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학살을 피해 난민이 된 로힝야족

 2017년 8월30일, 야스민 울라(가명, 24)는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에 친정식구 전부를 잃었습니다. 또한 파티마(가명, 45)는 군인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하고 이들이 지른  불에 타 죽을 뻔 했습니다. 옆에 있던 딸이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면 같은 마을의 대다수 여성들처럼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얀마 국경에 인접한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에는 야스민, 파티마와 같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온 난민들이 100만명정도가 됩니다.

 

100만명 모두 지난 60년간 천천히 진행된 제노사이드의 생존자들입니다. 

2016~7년 군대의 토벌작전으로 절멸의 위기에서 간신히 생존했으며,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무국적자들입니다. 또한 조상대대로 살아 온 삶의 터전으로부터 불법체류자 취급을 당하고 온갖 박해와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이제는 군인의 총칼과 방화를 피해 그곳을 떠나야 했으며 지금은 난민캠프의 열악한 환경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인종학살의 시작

 미얀마 정부는 2016년 10월 로힝야의 박해를 종식시키기 위해 싸운다고 밝힌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서 국가안보의 위협 으로 간주했습니다. 새총과 단검 등으로 무장한 수준이며 구성원도 극소수에 불과한 이들이 벌인, 언론에 보도된 이른바 교전은 5회가 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400여 마을들을 포위하여 무차별하게 총격을 가하고 집집마다 수색하여 민간인을 죽이고 여성을 강간했으며 집을 불태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에 묘사되고 우리 머리속에 그려지는 무장단체와 군대 사이의 무력충돌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왜곡된 사실과 그로 인한 박해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를 불법체류자라며 박해를 정당화했습니다. 미얀마는 버마족과 소수민족이 각자의 문화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립왕국을 이뤄 살았고, 로힝야의 삶의 터전인 라카인주의 경우, 지금의 방글라데시 치타공과 라카인주 씨트웨시까지 라카인족 불교도와 로힝야 무슬림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공존했던 오랜 역사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국경이 그어졌을 뿐 식민지 시대에 넘어 온 불법체류자라는 프레임은 맥락에 맞지 않으며 정부는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1962년부터 군부는 미얀마 전역에서 버마화를 추진하며 소수민족에 대한 배타적 정책을 펼쳤고 미얀마의 주류인 버마족과 불교도가 아닌 로힝야는 역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1978년 군부의 나가민 작전으로 25만명의 로힝야 민간인이 지금의 방글라데시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난민이 되었다가 돌아왔고 1991년에도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2012년 사건 뒤에서 14만명의 로힝야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떠나 국내난민캠프로 내몰렸습니다.

 

​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로힝야족

 미얀마 정부는 1982년 시민권법을 제정하며 로힝야족을 시민권 부여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로힝야 사람들은 법적으로 무국적자가 되었으며, 이들은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혼과 자녀계획 등의 사생활의 보호, 교육받을 권리,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적 권리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유엔이 로힝야를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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