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디는 단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무엇을 원하나요?’라고 먼저 물었습니다” 현지파트너 RWWS의 라지아 대표를 만나다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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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이어진 10년>은 사단법인 아디의 10주년을 맞아 여정을 돌아보기 위한 인터뷰 기록입니다.

아디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 아디의 곁을 지켜온 사람, 그리고 이제 막 아디와 연결된 사람까지,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이야기를 모아 아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려가고자 합니다.

인터뷰는 아디의 10주년 행사 <우리의 몫, 목소리>에 앞서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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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WWS 라지아 대표 ⓒ사단법인 아디



“한국 사람들의 지지는 단순한 지원이 아닌, 로힝야를 멀리 떨어진 타인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이해해주는 마음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난민캠프에서 여성과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로힝야 여성이 있습니다. 로힝야 단체 ‘RWWS(RW Welfare Society)’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라지아 술타나(Razia Sultana)입니다. 그는 2016년과 2017년, 수많은 로힝야 난민이 방글라데시로 쏟아져 들어오던 현장에서, 참혹한 현실을 기록하고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싸워왔습니다.


당시 로힝야 여성들이 직면한 심각한 트라우마와 성폭력 피해를 기록하며 심리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라지아 대표는 현지 인권단체의 소개로 아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RWWS는 NGO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신생 단체였지만, 아디는 라지아 대표가 현장에서 쌓아온 기록과 진정성을 신뢰하며 파일럿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디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캠프 14를 중심으로 샨티카나를 설립하고, 신체치료(Somatic Therapy)와 문해 교육 등 여성들의 요구에 맞춘 ‘로힝야 난민여성 지원사업’을 함께 일궈오며 지금까지 견고한 연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최근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미얀마 시트웨에서 로힝야인에 대한 학살이 발생하면서 이때부터 인권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80만명에 이르는 로힝야인들이 대거 난민으로 유입된 사태는 내 인생에 큰 변곡점이었습니다. 2010년부터 이미 로힝야 난민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6년의 대규모 유입 때 로힝야 난민캠프를 가서 수많은 로힝야 난민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현장 조사를 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폭력 피해생존자 중 80%가 여성이라는 점이었어요. 특히 성폭력 피해에 취약했는데, 이미 2010년에 소수의 로힝야 난민들이 이주해오던 때부터 성폭행 피해는 발생하고 있었고 2016년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와 협업 관계에 있는 Kaladan Press가 로힝야 여성 난민들이 겪은 폭력 피해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Kaladan Press의 기록 담당자로부터 인터뷰를 진행하고 증언을 확보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교육을 받고 성폭력 등 다양한 폭력 피해를 경험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여 보고서로 발간하였어요.


그리고 2017년에 또 한번 로힝야 난민들이 대규모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피난길에 오른 로힝야 난민들의 소식이 긴급속보로 뉴스에 보도되고 있을 때, 나는 내 여동생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선 나는 처음엔 “뉴스에 작년(2016년) 영상이 나오네?”라고 말했는데 내 동생이 “언니, 저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라고 말해줘서 그 즉시 현장으로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소지하지 못한 채 굶주리고 있었고 가족이 어딨는지 찾아헤매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소리 치며 찾는 엄마들, 몸에 상처가 나고 부상당한 채 학살 발생지역에서부터 무작정 걸어온 사람들까지. 나 역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를 외치며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그 당시는 2016년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말레이시아에서 대면과 비대면을 혼용한 하이브리드 재판이 열리고 있을 때라 2016년 사건에 대한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보고서들을 내가 증거물로 제출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2017년 그 현장의 모습은 마치 2016년으로 되돌아간 듯 했습니다. 전쟁 영화를 보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그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어요.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콕스바자르와 인근 난민캠프를 중심으로 여러 단체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 단체들과 방글라데시 정부, 그리고 선주민(host community)가 로힝야 난민들을 받아주고 지원해준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로힝야 여성들의 증언과 진술을 확보하면서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나도 마음이 아팠고, 이들의 심리적 회복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를 설립해야겠다고 결심해 지금의 RWWS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아디와의 협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증언을 기록해왔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보면서 늘 심리사회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기회가 방글라데시에서 아주 유명한 인권 NGO인 Odhikar이라는 단체를 통해 찾아왔습니다. Odhikar의 창립자이자 대표는 내가 기록한 증언들, 그리고 군에 의한 성폭력과 참상을 목격한 경험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디라는 단체가 심리사회적 지원에 대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해주었죠. 그 이야길 듣고 나는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NGO 등록증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김기남 활동가와 연결되었고,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기남 활동가와 이메일은 많이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건 30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NGO 등록은 없지만 NGO 자격을 가진 파트너 단체와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컨소시엄 형태로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김기남 활동가가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라고 제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일종의 신뢰였던 것 같아요.


김기남 활동가가 왜 우리를 믿어주었는지, 또 제가 어떻게 그를 설득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마 내 보고서들을 보고 “이 사람은 해낼 수 있겠다,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메일과 WhatsApp으로 계속 연락했고, 아디 팀이 처음 현장에 왔을 때 함께 캠프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건, 당시 함께했던 아디 활동가들, 특히 공선주 활동가와 나연 활동가가 정말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폈다는 점입니다. 여성들을 위해, 그리고 내 공동체인 캠프 14를 위해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마치 그들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것 같았어요.


나 역시 많은 단체들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활동가로서 진심으로 무언가를 하려면 현장과 협력해야 한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공선주 활동가와 나연 활동가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공선주 활동가는 정말 성실했고, 현장 활동의 중요성을 깊이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우리 RWWS는 새로운 단체였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이 많았는데, 아디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함께 굉장히 열심히 일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고, 그래서 그 유대감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공선주 활동가와는 계속 연락하고 있고, 아디는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같은 공동체를 위해 함께 배우고 함께 일하고 있어요.


나에게 아디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키워준 존재입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여러 정책들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PSS(Psychosocial Support, 심리사회적 지원) 프로그램도 처음에는 전혀 몰랐지만, 아디를 통해 배웠습니다.


RWWS가 새로운 단체였던 만큼 부족한 부분도 많았는데, 특히 김기남 활동가와 공선주 활동가가 그런 부분들을 짚어주고 함께 보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디가 없었다면 지금의 RWWS도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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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샨티카나에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소속 선생님들과 함께한 PSS 슈퍼비전 세션 ⓒ사단법인 아디 



아디와 함께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처음 심리사회적 신체치료(somatic therapy)를 시작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에는 작은 방 하나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차선 박사도 함께했는데, 당시에는 남성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대신 여성 심리사회 활동가 한 분이 신차선 박사에게 치료 방식을 배우고, 다시 우리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지만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점차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샨티카나에 조금 더 큰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고, 여성들의 태도와 분위기도 점점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 안에서 심리사회적 지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공동체와 소통하며 잘 해결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점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어요. 신체치료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나중에는 신차선 박사 같은 남성들도 프로그램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했는데 그건 정말 큰 변화였고,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파일럿 프로젝트가 끝날 즈음에는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성 8명조차 모집하기 어려웠는데, 프로젝트 이후에는 추가 참가자를 모집하려고 하자 60~70명의 여성들이 인터뷰를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시민들과 국제사회, 그리고 아디가 로힝야 여성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왜냐면 비슷한 고통을 겪은 것이니까요. 한국 사람들도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힝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건 우리와 비슷한 고통이다”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와 연대해주었습니다. 그들의 지원은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도 로힝야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였습니다. 아디뿐만 아니라 후원자들도 매우 중요한 지원자였습니다. 그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지지는 단순한 지원이 아닌, 로힝야를 멀리 떨어진 타인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 이해해주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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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샨티카나 내부 ⓒ사단법인 아디


아디와 함께 일하며 느낀 아디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디는 단 한 번도 “이걸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무엇을 원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문해 교육도 여성들의 요구에서 시작되었고, 센터 장식 하나까지도 후원기관이 정한 게 아니라 여성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꾸몄습니다. 우선순위는 언제나 수혜자와 공동체였습니다. 이게 바로 아디의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단체들과도 일해봤지만 이런 방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여성들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아디는 그 목소리를 후원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로힝야 여성들의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심리사회적 회복 프로그램은 단순히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회복하고, 자신감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모든 생존자가 곧바로 ‘역량 강화(empowerment)’를 이루는 것은 아니에요. 진정한 역량강화란 자기 삶을 위해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했기에, 여성의 권리와 역량강화는 여성들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신입 활동가들도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 또한 역량강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로힝야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여성의 권리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권리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로힝야 여성들은 오랫동안 교육에서 배제되어 왔는데, 특히 우리가 함께하는 여성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집 안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충분히 먹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자신감이 생기면 스스로 먹을 음식도, 생활 방식도, 잠자는 시간도, 대화하는 시간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여성은 기계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일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것은 그들의 권리입니다. 이제 로힝야 여성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로힝야 난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지원은 앞으로 잘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이죠. 여성의 자립은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로힝야 여성들은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고, 식량 지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지원금과는 달리, 생계 기반을 만드는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로힝야 여성들은 여전히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고, 방글라데시 정부도 생계 지원(livelihood)을 장려하고 있지만, 최근 상황은 WFP의 식량 지원도 점차 줄어들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경제 활동의 기회를 얻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여성들이 돈을 벌 수 있다면 가족을 돌볼 수 있고, 최소한의 식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말 꼭 필요한 일입니다.



아디의 10주년을 맞아 전하고 싶은 축하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아디와 우리 RWWS는 같은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아디는 영혼 같은 존재입니다. 아디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로힝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 같은 단체들을 어디서든 계속 지원해주길 바랍니다. 미얀마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시간이 지나도 아디의 사람들과 마음, 동기, 가치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아디. 나는 언제나 아디와 함께 하겠습니다. RWWS와 나 역시 진심으로 아디의 10주년을 축하합니다. 함께 파트너십을 이어올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라지아 님에게 아디는 어떤 의미인가요?

지난 10년 동안 아디는 나에게 “빛나는 원천(shining source)”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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