거나 친목을 다지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이분들에게 샨티카나가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평화적인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잠자리 사실 간식을 먹으려고 프로그램 참여할 수도 있거든요. 많은 곳에서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런데 알게 모르게 참여하면서 느낀 감각과 경험들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 거라고 생각해요. 이분들에게 환대라는 개념을 꽤 오랜 시간 가르치셨다고 들었어요. 한 번도 제대로 된 환대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셨을 텐데, 이분들에게도 얼마나 낯선 문화였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환대가 이분들의 일상이 되었잖아요. 환대하는 태도가 자신의 삶에 녹아들면,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가 주변 여성들에게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기대해요. 그러니까 PSS 분들 주변으로, 참여자분들의 일상으로, 캠프 14의 더 많은 여성들에게로 연결될 거라고 믿어요. 또 샨티카나가 자조, 자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잖아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상호 성장,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쭉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키아누 저는 ‘샨티(평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성들 스스로가 샨티(평화)를 만나는 방법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그 방법을 앎으로써 이후 자신을 압도하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덜 압도되며 살아갔으면 좋겠고요. 샨티카나가 계속 그런 평화를 만나고 배우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인터그랄존에서 일상을 나누고 있는 참여자들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으로 나눠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키아누 사실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세 명만 인터뷰할 건 아니라고 봤거든요. 그 말은 6년간의 이 프로젝트를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애쓰고 함께 했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 세 명의 이름 뒤에 그분 모두의 이름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잠자리 처음 왔을 때 캠프에 계신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게 저한테 가장 큰 울림이었어요. 기여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참여하긴 했지만 역시나 제가 더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처해있는 환경, 문화는 다르지만 이분과 내가 다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제가 배운 시간이었죠.
들꽃 사실 처음 이곳에 오던 시기가 항암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그 즈음,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거든요. 정말 모두가 가지 말라고 만류했어요. 그런데 스스로 마음먹었던 게 있었어요. 신앙인이기도 하지만, 1년 중에 며칠은 누군가와 나누는 삶을 삶겠다고 다짐한 게 있었거든요. 그걸 지키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모두의 만류에도 여기에 왔어요. 그런데 오히려 여기서의 시간이 삶의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항암을 하다 보면 치료가 고되기도 하고 삶 자체가 무기력해지는데, 여기서 이 분들을 만나며 삶의 의지가 생겼던 거죠.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처음엔 ‘이곳’(난민캠프)을 위해서 왔지만 이젠 저 자신을 위해서 와요. 그래서인지 사업적으로 마무리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연결되어 함께하고 싶어요. 5년을 되돌아보니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던 곳이 여기였다는 생각이 크니까. 그만큼 특별한 곳이었으니까요.
▲ 샨티카나에서 사평 선생님들과 현지 스태프 ⓒ사단법인 아디
다음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