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사회지원][인터뷰 시리즈] 샨티카나를 만드는 사람들 (1) 방글라데시 RW Welfare Society_타니야, 지니야편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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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카나에서 지니야와 타니야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지니야와 타니야는 난민캠프라는 생소한 공간에 위축된 나에게 'I know you. You are Tory!'(난 당신을 알아요. 토리잖아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 두 마디의 인사가 나에겐 샨티카나의 첫인상이 되었다. 

지니야와 타니야는 방글라데시 RW Welfare Society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그들이 샨티카나에서 일을 한지는 어느덧 햇수로 4, 5년 차이다. 그들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샨티카나와 로힝야 여성들의 변화를 목도하며 함께 성장했다. 

비장하고 화려하려 애쓴 질문들이 무색하게 지니야와 타니야의 모든 대답에는 로힝야 난민 여성 동료들을 향한 뜨거운 애정과 자긍심이 담겨있었다. 그 마음 때문에 오히려 질문 혹은 질문의 의도가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지니야와 타니야가 보여준 마음은 폭력으로 얼룩진 분쟁 지역 안에서의 대안적 힘으로써 여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직된 몸에서 이완된 몸으로, 경계하는 마음에서 포용하는 마음으로, 취약함에서 강인함으로, 고립에서 연대로, 단절에서 소통으로, 함께여서 가능한 이동들이 샨티카나에서 벌어지고 있다.


※ 본 인터뷰 시리즈는 <샨티카나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총 4회에 걸쳐 '샨티카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명칭 설명]

º 샨티카나(Shanti-Khana)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 난민캠프 14에 위치한 다목적 여성힐링센터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캠프 내 여성들의 트라우마 치우를 지원하는 한편 역량강화교육을 바탕으로 현지 여성 리더를 배출, 회복과 자립을 기반으로 여성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로힝야어로 '평화의 집'을 뜻한다.

▲ 샨티카나 전경사진 ⓒ사단법인 아디

º  PSS(Psychological  Social Support/심리지원단)

로힝야 난민 여성으로 구성된 심리지원단으로, PSS 양성 과정을 수료한 로힝야 여성에게만 PSS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현재 31명이 활동 중이며, 샨티카나를 찾은 난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세션별 심리지원 활동을 직접 운영하는 등 샨티카나 전반을 이끌어가는 주역들이다.

▲  샨티카나에서 PSS가 모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단법인 아디


º RW Welfare Society 

아디의 파트너 기관으로서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로힝야 여성, 아동 난민들을 대상으로 보호 활동 및 인식 개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여성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활동과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역량 강화 교육을 수강 중인 RW Welfare Society ⓒ사단법인 아디


[인터뷰이 소개]

○ 지니야(Jinia) 'RW Welfare Society'의 직원으로, 다목적 힐링센터 '샨티카나'에서 PSS 필드 모니터를 담당하고 있다. 주요 역할은 난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CBP 프로그램(Community Business Program)을 운영하는 일이며, 부드럽고 침착한 매력의 소유자이다. 

○ 타니야(Tania) 'RW Welfare Society'의 직원으로, 다목적 힐링센터 '샨티카나'에서 PSS 필드 모니터를 담당하고 있다. 주요 역할은 아웃리치 PSS 들을 관리하는 일이며, 밝고 명랑한 매력의 소유자이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타니야  안녕하세요, 타니야입니다. 이곳에서 2021년부터 일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올 여름까지 임신으로 잠깐 떠나있다가 6월에 다시 합류하였어요. 현재는 PSS(심리지원단) 필드 수퍼바이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니야  제 이름은 무깔라마 씨티카 지니야에요. 무깔라마는 좋은 친구라는 뜻이고요, 씨티카는 신뢰, 지니야는 꽃 이름 중 하나입니다. 힐링센터에는 2020년 7월부터 합류하여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필드 모니터 직원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의 역할은 주로 아웃리치를 방문하거나 힐링센터를 모니터링하는 일이예요. 2023년부터는 CBP(Community Business Program)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타니야 저도 제 일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하는 일은 10명의 PSS를 관리하는 일이에요. 샨티카나에는 30명의 PSS 외에도 10명의 PSS들이 더 있는데,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매일같이 참여자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소마운동(Somatic Exercise)을 안내하는 일이에요. 거기서 저의 역할은 그들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일입니다.

▲ 샨티카나 내부에서 타니야 ⓒ사단법인 아디

▲ 샨티카나 내부에서 지니야 ⓒ사단법인 아디


캠프에서 로힝야 난민 여성분들을 돕고 계시잖아요.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타니야 많죠. 우선 로힝야 사람들을 돕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여성들이 취약한 상태에 처해 계시고, 무언가를 학습하거나 알아갈 기회조차 갖지 못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야말로 로힝야 여성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이 일을 통해 저의 소망이 실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해요. 

물론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일이기도 하죠. (웃음) 일해서 번 돈으로 남편과 나누기도 하고, 경제적인 면에서 서로를 도와요. 하지만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역시나 로힝야 여성 난민들을 돕는 것입니다. 

지니야 로힝야 사람들을 도울 좋은 기회였어요. 저 또한 타니야와 마찬가지로 이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원하던 바(사람을 돕는 일)를 이룰 수 있다는 데 가장 크게 매료되었어요. 또 이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도 하고요. 

일을 하며 동기부여를 받을 때는, 제가 이분(로힝야 여성 난민)들을 동기부여 했을 때에요. 그분들이 저와의 대화를 통해 편안함을 얻고 활동의 동력을 얻는 모습을 보면, 그게 또 저에게 동력이 돼요. ‘아!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이 일은 저에게 감사한 기회이기도 해요. 

사실 그들을 돕는다고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쪽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돕고 있다기 보다 서로를 돕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방글라데시 현지 스태프)와 PSS 단원들, 그리고 참여자분들이 서로를 돕고 있고, 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죠. 

타니야 로힝야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 더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어요. 그들은 자신이 살던 고향을 다 버리고 떠나왔잖아요. 아무 것도 없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준다면, 그들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이득(benefit)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로힝야 난민 여성분들이 뭔가를 알면 알수록 자녀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도 많아질 테니까요.

지니야 그러다 보면, 결국 로힝야 커뮤니티에도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들이 자라서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될 거잖아요. 그럼 더 나은 커뮤니티가 되는 데도 일조하겠죠.  

▲ 샨티카나에서 아디의 비바 활동가와 논의 중인 타니야 ⓒ사단법인 아디


이곳에서 일하며 생긴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타니야 26명의 PSS를 가르친 것이요. 지금은 30명이지만 그때는 26명이었거든요. 숙제를 내줘도 완벽하게 해내고,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그런 것들도 기억나지만, 사실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들이 저를 무척 사랑해 줬다는 데 있어요. 육아 휴직으로 잠시 힐링센터를 떠나있을 때, 계속해서 저에게 연락을 해오셨어요. 언제 오냐고요. 그게 저한테 그렇게 특별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요. 저를 보러 콕스바자르 시내에까지 오고 싶다고도 하시고.(원칙상 난민캠프에 있는 난민들은 캠프 밖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저는 치타공(콕스바자르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에 있었지만요. 그래서인지 잠시 힐링센터를 떠나 있던 때가 저에게는 너무 애틋한 순간으로 남아있어요. 


▲ 육아 휴직에서 복귀한 타니야와 PSS 단원 분이 샨티카나 앞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단법인 아디


와! 끈끈한 우정이 느껴져요.

타니야 저희끼리는 결속력이 정말 강해요. 가서 PSS분들에게 저에 대한 애정에 대해 물어보셔도 좋아요! (웃음)


PSS 분들에게 가서 타니야를 얼마나 사랑하냐고 물어봐야겠어요. (웃음)

타니야 나쁜 기억도 있긴 해요. 2023년 제가 복귀하자마자 있었던 일인데요. 세션 진행을 위해 한 참여자 집에 방문했거든요. 그때 참여자의 아버지가 나오더니 ‘여기 왜 왔어! 내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내 딸이랑 함께 할 수 없다’며 가라고 하셨어요. 무섭고 두려웠죠. 사실 오늘 아침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Well-being Survey를 하러 어느 참여자 집에 갔는데, 조사를 하던 중 말레이시아에 있는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온 거예요. 남편은 계속 아내에게 ‘이 사람들이 여기에 왜 있냐’고 묻는 것 같았어요. 잠시 다른 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더니 핸드폰을 우리 쪽으로 갖다 대더라고요. 핸드폰에서는 대뜸 우리를 향해 ‘왜 왔냐, 어디서 왔냐’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Survey 질문을 한 개쯤 남겨두고 나왔던가, 거의 다 한 거나 다름없었는데... 참여자 집에 갔을 때, 남편이나 아버지가 그러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지니야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2021년에 있었던 일인데요. 어느 참여자분의 집에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그분의 남편이 온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보는 앞에서 그분을 때렸어요.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기도 했고, 막상 직접 보니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렇지만 상황을 버려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어요. 참여자분이 울고 계셨거든요. 그 분을 달래면서 그분의 남편에게 ‘왜 여기에 왔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설명했어요. 참여자분이 진정된 걸 보고 그 집을 나섰는데, 힐링센터에 돌아와서도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PSS 한 분에게 그분 집에 가서 그 분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주시기를 요청했고, 참여자 분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했던 기억이 있어요. 


참여자분의 남편이 PSS 단원분들과 지니야가 보는 앞에서 참여자분을 때리고 소리 지르신 거예요? 

지니야 네, 그랬던 거죠. 이곳에선 가능한 얘기예요. 사실 그런 상황이 그때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반복적인 경험들 때문에, 지금은 아웃리치를 할 때, 사전에 ‘여기에 왜 왔는지’, ‘우리가 무얼 하는 사람들인지’, ‘어떤 걸 하려고 하는지’ 참여자 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려고 최선을 다해요. 참여자 가족들을 설득시켜야 참여자분이 저희 프로그램에 편하게 참여하실 수 있으니까요. 


처음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남성들(남편 혹은 아버지)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을까요?

지니야 PSS의 남편분들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남편들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거든요. 폭력적 상황에 가만히 있기만 하기엔 여성분들의 역량이 강화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어떤 면에선 남편들이 아내의 활동을 존중하는 것 같기도 해요. CBP 프로그램 참여자들 간에도 차이가 느껴지는데요. 예를 들어 기존 참여자와 신규 참여자 간에도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거죠. 정신력(Mentality), 남편들의 반응, 가족들의 지지, 모든 면에서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처럼 느껴져요. 그만큼 여성분들이 힘을 갖게 됐다는 뜻이기도 할 거고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만 30개가 넘는 캠프와 100만이 넘는 로힝야 난민이 살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이곳은 전 세계적으로 메가 캠프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요. 로힝야 난민에 대한 방글라데시 분들의 생각도 궁금해요. 사태가 나아질 기미 없이 장기화되면서 부정적으로 바뀐 시선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지니야 오, 그래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로힝야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아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로힝야 사람들을 싫어했다면 로힝야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할 수 없었겠죠. 다만 로힝야 난민 중에서도 악의적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룹이 있어요.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기도 하지만, 로힝야 난민들을 상대로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싫어해요.

타니야 캠프 내에도 다양한 테러리스트 그룹이 있어요. 방글라데시 사람뿐만 아니라 로힝야 사람도 납치하여 돈을 요구하거든요. 어른, 아이,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납치해요. 이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활동하기보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누가 거기서 활동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해당 그룹의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어 사람들은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에요. 캠프 내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도 하는데요. 사실 PSS 단원분 중에도 피해를 당한 분도 계셨어요. 알사 그룹에서 그분의 남편을 납치했고 50,000타카(약 60만 원 상당)의 돈과 핸드폰을 요구한 일이 있었어요. 

▲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캠프14 풍경 ⓒ사단법인 아디


경제활동이 어려운 난민캠프에서 50,000타카는 엄청난 액수처럼 들리는데요.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타니야 방법이 없잖아요. 남편을 살리기 위해 갖고 있던 금을 팔거나 대출을 통해 돈을 마련하였다고 하더라고요.


난민분들에게 극심한 공포이고 불안일 것 같아요. 탄압과 억압,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쳐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공포가 일상의 도처에 있는 거잖아요. 어쩌면 캠프에서 일한다는 건 깨어진 평화와 분쟁을 끊임없이 마주 보는 일일 것 같은데요. 두 분은 어떤 때 평화를 느끼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타니야 참여자들이 기꺼이 우리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줄 때 평화를 느껴요. 그들이 많은 것들을 배우며 행복해할 때, 그리고 그것을 실제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 활용하는 것을 지켜볼 때 평화를 느끼고요. 그런 지점이야말로 ‘아! 우리의 활동이 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구나! 정말 그들이 자랑스럽다’는 걸 느끼게 해줘요. 

지니야 여기에 샨티룸이 있는 거 알고 계시죠? 거기 가보면, 되게 재밌어요. 나이가 있는 로힝야 여성분들도 오시고, 또 젊은 여성분들도 오시는데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통 노래도 함께 부르곤 해요. 제가 지나가다 거기를 쳐다보면 바닥을 툭툭 치면서 ‘여기 앉아~’라고 하세요. ‘우리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줄게’라고 하시면서요. 저는 그 순간이 정말 평화롭게 느껴져요. 그게 저에겐 평화인 것 같아요. 


힐링센터가 어느덧 6년을 지나왔잖아요. 6년 뒤 힐링센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니야 3년 전,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봐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프로그램도 많아졌고 그 덕분에 PSS 간 관계도 더 끈끈해졌어요. 숌시다(PSS 1대 단장으로 활동 중이다.)도 처음에 비해 정말 많이 성장했거든요. PSS 단원분들은 이제 읽고 쓰고 그릴 수도 있게 되었어요. 또 자신들이 배운 것을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죠.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임감’을 배웠다는 건데요. 지금 그들은 정말 유능한 여성들이에요. 그러니 6년 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성장해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신이 원하신다면(인샬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요.  

▲ 샨티카나 내부에 걸려있는 자수물 ⓒ사단법인 아디


마지막으로 두 분의 꿈을 여쭤보고 싶어요.

타니야 저는 아직 학위를 마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먼저 학위를 마치고 싶어요. 그리고 나면 취약한 여성들을 더 많이 돕고 싶어요. 로힝야 여성들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세상에 많거든요. 긴 시간동안 여성들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아왔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죠. 서로를 이해하는 서로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더 적극적으로 여성들을 도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맞아요, 여성은 세상을 바꿀 잠재적 힘을 갖고 있다고 믿어요. 지니야는 어떤 꿈을 갖고 계세요?

지니야 두 가지 꿈이 있는데요. 하나는 은행원이고요. 다른 하나는, 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방글라데시 여성들 또한 로힝야 여성들만큼 취약한 환경에서 살아가요. 사실 로힝야 여성들은 그들을 돕는 NGO라도 있다지만, 방글라데시는 거의 없거든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많은데도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로힝야 여성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여성을 돕는 일도 하고 싶어요. 또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구걸하는 모습도 보셨을 거예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일하고 싶어요.


모두들 기본적으로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지니야 네, 저는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웃음) 가능한 만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다섯 명이든, 일곱 명이든요. 사실 은행원이 되고 싶은 것도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정부에서 관리하는 방글라데시 은행에 들어가고 싶은데, 제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좋은 마음을 갖고 있으니, 할 수 있을 거예요. 

지니야 신이 원하신다면(인샬라),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 콕스바자르 해변에서 RW Welfare Society 여성 직원들과 단체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지니야, 왼쪽에서 다섯 번째 타니야) ⓒ사단법인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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