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디는 평화 운동의 ‘흙’ 같은 조직, 묵묵히 쌓여야 진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임재성 회원을 만나다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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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이어진 10년>은 사단법인 아디의 10주년을 맞아 여정을 돌아보기 위한 인터뷰 기록입니다.

아디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 아디의 곁을 지켜온 사람, 그리고 이제 막 아디와 연결된 사람까지,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이야기를 모아 아디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그려가고자 합니다.

인터뷰는 아디의 10주년 행사 <우리의 몫, 목소리>에 앞서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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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성 회원님 ⓒ사단법인 아디


"전쟁을 직접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아디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대리 소송부터 제주 4·3 재심, 일제 강제동원 사건까지. 전쟁의 가해자들에게 현재적 책임을 묻는 굵직한 과거사 사건들을 끌어오며 피해자들의 곁을 지켜온 사람이 있습니다. 변호사이자 활동가로서 인권과 평화의 현장을 누벼온 임재성 회원님입니다.


회원님은 아디의 초기 회원이자 평화전문위원으로 꾸준히 아디 활동에 도움을 주셨고, 시민 4,962명과 함께 가자 지구 집단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한국 수사기관에 이스라엘 전쟁범죄자 7인을 고발하던 당시 법률 대리인으로 참여하기도 하셨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학자가 책으로 자신의 업적을 남기듯,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가 곧 명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제 강제동원 사건에서 일본 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피해자들을 대리했고, 제주 4·3 사건에서는 2017년부터 재심을 시작해 당시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대리하여 최초의 재심과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을 대리하여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과거사 사건’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를 전쟁 피해자들을 대리해 전쟁을 수행한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로서 최근 가장 몰두하고 계신 일은 무엇일까요?

과거사 사건 중에서도 최근에는 해외입양 피해자 문제와 집단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의 진실 규명과 국가배상 소송에 실무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건 변론 외에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소송에 참여해 온 지난 10년간의 기록을 정리하는 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겨레에 ‘학살을 듣는 법정’이라는 제목으로 1년간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올해 안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소송을 통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동시에, 기록과 출판을 통해 사회가 과거의 문제를 잊지 않고 책임을 묻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국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거창한 결심보다는 대학 시절 마주한 대자보와 신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영향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전쟁 없는 세상’에서 상근 활동을 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생활을 했던 경험들이 지금 아디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교 때 노근리 학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한국이 '피해자'였던 사건을 접했는데, 동시에 터져 나온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폭로를 보며 우리가 '가해자'인 모순에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변호사가 된 후 2015년 한겨레 1면에서 베트남전 피해자의 방한 소식을 보고 다시 움직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베트남에 갈 사람'을 찾는 메일이 돌자 홀린 듯 손을 들었고, 그렇게 모인 동료 변호사들과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소송을 끌고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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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전쟁범죄자 고발장 제출을 앞두고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임재성 회원님과 아디 활동가들 ⓒ사단법인 아디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대해 아디와 함께 이스라엘 전쟁범죄자 고발을 진행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 사람이 처참히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동시대적 절망감을 깊이 느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 가지 축으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는 한국이 이스라엘로 수출하는 무기를 통제하자는 제도적 논의였습니다. 국회 토론회도 열었지만 제도권의 무관심은 뚜렷했습니다.

다른 한 축은 국제법적 접근이었습니다. 한국이 ICC(국제형사재판소)에 가입되어 있으니 이를 활용해 고발장을 작성해 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법률적으로 무리한 해석이라는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법률가들과 아디 활동가들이 모여 고발장을 완성했습니다. 비록 직접 처벌은 못 하더라도 사회적 인식과 여론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운동이었고, 같은 시대의 절망 속에서 분노를 행동으로 이어가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발제를 채우며 움직였습니다.


회원님이 가진 전문성과 평화에 대한 가치를 타인과 나누는 이유, 그리고 회원님이 생각하시는 '운동(Movement)'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너무 불편하고, 그걸 바꾸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합니다. 저에게는 그 목표가 전쟁과 폭력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운동권을 거쳐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한국군 파병을 보며 평화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뒤 지금까지 공부와 변론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가치를 타인과 나누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상화된 시대에 이를 막으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함과 절망감을 공유하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결국 운동의 의미는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사회를 함께 바꾸기 위해 연결되는 것이고, 제 전문성은 그 연결을 위한 도구입니다.


아디를 10년 동안 지켜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신가요?

아디의 ‘기록’ 활동입니다. 보통 연구자들이 펀딩을 받아 보고서를 내고 끝내는 것과 달리, 아디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하고 이를 이후의 운동과 공동체 강화로 이어갔습니다. 소송은 어쩔 수 없이 몇몇 피해자만 포괄하는 수공업적 방식이라 한계가 있지만, 아디는 피해 지역에 도서관을 짓거나 커뮤니티를 만들어 현지 활동가들이 상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공동체 자체의 역량을 키웠습니다.

저는 사람의 ‘뜨뜻미지근함’을 좋아합니다. 단기적인 효과 대신, 다른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아도 장기적으로 인권 문제에 매달리는 아디만의 '뜨뜻미지근함'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남기고, 그 기록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강화하는 접근은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이고, 그래서 더욱 의미있습니다. 운동이라는 건 결국 사회가 얼마나 척박한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아디는 그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기록을 남기고 공동체를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의 관심이 저조하여 이 귀한 기록들이 다큐나 책으로 충분히 2차 환류되지 못한 점은 활동가로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디가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립’과 ‘지속 가능성’입니다. 초창기에는 활동가들의 개인적 네트워크에 많이 기대었지만, 지금은 독립적인 단체로서 스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단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건, 조직이 단순히 몇몇 개인의 헌신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 지향과 목표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디의 지난 10년은 단순히 ‘버텼다’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이 이어지고,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도 평화 운동을 지속하는 힘을 보여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디와 함께하기를 망설이는 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강연이나 글을 쓰면 늘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습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누구도 전쟁과 학살을 당장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강대국도 못 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아디의 회원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전쟁과 학살을 멈추기 위한 여러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직접 멈추지는 못하더라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아디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일시 후원이나 정기 후원은 단순히 돈을 내는 게 아니라, 기록을 남기고, 피해자 공동체를 지지하며, 평화의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하지만 함께라면 가능성이 생깁니다.


임재성 회원님에게 아디는 어떤 존재였나요?

저에게 아디는 평화 운동의 ‘흙’ 같은 조직입니다. 흙이 있어야 그 위에 나무도 자라고 꽃도 필 수 있지만, 흙 자체는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디가 만들어내는 현지의 기록들, 역량 강화 사업들, 그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알리는 일들이 당장 눈앞의 큰 효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 흙이 묵묵히 쌓여야만 그 이후의 진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눈 앞의 변화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묵묵히 쌓인 흙 위에서 비로소 꽃이 피어나듯 아디가 걸어온 10년의 발자취는 기록이 되어 법정의 증거가 되었고, 현지 활동가들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었으며, 피해생존자들의 존엄을 세우는 단단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전쟁을 멈출 수 없지만, 평화를 향한 마음을 모아 묵묵히 흙을 쌓아 올릴 수는 있습니다. 다음 10년을 향해 나아가는 아디의 길에 동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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