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잊혀질 것 같았습니다.”아디 창립 멤버를 만나다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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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이어진 10년>은 사단법인 아디의 10주년을 맞아 여정을 돌아보기 위한 인터뷰 기록입니다.

아디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 아디의 곁을 지켜온 사람, 그리고 이제 막 아디와 연결된 사람까지,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이야기를 모아 아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려가고자 합니다.

인터뷰는 아디의 10주년 행사 <우리의 몫, 목소리>에 앞서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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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남(기남킴)·공선주(별빛) 이사 ⓒ사단법인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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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디 홈페이지 배너 ⓒ사단법인 아디


 아디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신 분들이라면, 아디 소개를 한 번쯤은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시아 분쟁지역의 사람들과 배우고 함께 성장하여 인권과 평화를 실현합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누가, 왜,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10년 전 아디를 설립한 창립자이자 현재 이사로 재직 중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두 분, 김기남(기남킴)·공선주(별빛) 이사를 만났습니다.


사실 아디의 설립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재정적 인프라가 없어 상근 활동가들이 외부활동 수익을 모두 사업비로 전환하고, 가장 저렴한 경유 비행기를 타며 현장을 누비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현장에서 축적한 34편의 로힝야 인권보고서는 국제형사재판소(ICC)와 미얀마독립조사메커니즘(IIMM)의 공식 학살 증거로 채택되어 사법 정의의 핵심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디의 활동이 국제무대에서 객관적인 성과로 증명된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창립자들의 시선에서 아디의 ‘제2막’을 향해 던지는 냉철하고도 애정 어린 진단입니다. “왜 한국 사회에 아디가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정체성에 대한 아디 창립자들의 치열한 답변을 전합니다.




어느덧 아디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창립 당시, 두 분은 아디가 1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김기남 (이하 김): 당연히 10년은 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맡아서 했으니까요. (웃음) 당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주로 국내 문제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아시아 지역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연대 플랫폼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의 존엄성, 특히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뜻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사무실에 모여서 전략회의를 진행했었죠.


별빛 (이하 별): 원래 저는 1인 NGO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김기남 이사가 점심을 사 주면서 “어차피 혼자 할 거면 같이 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솔직히 처음에는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국제 사업에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초창기 재정적 어려움이 엄청났을 텐데, 어떻게 버텨내셨는지 생생한 고생담이 궁금합니다.

김: 당시 풀타임으로 참여한 멤버들은 월급을 받기는커녕 회비를 내며 일했습니다. 돈을 준다고 하면 어디든 달려갔어요. 법률 소장을 써 주고 수임료를 받아 오고, 강의를 하고 받은 강의료를 전부 아디 사업비 통장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업비를 벌었습니다.


별: 첫 사업지였던 미얀마 메이크틸라에 갈 때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창립 멤버들이 다 같이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가장 저렴한 30만 원짜리 중국 경유 비행편을 끊었습니다. 중국 내에서만 2번을 경유하고, 출국장 밖으로 나가 자가환승을 해야 하는 노선이었죠.


그런데 안개 때문에 항저우로 갔어야 할 비행기가 상하이에 불시착해 버렸습니다. 공항을 뛰어다니며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고, 워낙 저가 항공이라 기내식조차 나오지 않아 결국 미얀마 메이크틸라에 도착할 때까지 온 멤버가 굶주린 채로 가야 했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팔레스타인 출장을 갈 때 러시아를 경유하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우려와 재정적 고충 속에서, 창립 당시 아디가 어떤 조직이 되기를 바라셨나요?

김: 큰 목표를 말하자면, 창립 후 10년 안에 아시아 분쟁 지역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권과 존엄성을 증진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 단체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창립을 하면서 연도별 목표, 후원 회원 수와 후원금액, 사업 형태와 사업 지역 등의 로드맵을 계획하곤 했습니다. 


별: 그래도 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긴 해요. 지금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사람들과 인권 분야의 사람들 모두 아디에 대해 알고 있거든요.



2016년 창립총회 당시 발표자료에는 “2020년에 후원회원 수 500명”을 목표로 잡았었는데,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김: 개인적인 목표는 그것보다는 컸었습니다. 창립 후 10년 안에 후원 회원 수 1천 명, 활동가 수 10명을 달성해서 안정적으로 아디를 운영해 나간다는 것이 제 목표였죠.


별: 저는 아무래도 인권 기록보다는 인도적 지원 파트를 맡았었다 보니 기존의 한국 단체들이 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도적 지원을 해 나가고 싶었어요. 분쟁 피해 생존자를 중심으로 사업과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사업의 성과도 인정받았고 당시의 파트너 단체와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합니다. 당시 저는 “적어도 한 사업을 10년은 지속하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로힝야 여성 난민 지원사업이 올해로 8년 차이고 10년까지는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티베트, 미얀마, 로힝야, 팔레스타인처럼 국가를 아우르는 '인권기록' 사업은 아디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기록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 2016년 말, 미얀마 군부의 잔혹한 탄압으로 수많은 로힝야인들이 강을 건너 방글라데시로 피난 가는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2017년 2월, 처음으로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서 그들을 만났죠.


그곳에서 깨달은 것은, 로힝야인들은 제노사이드의 피해를 오랫동안 겪어 왔지만 이를 스스로 기록할 수 있는 역량이나 시민사회의 힘이 전무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타국의 난민 캠프라는 제약도 컸고요.


이대로 두면 진실은 결국 묻히고 말겠다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국제기구들이 식량은 주겠지만, 마을별로 발생한 학살을 샅샅이 기록해 진상규명을 해 주지는 않으니까요.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앞으로 영영 진상을 밝힐 수 없다. 훗날 국제재판이 열린다면 우리가 로힝야 사람들을 대신해 증거를 제출하겠다’는 장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한 마을씩 천천히 기록해 나갔습니다.



고통스러운 학살의 증언을 직접 대면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 난민캠프 곳곳을 뒤지며 특정 마을 출신 주민들을 찾아 사망자 수와 피해 내용을 조사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할 때의 모습, 태도, 삶의 이야기들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한동안은 대학에서 로힝야에 대한 강의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 학생들 앞에서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저 역시 영혼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별: 당시 저는 KOICA 사업 등을 통해 이 인권기록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재정적·운영적 후방 지원을 전담했습니다. 아디의 출장비와 운영비는 제가 다 대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웃음)



그 기록들이 마침내 국제사회에서 결실을 보았다고 들었습니다.

김: 그 결과물이 바로 아디가 발간한 34편의 로힝야 인권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들은 현재 IIMM(미얀마 독립조사메커니즘)과 ICC(국제형사재판소) 같은 세계 최고 법정에 공식 증거로 채택되는 기적 같은 성과를 냈습니다.


우리가 케이스별로 인터뷰한 1,000명에 가까운 로힝야 피해자들의 자료가 재판의 핵심 증거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국제형사재판소 검사들이 이 자료를 증거물로 활용하기 위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동의 절차를 밟고 허락과 자문을 구하는 이메일을 보냅니다. 이것이 아디가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증명해 낸 성과입니다.


현장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한국 대중들이 분쟁 지역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연대 활동을 많이 펼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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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발간 당시 북런치에서 질의응답 중인 별빛(공선주)활동가 ⓒ사단법인 아디


별: 현장 사업이 다년간 지속되면서, 한국 대중들에게 이들의 상황을 더 널리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과거 시민단체의 전형적인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사관 앞에서 엄숙하게 성명서를 낭독하는 활동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보았죠.

그래서 우리는 대중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었어요. 로힝야 쿠킹클래스를 열고, 예술인들과 협업했으며,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연계한 평화여행도 떠났고요. 이 활동들을 통해 평소라면 아디를 접하지 못했을 다양한 대중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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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난민위기의 도전과 협력> 포럼에서 발표 참여 중인 김기남 활동가 ⓒ사단법인 아디


김: 한국 사회에 이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목마름이 늘 있었습니다. 진심이 통했는지, 우리가 종합 인권보고서를 낼 때마다 국내 주요 일간지(경향신문) 1면에 3일 연속으로 아디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제노사이드 피해 당사자들과 학자들을 초청해 1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 컨퍼런스를 성공시키기도 했죠.

별: 숫자의 많고 적음보다 중요한 건 '대중의 행동 변화'였습니다. 아디의 활동이나 책을 접한 후 "이제 뉴스에서 로힝야 소식이 나오면 한 번 더 찾아보게 되었다", "아디의 활동을 조용히 팔로우하기 시작했다"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변화의 씨앗을 뿌렸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10년 동안 활동가로, 때로는 이사로 아디의 성장을 지켜보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별: 외부 업무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디를 이미 알고 있고, 우리의 활동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디는 기존 단체들과 확실히 다르다"고 그 차별점을 알아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 가장 뿌듯합니다.

김: 난민 캠프의 현지 활동가들과 로힝야 피해 생존자분들이 아디와 함께하며 보내주는 뜨거운 신뢰와 응원을 마주할 때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들에게 늘 미안하고 빚진 마음이 있어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는데, 그들이 고맙다고 손을 잡아줄 때마다 “우리가 길을 잘 걸어왔구나”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10주년을 맞이한 아디, 그리고 후배 활동가들에게 동료이자 선배로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 아디는 이제 '챕터 2'로 들어섰습니다. 처음 설립해서 맨땅에 헤딩하며 달려왔던 시기는 이제 영광스러운 과거일 뿐입니다. 이제는 생존을 걱정할 단계는 지났으니, 변화하는 한국과 아시아의 상황에 맞춰 사업과 운영을 개편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질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실 저희 두 창립자가 실무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이사회의 자리로 온 것도 후배들이 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별: “왜 굳이 아디여야 하는가? 왜 한국 사회에 아디라는 단어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창의적인 정체성이 활동에 녹아나야 합니다. 현재 아디의 활동가들이 매일매일의 사업 관리에만 매몰되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며 질문을 치열하게 던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디는 활동가들이 사업을 관리하는 '기계'가 되는 곳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깊이 들으며 자신만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주제의 깊이를 더해가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기관'이어야 합니다. 그 차별성이 없다면 대중에게 굳이 아디를 후원해야 할 이유를 설득할 수 없을 테니까요. 활동가들이 깊이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활동 방식을 새롭게 재정립하길 바랍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나에게 아디란 어떤 존재였나요?

별: 지난 10년 동안 아디는 나에게 “내 삶”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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