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란 무엇인가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서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며,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PCBS)에 따르면, 2023년 현재 가자 지구에는 가자시티, 칸유니스, 라파 등지에 220만 명가량이 살고 있습니다.
가자의 역사
1947~1949년 나크바(팔레스타인 인종청소)와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약 1.3%를 차지하는 가자(Gaza)와 인근 지역을 이집트가 차지하는데, 이후 이곳을 가자 지구(Gaza Strip)라고 부르게 됩니다. 나크바 과정에서 발생한 75만 명가량의 난민 가운데 20만 명 이상이 가자로 몰리고, 자발리아(Jabalia)와 누세이라트(Nuseirat) 같은 난민촌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 가자 지구는 점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중심지이자, 이스라엘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어 갑니다.
가자 지구가 이런 식으로 표적이 되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곳은 1948년 이후 자기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이는 저항의 용광로였다. 파타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창립한 지도자 대부분이 이 기다란 해안 지대의 비좁은 동네에서 등장했다…나중에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에 맞서 가장 끈질기게 무장투쟁을 주창한 이슬람지하드와 하마스의 탄생지이자 요새가 되었다. -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이집트가 통치하던 가자 지구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켜 서안 지구를 포함해 가자 지구까지 점령함으로써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1967년 당시 서안 지구나 가자 지구에 없었거나 전쟁 중에 그곳을 떠난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부분 귀환할 권리를 거부당했습니다. 가족 재결합을 위한 신청은 극히 일부만 승인되었습니다. 1979년까지도 15만 건 이상의 신청이 처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16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이 제출한 모든 신청은 자동으로 거부되었습니다. - 리사 하자르, ‘개요 : 이스라엘의 군사 통치’, <미들이스트리포트>, 150호(1988년 1월/2월)
점령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조합 결성도 금지했습니다. 정치 조직을 만드는 것은 물론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지지하는 발언만으로도 체포되었고, 수감자에게는 고문이 자행되었습니다. 행정구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혐의나 재판 없이 감금하기도 했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주택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1차 인티파다. 1987년 가자 지구. ⓒWikimedia Commons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권 탄압이 계속되자 1987년 12월 가자 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인티파다(Intifada. 봉기를 뜻하는 아랍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곧 서안 지구로 확산했고, 마을과 도시 곳곳에서 풀뿌리 모임이 생겨났습니다. 학생, 여성, 노동자 등 각계각층의 팔레스타인인은 시위는 물론, 파업이나 불매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에 저항했습니다.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이스라엘은 총을 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러 어린이와 청소년의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진압 방식을 사용합니다. 1993년까지 계속된 인티파다로 가자와 서안에서 1천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됩니다.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과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진압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등 국제 사회가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계기가 됩니다.
봉쇄와 전쟁
인티파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과 1995년에 걸쳐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탄생했고, 가자와 서안의 일부 지역에 대해 제한적인 자치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평화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이에 공존과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오슬로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이 시온화되기 전, 가자의 역사는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행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나머지 지역과 항상 연결돼 있었다…오슬로 협정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특별한 지정학적 실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전체 뿐 아니라 서안과도 별개였다. 표면적으로는 가자 지구나 서안 모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지만, 두 지역 사이의 인적 이동은 이스라엘의 호의에 달려 있었다. - 일란 파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유대인 정착촌은 계속 확대되고,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면서 가자는 점점 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갔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평화협정에 대한 실망감은 2000년 2차 인티파다로 분출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파타(Fatah)의 무능과 부패는 2006년 자치정부 총선에서 하마스(Hamas)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2006년 총선 결과에 불복한 파타 일부 세력이 하마스와 직접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파타는 서안 지구를,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 그물을 손질하는 가자 지구 어민. ⓒ미니
제 유일한 소원은 석사 학위를 가자 지구 밖에서 받는 거예요. 제 꿈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얻는 것이고,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저는 가자 지구 밖에 살며 방해물이나 경계선 없이 세계를 여행하고 싶거든요. - 아디,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가자 지구에도 국제공항이 있었지만 2001년 이스라엘이 이를 파괴했습니다. 바다에는 이스라엘 군함이 지키고 있어 팔레스타인 어민이 배를 몰고 조금만 멀리 나가면 총을 쏘았습니다. 땅에는 가자 지구를 둘러싸는 높이 6미터가량의 장벽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은 가자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수용소와 같은 가자 지구에 가둔 채 이스라엘은 군사공격을 계속했고, 가자 주민은 외부로 이동하지도 못한 채 가자 내부에서만 피난처를 찾아야 했습니다.
2014년 7월 8일부터 8월 26일까지 50일간 이어진 적대 행위 동안 팔레스타인인 2,251명이 살해됐습니다…이번 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11,231명이 부상을 입었고, 그 가운데 여성은 3,540명, 어린이와 청소년은 3,436명이었습니다. 이들 어린이와 청소년 가운데 약 3분의 1은 부상으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UNRWA(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2014 가자 분쟁’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2018년, 2021년, 2022년 등 계속해서 가자 지구를 공격했습니다. 끊임없는 봉쇄와 폭격 속에서,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7일부터 가자 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다시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니
가자란 무엇인가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서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며,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PCBS)에 따르면, 2023년 현재 가자 지구에는 가자시티, 칸유니스, 라파 등지에 220만 명가량이 살고 있습니다.
가자의 역사
1947~1949년 나크바(팔레스타인 인종청소)와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약 1.3%를 차지하는 가자(Gaza)와 인근 지역을 이집트가 차지하는데, 이후 이곳을 가자 지구(Gaza Strip)라고 부르게 됩니다. 나크바 과정에서 발생한 75만 명가량의 난민 가운데 20만 명 이상이 가자로 몰리고, 자발리아(Jabalia)와 누세이라트(Nuseirat) 같은 난민촌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 가자 지구는 점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중심지이자, 이스라엘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어 갑니다.
이집트가 통치하던 가자 지구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켜 서안 지구를 포함해 가자 지구까지 점령함으로써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점령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노동조합 결성도 금지했습니다. 정치 조직을 만드는 것은 물론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지지하는 발언만으로도 체포되었고, 수감자에게는 고문이 자행되었습니다. 행정구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혐의나 재판 없이 감금하기도 했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주택을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1차 인티파다. 1987년 가자 지구. ⓒWikimedia Commons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권 탄압이 계속되자 1987년 12월 가자 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에서 인티파다(Intifada. 봉기를 뜻하는 아랍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곧 서안 지구로 확산했고, 마을과 도시 곳곳에서 풀뿌리 모임이 생겨났습니다. 학생, 여성, 노동자 등 각계각층의 팔레스타인인은 시위는 물론, 파업이나 불매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이스라엘에 저항했습니다.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이스라엘은 총을 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러 어린이와 청소년의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진압 방식을 사용합니다. 1993년까지 계속된 인티파다로 가자와 서안에서 1천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됩니다.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과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진압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등 국제 사회가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계기가 됩니다.
봉쇄와 전쟁
인티파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과 1995년에 걸쳐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탄생했고, 가자와 서안의 일부 지역에 대해 제한적인 자치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평화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이에 공존과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오슬로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유대인 정착촌은 계속 확대되고,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면서 가자는 점점 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갔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와 평화협정에 대한 실망감은 2000년 2차 인티파다로 분출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파타(Fatah)의 무능과 부패는 2006년 자치정부 총선에서 하마스(Hamas)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2006년 총선 결과에 불복한 파타 일부 세력이 하마스와 직접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파타는 서안 지구를,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 그물을 손질하는 가자 지구 어민. ⓒ미니
가자 지구에도 국제공항이 있었지만 2001년 이스라엘이 이를 파괴했습니다. 바다에는 이스라엘 군함이 지키고 있어 팔레스타인 어민이 배를 몰고 조금만 멀리 나가면 총을 쏘았습니다. 땅에는 가자 지구를 둘러싸는 높이 6미터가량의 장벽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은 가자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수용소와 같은 가자 지구에 가둔 채 이스라엘은 군사공격을 계속했고, 가자 주민은 외부로 이동하지도 못한 채 가자 내부에서만 피난처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2018년, 2021년, 2022년 등 계속해서 가자 지구를 공격했습니다. 끊임없는 봉쇄와 폭격 속에서, 이스라엘은 2023년 10월 7일부터 가자 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다시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니
🇵🇸 Webzine.P@lestine 2호 '우리는 막내를 잃었어요. 셋째 마저 잃을 수는 없어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