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사회지원][출장기] 낯선 곳에서의 첫 걸음: 로힝야 난민캠프 출장 이야기-1편(록사나)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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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사나(박다은 활동가)의 로힝야 난민캠프 출장기는 총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본편에서는 출장 방글라데시에 도착하였던 1일차부터 캠프 일정이 마무리되던 7일차까지의 내용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생애 첫 출장길

“설렘 반, 두려움 반”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생애 첫 출장길. 사업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인천에서 방콕으로, 방콕에서 다시 다카로 꽤나 오랜 시간을 하늘에서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나의 첫 방글라데시는 새벽임에도 식지 않은 열기와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의 연속이었다. 무수한 인파와 각종 교통수단 사이로, 우리 출장단은 콕스바자르로의 이동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 인근의 교통 체증 ⓒ사단법인 아디

 

콕스바자르에 도착한 이후에도 이곳이 방글라데시임을, 그리고 이 지역이 100만 명에 육박하는 로힝야족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난민캠프들이 위치한 곳임을 한 번에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우리 출장단을 마중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공항까지 온 비바(이승지 활동가/방글라데시 현지 PM)와 자말(방글라데시 MAISHA의 M&E manager)의 모습에 반가움과 안도감이 밀려왔을 뿐이었다.

 

이렇게 우당탕탕 콕스바자르와의 첫 만남을 뒤로 하고, 출장 3일차부터는 본격적으로 난민캠프 방문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처음 방문한 RRRC(Refugee Relief and Repatriation Commissioner) 사무실과 CiC(Camp in Charge) 사무실은 캠프 패스(출입 허가)를 받기 어려울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한국에서 온 낯선 이들을 환대해 준 배경에는 그동안 알람기르를 비롯한 현지 스태프들, 그리고 비바가 쌓아온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도 및 입지가 한 몫을 했으리라.

 

드디어 당도한 꾸뚜팔롱 난민캠프

말로만 듣던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캠프는 가는 길조차 험했다. 평소 온갖 교통수단에 대한 멀미가 심한 나로서는 상당히 난도 있는 초행길이었다. 그러나 캠프14로 향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방글라데시 호스트 커뮤니티의 모습, 그리고 도로의 좌우로 펼쳐진 난민캠프들의 모습에 나의 고통은 한 톨의 먼지만큼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철조망 너머로 여기저기 언덕 지대마다 자리 잡은 쉘터들의 모습, 그리고 철조망 바깥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방글라데시 빈민들의 모습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호스트 커뮤니티와 난민캠프가 철조망으로 구분되어 있다고는 하나, 누가 봐도 한눈에 구분이 가능할 만큼 선명한 경계는 없었다. 오히려 두 공동체의 유사성에서 오는 먹먹함이 나를 잠식했다. 누구 하나 더 낫다고 하기도 어려울 만큼 가난의 그림자가 양쪽에 나란히 드리워 있었기 때문이다.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캠프14의 모습(1) ⓒ사단법인 아디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캠프14의 모습(2) ⓒ사단법인 아디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캠프14의 모습(3) ⓒ사단법인 아디 


▲ 로힝야 난민캠프와 호스트 커뮤니티 사이의 경계 ⓒ사단법인 아디



Shanti Khana, 평화의 집

이렇게 난민캠프 내·외부의 상황에 압도되기를 잠시,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샨티카나가 위치한 캠프14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잠시간 걸어 들어가니 “Shanti Khana”라고 쓰인 명패가 선명히 보였다. 평화의 집, 순간 누가 지었는지 정말 장소에 알맞은 이름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다. 샨티카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센터를 둘러싼 난민캠프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름처럼 평화롭고 안온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고, 낯선 사람인 나조차도 포용해 주는 공간이었다.

 

▲ 캠프14에 위치한 다목적여성힐링센터 '샨티카나' 입구  ⓒ사단법인 아디


샨티카나에 들어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 그동안 내가 매뉴얼로, 월별 활동 보고서로 마주했던 현장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전체 시설들을 둘러보고, 힐링 존에서 이루어지는 세션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두근거림이 멈추지를 않았다. 실제로 로힝야 여성들이 받는 힐링 세션을 체험하는 순간에는 더욱 그러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PSS 여성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고, 호흡을 함께하고, 나의 몸을 터치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무엇인가가 해소된 느낌을 받았던 점이다.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칭할 수 있는 깊은 상처가 내 안에도 있었는데, 순간 그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기묘한 감각을 느낀 것이다. 매뉴얼을 보면서 각 세션의 효과성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 단 한 번의 경험을 통해 그에 대한 의문이 모두 해소되는 신기한 하루를 선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 샨티카나에서 힐링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사단법인 아디


이튿날, 샨티카나 메인 센터에서 거리가 좀 있는 브랜치 방문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한국이었다면 이제 막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시작했을 시간에 이미 캠프로 향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이른 시간이었던지! 그러나 브랜치가 언덕 위에 있고, 현지의 기온이 오전에도 매우 높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렇게 차를 타고 달린 후 언덕을 올라 다다른 브랜치는 굉장히 앙증맞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메인 센터에서와 같은 정규 세션들을 모두 수행하기가 어려워 그중 일부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현지 직원인 루미로부터 들었는데,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이 높은 언덕을 올라 심리치유를 행하는 PSS 여성들과 세션에 참여하는 로힝야 여성들의 열정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캠프14의 모습(4) ⓒ사단법인 아디

 

브랜치를 떠나서 모니터링을 위한 가정방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꼬불꼬불한 골목들과의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가정방문은 아웃리치 프로그램이 잘 수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커뮤니티 비즈니스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이 원활히 수익 창출을 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아웃리치 프로그램의 모니터링 인터뷰를 통해서는 로힝야 여성들이 글자와 숫자를 배우려는 이유가 너무나도 와닿았다. 자신들의 자녀에게 직접 글자와 숫자를 알려주고,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자 하는 그 마음에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로힝야 여성들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 애쓰던 과거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다음 세대는 지금의 세대보다 더 발전되고 희망적인 모습이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이 닮아있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위와 맥락이 조금 달랐다.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우리 프로그램의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되었는지, 향후 지속적으로 생계 관련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위해 반영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여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사업에 참여하여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한 로힝야 여성들이 가정에서 가지는 위치나 위상이 한 층 높아진 것 같았다는 점이다. 함께 사는 식구들의 표정도 밝았고, 여성들 스스로도 일반 여성에 비해서 자신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고, 그것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참여 여성들에게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 줌과 동시에 ‘자기효능감’의 상승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철조망으로 갇힌 난민캠프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잠재력을 발휘하고, 매 순간 기회와 돌파구를 찾으며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다만 아쉬운 점은 방글라데시 정부의 기조가 로힝야 난민들이 영구적으로 정착하여 살아가는 것을 막는 쪽에 가까워서 더 큰 수익을 창출하고, 더 많은 비즈니스의 기회를 갖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입장이 일견 이해되기도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얀마의 정세와 만성화되는 난민캠프의 상황을 고려하면 조금 더 유연하고 상생가능한 방안의 모색이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경계와 경계의 공간들

캠프 출입 3일차에는 전체적인 메가 캠프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난민캠프 외부를 철조망을 따라 걸어보고, 미얀마와의 국경이 있는 고속도로(Bangladesh-Myanmar Connection Highway, Cox's Bazar의 Guandhum과 미얀마의 Baulibazar를 연결)를 방문했다. 철조망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저기 경계가 느슨한 곳들이 보였다. 속된 말로 ‘개구멍’이라고 일컫는 곳들이었는데, 흔히 생각하는 ‘사람이 겨우 지나올 만한’ 공간이 아니라, ‘성인이 직립해서도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개구멍들이 즐비했다. 로힝야 난민들이 체크 포인트(방글라데시 군인들이 검문을 하는 캠프의 공식 출입 통로)를 통과해 공식적으로 나올 수는 없지만, 이런 경로로 비공식적인 외출이 많이 이루어지는 모양새였다. 이렇게 씁쓸한 비공식 경로를 눈으로 마주한 후, 우리 출장단은 UN WOMEN에서 운영하는 Women’s Market과 IOM에서 운영하는 Rohingya Cultural Memory Centre를 방문했다. 사실 Women’s Market은 샨티카나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프로그램에 좋은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큰 기대를 안고 방문하였으나, 아쉽게도 인위적으로 조직된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부자연스러운 비즈니스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다였다.

 

▲ 로힝야 기억 센터(Rohingya Cultural Memory Centre)에 걸린 공예품 ⓒ사단법인 아디


그러나 Rohingya Cultural Memory Centre는 똑같이 UN 기구에 의해 형성된 공간이었음에도 상반된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해당 공간 내에서 ‘로힝야 사람들의 주체성, 고유성 등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짐작해 본다. Rohingya Cultural Memory Centre에는 자신들의 문자가 없어 기록하고 전수할 수 없었던 ‘로힝야들의 얼’이 태피스트리, 목공예품, 구전과 공연 등의 형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핍박받는 민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을 일부라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혹자는 이것이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할지도 모르나, 나는 그 개살구마저도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현시점에서 로힝야족이 마주한 냉정한 현실이라고 본다. 로힝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수놓은 태피스트리도, 로힝야족의 전통 결혼식과 미얀마에서의 하루를 수놓은 태피스트리도, 로힝야족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통 놀잇감 키트도 저장되고 알려질 공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Shanti Khana Reunion Day!

캠프 출입 5일차, 드디어 PSS 인력풀 전체와 미팅을 갖는 “Shanti Khana Reunion Day”가 찾아왔다! 우선 샨티카나 운영위원회와의 미팅으로 아침을 열었는데, 로힝야 여성들의 폭발적인 성원에 가슴이 뭉클했다. 낯선 한국인들, 그것도 연구자인 남성들까지 동석한 자리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과거 부르카로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을 가리고 그저 눈만 끔뻑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성장한 여성들을 마주하면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한꺼번에 콕스바자르 라보니 해변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 샨티카나 리유니언(Reunion)데이에서 로힝야 여성들과 나눠먹은 잡채 ⓒ사단법인 아디


우리 샨티카나 여성들의 성장에 감격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PSS 인력풀 전체 미팅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비바와 별빛,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부터 이날을 기다리고 또 어떤 한국 음식을 대접하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숱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렇게 최종 낙점된 메뉴는 잡채, 불닭볶음면, 치킨, 그리고 후식인 잭프루트였다. 잡채는 한국의 잔칫날에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음식이고, 불닭볶음면은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방글라데시와 로힝야 커뮤니티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치킨은 한국에서도 현지에서도 모두가 사랑하는 음식이거니와 육류 및 단백질 섭취가 어려운 난민캠프의 특성을 고려하여 선택된 메뉴였다. 잭프루트 역시도 신선한 과일을 마음껏 사 먹기 어려운 캠프 내 환경을 생각한 후식이었다.

 

출장단은 한국에서 잡채의 핵심인 진간장과 당면을 공수해 갔고, 불닭볶음면은 콕스바자르 시내의 마트에서 구입했다. 메인 메뉴인 잡채와 불닭볶음면, 이 두 면 요리에 대한 우리 PSS 여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국의 매운맛을 상징하는 불닭볶음면이 우위를 점하리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결과는 강원대학교 김현준 박사님의 손맛이 담긴 잡채의 압승이었다. 적당한 감칠맛과 은은한 단맛이 조화를 이룬 잡채에 빠져 모두들 빠르게 접시를 비워나가는 모습이었다. 다들 너무 맛있게 먹는 바람에 나와 비바, 별빛은 잡채를 맛볼 영광을 얻지 못했으나, 뿌듯함만으로 이미 배가 불러왔다.


brac의 여성친화공간(Woman Friendly Space)을 방문하다


▲ 방글라데시 현지 NGO인 brac의 WFS(Women Freindly Space) 정문 ⓒ사단법인 아디


▲ 방글라데시 현지 NGO인 brac의 WFS(Women Freindly Space) 방문 ⓒ사단법인 아디

 

같은 날 나와 지니아, 푸딩, 별빛, 그리고 강원대학교의 임유진 교수님은 방글라데시 현지 NGO인 brac에서 운영하는 Women Friendly Space(이하, WFS)를 방문했다. WFS에서는 젠더기반폭력과 성 및 생식 건강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젠더기반폭력에 관련된 사례관리, 심리사회적 지원과 더불어 로힝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 프로그램과 젠더 인식 개선 교육을 병행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은 The World Bank를 주요 도너(donor)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센터의 상태 및 관리가 준수했고, 내부에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게시물들이 모두 영어로 게재되어 있어 문해력이 낮고 영어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지 않은 로힝야 여성 및 여아의 경우 직접 읽을 수 없어 반드시 통역을 거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외부의 방문자들이 있었는지, 센터를 이용하는 로힝야 여성들이 방문객들에게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로힝야 여성과 여아를 위한 공간이 전시되고 이들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커뮤니티 비즈니스 프로그램이 오직 1가지 종류(바느질과 재봉)로만 운영되고, 기술 습득 후에도 지속적으로 생계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키트 등을 배분하지 않아 실효성이 낮아 보였다. 우리 샨티카나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여성들의 요구에 맞추어 키트를 배분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무엇보다 WFS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로힝야 난민인 참여자들에 대한 태도였다. 샨티카나도 방글라데시 현지 직원들이 일정 부분 기여하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로힝야 여성 공동체’를 중심에 두는 방향성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WFS는 방글라데시 현지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었으며, 프로그램 참여자인 로힝야 여성들을 단순한 수혜자로 여겨 ‘beneficiary’로 부르고 있었다. 이 단어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나, 다소 시혜적인 태도와 관점으로 로힝야 난민들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샨티카나도 WFS도 로힝야 여성들에게 어떠한 프로그램을 통해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맞지만, 로힝야 당사자를 우선으로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가까운 미래에 이들이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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