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파르하>의 스틸컷. 1948년 나크바 당시 문틈으로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켜보는 소녀 파르하의 모습 ⓒ영화 <FARHA>
닫힌 문 밖으로,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
팔레스타인 비극의 현재진행형, 영화 <파르하>가 들려주는 나크바의 이야기
요르단의 여성 감독 다린 살람(Darin J. Sallam)의 데뷔작인 <파르하>는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중동전쟁을 한 소녀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14살 소녀 파르하는 전통을 중시하는 팔레스타인의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 파르하는 이사 간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신도 도시로 가서 학교에 다니는 꿈을 꾼다. 아버지는 딸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한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파르하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는다. 마을 상황이 심각해지자 아버지는 파르하를 집 창고에 숨겨 놓고 사라진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창고에 숨어서 문틈으로 마을 상황을 살펴보던 파르하는 끔찍한 죽음들을 목격한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딸은 그곳에서 세상이 지옥이 돼 가는 걸 보게 된다. 과거의 한순간을 재현하면서 여전히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영화로, 토론토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에서 첫선을 보였다. (남동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
나크바(알-나크바, النكبة)는 아랍어로 '대재앙'을 의미한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약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수백 개의 마을이 파괴되었으며,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단순한 전쟁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이는 체계적인 점령과 추방, 기억의 말살이었다. 인종 청소였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나크바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일상 속에 되풀이되는 상처다. 이스라엘의 점령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특히 가자지구는 오랜 봉쇄 속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과 토지 몰수, 군사 점령 아래의 민간인 사망, 주거지 철거와 강제 퇴거는 지금도 매일같이 벌어진다. 가자 보건부는 2023년 10월 7일부터 2025년 1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총 4만6천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지고 10만 9천 378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유엔과 국제구호기구들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과 미성년자 등 무고한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사에 대한 국제적 정의는 여전히 지연되고 있으며, 침묵과 부정 속에서 나크바는 끝나지 않은 채 현재형으로 반복되고 있다.
<파르하>는 이 나크바의 비극을 14살 소녀의 꿈과 공포, 희망과 무력함의 교차를 통해 그려낸다. 파르하는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도시 학교에 진학하길 꿈꾼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 바람을 전한 직후,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을 지하 저장고에 숨기고 떠난다. 그 어두운 방 안에서 파르하는 문 틈새로 세상의 붕괴를 듣는다. 그 안에서 파르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듣고, 기억하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파르하>는 파르하 그녀가 어떻게 생존자가 되고 목격자가 되며, 기억의 전달자가 되는지를 그린다. 영화는 우리에게 보여주기보다 듣게 한다.
일가족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카메라의 시야를 파르하의 시선에 종속시킨다.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세로로 삼등분하고, 그 가운데 좁은 영역만이 빛의 허락을 받는다. 마치 우리가 파르하와 같이 숨은 창고 문틈 사이에서 세상을 엿보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이는 단순한 연출 기교가 아니다. 파르하의 고립감, 그녀가 가진 정보의 단편성, 그리고 목격자로서의 수동적 존재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장치다. 카메라는 우리에게 전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잔혹함은 한정된 시야 너머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끝내 전부를 보지 못한 채 파르하처럼 귀 기울이며 바깥의 학살을 상상하게 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찬 바닥에 홀로 눕혀져 있는 장면에서조차 카메라는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손수건 아래 아기의 형체는 흐릿하고, 파리 떼의 윙윙거리는 소음만이 공간을 메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카메라의 초점이다. 의도적으로 초점이 비껴간 아기의 윤곽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이 죽음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그 '보이지 않음'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여백이 관객에게 더 큰 고통을 남긴다. 이는 현실에서의 팔레스타인 학살, 특히 어린이 희생자들의 수많은 익명성을 상기시킨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피해, 보도되지 않는 죽음들.
여백으로 <파르하>는 폭력의 시각적 소비를 거부한다. 대신, 감각의 전이를 통해 관객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숨김으로써 오히려 폭력의 감도를 높이고, 파르하의 감정 흐름에 밀착하게 만든다. 영화는 장면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기억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연대다.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공감할 수 있는 방법. 눈앞의 이미지가 아닌 마음의 울림으로 진실을 감지하는 방식. 그렇게 <파르하>는 증언의 언어를 감각의 층위로 옮겨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폭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누구의 편인지도 묻지 않는다. 다만 그 폭력의 결과를 마주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누군가에게 '파르하의 방'일 수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침묵, 공포,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 파르하가 마침내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장면은 탈출의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증언의 시작'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폐허 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억하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침묵은 더 잔혹하기에.
우리는 지금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본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국제사회는 침묵하며 언론은 왜곡되고, 진실은 가려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파르하들이 닫힌 방 안에서 이 모든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침묵을 들으려는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이고 다시는 그 '문틈'이 닫히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다.
파르하가 바라봤던 문 너머의 세상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과 이어져 있다.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다.
이제는 — 열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 글 : 여름
* 편집자의 말 : <파르하>는 다린 살람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 영화 <파르하>의 스틸컷. 1948년 나크바 당시 문틈으로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켜보는 소녀 파르하의 모습 ⓒ영화 <FARHA>
팔레스타인 비극의 현재진행형, 영화 <파르하>가 들려주는 나크바의 이야기
요르단의 여성 감독 다린 살람(Darin J. Sallam)의 데뷔작인 <파르하>는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중동전쟁을 한 소녀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14살 소녀 파르하는 전통을 중시하는 팔레스타인의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다. 파르하는 이사 간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신도 도시로 가서 학교에 다니는 꿈을 꾼다. 아버지는 딸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한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파르하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는다. 마을 상황이 심각해지자 아버지는 파르하를 집 창고에 숨겨 놓고 사라진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창고에 숨어서 문틈으로 마을 상황을 살펴보던 파르하는 끔찍한 죽음들을 목격한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딸은 그곳에서 세상이 지옥이 돼 가는 걸 보게 된다. 과거의 한순간을 재현하면서 여전히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영화로, 토론토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에서 첫선을 보였다. (남동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나크바(알-나크바, النكبة)는 아랍어로 '대재앙'을 의미한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약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수백 개의 마을이 파괴되었으며,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단순한 전쟁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이는 체계적인 점령과 추방, 기억의 말살이었다. 인종 청소였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나크바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일상 속에 되풀이되는 상처다. 이스라엘의 점령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특히 가자지구는 오랜 봉쇄 속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과 토지 몰수, 군사 점령 아래의 민간인 사망, 주거지 철거와 강제 퇴거는 지금도 매일같이 벌어진다. 가자 보건부는 2023년 10월 7일부터 2025년 1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총 4만6천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숨지고 10만 9천 378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유엔과 국제구호기구들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과 미성년자 등 무고한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사에 대한 국제적 정의는 여전히 지연되고 있으며, 침묵과 부정 속에서 나크바는 끝나지 않은 채 현재형으로 반복되고 있다.
<파르하>는 이 나크바의 비극을 14살 소녀의 꿈과 공포, 희망과 무력함의 교차를 통해 그려낸다. 파르하는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도시 학교에 진학하길 꿈꾼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 바람을 전한 직후,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을 지하 저장고에 숨기고 떠난다. 그 어두운 방 안에서 파르하는 문 틈새로 세상의 붕괴를 듣는다. 그 안에서 파르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듣고, 기억하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파르하>는 파르하 그녀가 어떻게 생존자가 되고 목격자가 되며, 기억의 전달자가 되는지를 그린다. 영화는 우리에게 보여주기보다 듣게 한다.
일가족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카메라의 시야를 파르하의 시선에 종속시킨다.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세로로 삼등분하고, 그 가운데 좁은 영역만이 빛의 허락을 받는다. 마치 우리가 파르하와 같이 숨은 창고 문틈 사이에서 세상을 엿보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이는 단순한 연출 기교가 아니다. 파르하의 고립감, 그녀가 가진 정보의 단편성, 그리고 목격자로서의 수동적 존재감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장치다. 카메라는 우리에게 전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잔혹함은 한정된 시야 너머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끝내 전부를 보지 못한 채 파르하처럼 귀 기울이며 바깥의 학살을 상상하게 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찬 바닥에 홀로 눕혀져 있는 장면에서조차 카메라는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손수건 아래 아기의 형체는 흐릿하고, 파리 떼의 윙윙거리는 소음만이 공간을 메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카메라의 초점이다. 의도적으로 초점이 비껴간 아기의 윤곽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이 죽음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그 '보이지 않음'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여백이 관객에게 더 큰 고통을 남긴다. 이는 현실에서의 팔레스타인 학살, 특히 어린이 희생자들의 수많은 익명성을 상기시킨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피해, 보도되지 않는 죽음들.
여백으로 <파르하>는 폭력의 시각적 소비를 거부한다. 대신, 감각의 전이를 통해 관객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숨김으로써 오히려 폭력의 감도를 높이고, 파르하의 감정 흐름에 밀착하게 만든다. 영화는 장면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기억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연대다.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공감할 수 있는 방법. 눈앞의 이미지가 아닌 마음의 울림으로 진실을 감지하는 방식. 그렇게 <파르하>는 증언의 언어를 감각의 층위로 옮겨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폭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누구의 편인지도 묻지 않는다. 다만 그 폭력의 결과를 마주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누군가에게 '파르하의 방'일 수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침묵, 공포,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 파르하가 마침내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장면은 탈출의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증언의 시작'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폐허 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억하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침묵은 더 잔혹하기에.
우리는 지금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본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국제사회는 침묵하며 언론은 왜곡되고, 진실은 가려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파르하들이 닫힌 방 안에서 이 모든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침묵을 들으려는 자세로 살아간다는 것이고 다시는 그 '문틈'이 닫히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다.
파르하가 바라봤던 문 너머의 세상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과 이어져 있다.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다.
이제는 — 열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 글 : 여름
* 편집자의 말 : <파르하>는 다린 살람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 Webzine.P@lestine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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