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다] 소방도로에서, 가자 지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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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방도로 / 인천에서 살고 일하며 틈틈이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낡은 집들이 좁은 골목길로 이어져 있는 산 동네에 살았습니다. 불이 나면 소방차가 들어가기 위한 소방도로가 동네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이 가파른 언덕길에서 겨울철 미끄럼을 타던 기억이 나서 활동명으로 삼았습니다.  




소방도로에서, 가자지구까지



눈을 뜨고 헛하품을 하며 정신을 차린 다음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본다. 9월 9일. 또 하루가 시작된다.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10분만 더 눈을 감고 있자’라는 유혹을 떨치며 메신저와 단체 대화방에 달린 숫자들을 지운다. 휴전이 무산됐다는 소식과 이스라엘 드론이 가자지구로 가는 구호선 매들린의 탑승자를 포함한 패밀리 보트를 공격했다는 뉴스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다.


그래도 오늘은 폭격과 살해 소식으로 시작하지는 않는구나.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공격당해 죽고 있다. 단지 평범한 희생은 더 이상 전달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유명한 사람이든, 더 끔찍한 방식이든 특별한 사연이 덧붙여질 때만 다시 뉴스가 된다. 하지만 ‘평범한 희생’이라니. 바로 어제 어딘가에서 수십 명이 한꺼번에 평범하게 살해되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따가 찬찬히 읽어봐야지 하면서 숫자 ‘1’을 지운다. 하지만 ‘1’이 지워지면서 이 소식도 다른 수많은 소식에 묻힌다. 오늘의 비극을 이해하기도 전에 새로운 비극이 쏟아진다.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읽는다. 전에는 가끔만 보던 국제면을 먼저 펼친다. 오늘 트럼프는 하마스에 최후 통첩을 했고, 이스라엘 대법원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폭격으로 화염이 치솟는 무너진 건물 앞에 있는 가자지구 사람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실렸다. 기사 끄트머리에 ‘휴전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스라엘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라는 코멘트가 덧붙었다. 사람들의 비명 앞에서 늘 이스라엘은 부인하고 미국은 편든다. 종종 누군가 하나마나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기사는 중립적으로 들리는 코멘트로 마무리한다. 이런 말들이 한 바퀴 돌면 비극은 건조해지고 먼 나라의 풍경으로 바뀐다. 분노와 슬픔은 기사에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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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집회에 참여한 소방도로 ⓒ소방도로


아침부터 덥다. 가을이 시작할 때가 되었지만 한여름처럼 덥다. 가자 앞바다에서 천연가스를 캐내려는 한국석유공사가 언뜻 떠오른다. 세금을 내는 나도 석유공사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원 수탈에 이렇게 저렇게 얽힌 공범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런 걸 다 생각하면 어떻게 사냐고 스스로 타협하고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당장 나의 일로 받아들이기엔 버겁다.


2023년 10월 이후로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에 대한 숱한 고의적인 오해와 게으른 비난에 대해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비난받는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었다. 아무튼 당장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니 그걸 멈추게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라고 외치기라도 하고 싶었다. 말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니, 그렇게 외치는 누군가의 글에 ‘좋아요’라도 누르고 싶었다.


출근해서 페이스북을 연다. 어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한 누군가의 감상과 팔레스타인 상황을 알리는 연대 단체의 새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나는 예전 싸이월드 시절 정성스럽게 기록했던 일상이 어느 날 한꺼번에 사라지는 일을 겪은 뒤로 SNS를 하지 않았다. 아니,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는 게 배 아파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내 페이스북에는 오직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글뿐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 추천에 자꾸 아랍어가 뜬다. 내 페이지에 왜 자꾸 남의 글이 나타나는지, 어디까지가 광고고 어디까지가 글인지 여전히 잘 모른다.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지금 어딘가에서 비극이 펼쳐지고 있지만, 나는 나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점심을 뭐 먹을까 고민한다. 메뉴 선택에 실패하면 속으로 투덜대고, 살이 찔까 봐 일부러 덜 먹는다. 식량 공급을 막아서 사람들을 굶겨 죽이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냐고 화를 내면서 다시 숟가락을 잡을 수밖에 없다. 눈앞의 현실과 먼 곳의 비극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왜 남의 나라 일에 그리 관심이 많냐”라는 친구의 반농담에 내가 맥락 없이 대뜸 화를 내서 대화를 어색하게 끝낸 뒤로 친구들은 말조심한다. 친구의 진심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차근차근 설명하지 못하니 화부터 냈다. 나도 현실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차근차근 설명하겠나.

  

카톡이 울린다. ‘팔레스타인 대화모임’* 준비팀 톡방이다. 이번 모임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어떻게 하자고 제안하는데, 사실 아직도 싸이월드에 사는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대충 눈치로 애매한 답글을 달고는 나도 준비에 힘을 보탰다고 혼자 살짝 뿌듯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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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인티파다 당시 가자지구에 진입한 이스라엘군 탱크에 맞서 맨몸으로 돌을 던지는 소년 ⓒ미들이스트모니터


오래 전, 나는 탱크에 맞서는 소년의 사진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끔 들려오는 소식에 안타까웠지만, 곧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곧장 잊을 수가 없다. 눈앞에서 생중계되는 제노사이드를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없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기에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집회에 나갔고, 시위와 행진에 참여했다. 그렇게 집회 준비에 자원하여 함께하는 사람들의 텔레그램 방에 들어갔다.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단체에도 가입했다. 그리고 나처럼 이 비극 앞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진지하다. 나처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를 묻고 나름의 답을 찾고 있다. 당장 뭔가를 하려고 한다. 나도 그 사람들을 따라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긴 하지만, 내가 저 폭탄을 하나라도 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든다. 멀리서 그들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빵 한 조각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9월 9일, 학살이 시작된 지 704일이 되어 2년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내가 저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면서도 시위에 참석한다.



* 팔레스타인 대화모임은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개인들이 모여 ‘대화하는’ 모임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일상에서 그들의 해방과 자유를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평화를 바라는 이라면 누구나 신청하고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격주 금요일 저녁 7~9시에 진행되며, 장소는 대관 현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 소방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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