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사회지원][여행기] 제주 평화여행 '로힝야와 제주4.3이 만나다.' 후기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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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아디는 제주도에서 '로힝야와 제주4.3이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제주도를 둘러싼 분쟁의 역사와 아픔을 마주하고 왔습니다. 평소 분쟁과 평화에 관심이 많았던 시민분들을 포함해 로힝야 난민 빠띠마 선생님, 띠다 선생님과 두 분의 자녀들이 함께하였는데요. 덕분에 평화를 두고 더 깊고 다채롭게 이해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진과 소감글로나마 2박3일 간 진행된 제주 평화여행의 여운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일차. 제주4.3평화기념관 - 선흘리(묵시물굴) - 북촌4.3길(너븐숭이, 서우봉 진지동굴, 함덕해변)

제주4.3평화공원에 위치한 평화기념관은 제주4.3의 전말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기록물과 전시물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70여년 전 '폭도'와 '빨갱이', '불순분자'라는 이름으로 학살된 제주도민들의 비극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가족과 친구를 잃고도 그 슬픔을 숨겨야만 했던 제주의 오랜 한을 두고, 국제 분쟁을 다루는 우리에게 제주4.3 사건이 갖는 의미를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선흘리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숨어지냈다던 묵시물굴(동굴)과 북촌마을 대학살의 현장이었던 너븐숭이를 돌며, 고요하고 평화로운 제주가 피빛과 공포의 제주로 변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실제로 제주4.3사건의 가장 큰 피해지역으로 꼽히는 북촌마을에는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어린 아이들의 돌 무덤이 있습니다. 돌 무덤 주변으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풀들이 무성해졌지만,  '왜 무고한 아이까지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납득이 될만한 답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그것이 국가폭력의 민낯'이라는 설명 뿐이겠지요.


"한가해야 무섭지, 덜 서러워야 운다는 말이 참말이야." (생존자 할머님의 증언 중)


10년이 넘도록 한국에 살고 계신 로힝야 난민 빠띠마 선생님은  4.3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의 모습이 오늘날 박해받는 로힝야 민족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비극이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상황이라니.' 민족과 국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 평화에 동참해야 할 이유가 조금 더 선명하게 남는 기분이었습니다. 빠띠마 선생님은 제주4.3사건을 역사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처럼 로힝야의 상황 또한 잘 기록하여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4.3이 그러한 것처럼 지금의 로힝야가 겪고 있는 상황이 하루 빨리 '과거의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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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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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흘리 마을 초입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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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 대학살 당시 죽은 무고한 아이들의 돌무덤(북촌마을 너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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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흘리 묵시물굴


2일차. 섯알오름 일대(알뜨르비행장, 학살터) - 무등이왓(큰넓궤생존자 홍춘호 할머님과의 대화) - 4.3 생존자 故진아영 할머니 삶터


제주가 동아시아에서 갖는 군사적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작지 않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국주의 시대에도, 지금도 제주를 군사적으로 무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멈춤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나서서 '평화의 제주'라고 명명해놓고도, 여전히 제주는 요새화되는 중입니다. 한편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군사기지가 제주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제주 서귀포시 산방산 일대에 위치한 '알뜨르 비행장' 입니다. 이 비행장은 일본군부가 일본 본토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군항기의 경유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난징대학살 당시 이용했던 경유지라고도 하는데요. 그런 이유로 알뜨르 비행장은 정기적으로 한, 중, 일 평화 활동가들이 모여 평화를 염원하는 문화제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제주4.3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동안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제주4.3사건이 끝났다고 보는 시점은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시점입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주는 공포와 두려움의 땅이었고, 많은 이들이 떠난 만큼 또 많은 이들이 떠난 자의 자리를 메우며 삶터를 지켜냈습니다. 그러니까 제주4.3의 '생존자'로 남아계신 분들은 제주4.3을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가 되는 것이죠. 이분들의 이야기(증언)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이 인간의 삶에 어떤 상흔을 입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야기에는 '진위여부'가 아닌 '감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4.3 사건의 생존자이신 홍춘호 할머님을 만나 그 날의 이야기들을 온도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만 나두면 살맛 날 때가 있져.(살아만 있으면 살 맛 날 때가 있어.)" (생존자 할머니 증언 중)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진아영 할머님은 4.3사건 당시 턱에 총을 맞아 살아남은 생존자이십니다. 턱의 흉터를 가리고자 무명천을 얼굴에 두르고 다니셨는데, 그 때문인지 진아영 할머님은 여전히 '무명천' 할머니로 불린다고 합니다. 살아생전 할머님은  4.3사건의 트라우마로 집을 나설 때 뿐만 아니라 집에 계실 때 조차 문을 철저히 걸어잠그는 습관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할머님의 삶터에 남은 4.3사건의 흔적이 할머님 여생의 불행처럼 느껴지다가도 '살아 남아' '살아 가신' 강인함에 '살아있음'의 '존엄'과 '살아냄'의 존경이 자연스럽게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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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뜨르 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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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마을 '무등이왓'에서 4.3 피해 생존자 할머님의 이야기를 듣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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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피해 생존자 진아영 할머님 생가



3일차.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개척자들) - 제주여민회  


서귀포시 강정마을에는 2007년부터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평화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활동가들이 공동체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키려던 '구럼비 바위'는 애당초 파괴되었고 해군기지는 완공되었으나, 여전히 그곳엔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다고 '평화운동'이 끝난 건 아니니까요.(실패한 것은 더더욱 아닐 거고요.) '개척자들'을 만나 우리의 자리에서 평화를 지키는 행위가 어떻게 '세계평화'와 '일상의 평화'로 확장되는지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제주 제2국제공항 설립과 레이더 기지 확충, 비자림로 벌목 등이 제주의 군사화와 어떻게 연결되어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서사'는 줄곧 남성의 서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분쟁과 피해 상황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도 여성은 쉽게 주변화되고 맙니다. 제주여민회는 제주4.3사건의 여성 피해 상황을 수집하고 여성 피해 생존자들을 만나 기록하는 일을 하며 제주4.3사건에서 배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는 데 힘쓰고 계십니다. 제주여민회 소개를 맡아주신 고문님께서는 아시아 분쟁 지역을 지원하는 아디가 왜 우리 단체에 연락을 해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 만남으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셨다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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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여민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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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 '개척자들' 방문


제주 평화여행을 마무리하며


이제는 지나 버린 어느 날의 역사지만, 어딘가는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 국가폭력과 무력분쟁의 사건을 70년 전 과거로 묶어두기엔 미얀마의, 팔레스타인의, 티벳의, 방글라데시의 현재진형형 상황들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제주 평화여행을 함께 한 로힝야 난민 빠띠마 선생님과 띠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종종 안도와 슬픔이 동시에 겹쳐보였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로힝야는 미얀마 군으로부터 지속적인 차별과 배제, 무차별적인 학살로 약 9천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고 보고됩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미얀마 군부에 의해 로힝야 대학살이 벌어졌습니다.  불과 6년 전의 일입니다. 

'순이삼촌'으로 제주4.3사건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 작가는 "끊임없이 4.3을 재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재기억이란 지워졌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 대를 이어 미체험 세대가 그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쟁 상황의 '공동의 기억자'가 되는 일, 아디가 하고 있는 그 일을 다시금 더듬더듬 짚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말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평화가 깨어진 어딘가의 오늘을 '같이' 견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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